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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근 Sep 07. 2024

자의 반 타의 반 널빤지 데크로 서핑한 뉴테크 파도-1

3D + XR + AI까지 고군분투기

2024년 3월까지 XR분야 현업에서 노코드 기반 XR 저작도구를 만들며 고군분투하다가 퇴사를 하고 세상밖으로 나왔다. 곧바로 독립적으로 XR 분야를 특히 Web기반 3D와 XR 콘텐츠를 개척하다가 2024년 5월 말 갑작스러운 헤드헌팅으로 가전으로 대표되는 L사의 광고대행사 H사에 전략/신사업 기획, AI 컨설턴트라는 직무로, 그야말로 전쟁터의 최전선, 어쩌면 적의 후방에 침투하는 공수부대처럼 투입되었다. 


그리고 5월부터 지금 9월, 전략/신사업 AI 컨설턴트로서 경력 입사 100일이 된 시점의 기분은 갓 군대 전역한 직후 패기 하나로 서핑을 정복하겠다고 한 달 동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파도를 처맞은 직후의 기분과 같다. 잠시나마 파도를 부드럽게 잡아 타 희열을 느끼고 아 나도 이제 잘 탈 수 있겠다 싶을 때, 직전과 다른 더럽고 치사하고 거대한 파도가 덮쳐 다시 물속에서 통돌이를 당해 허겁지겁 퇴수 하는 나날의 반복. 


파도에 처맞고 보드는 날아가고 아마 2018년, 발리 울루와트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서핑 실력은 여전히 초보자 티를 못 벗은 오리무중이었고 남은 건 까맣게 탄 피부뿐. 발리에서 똑같이 까만 사람들 사이에 있었을 땐 제일 하얗던 내 피부가 도심공항터미널에서 거니는 테헤란로의 사람들과 비교하니 나는 그야말로 불에 구워진 감자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당시에 내 나이 때(20대 초)에 서핑을 즐기던 국내 인구가 거의 없었던 때라 나의 까만 피부와 서핑을 그저 한 번이라도 해봤다는 스토리가 주변에서는 엄청난 모험으로 받아들여지고 내 의지와 다르게 나는 사실상 서핑의 고수, 서핑은 나에게 다 물어보살이 되어있었다. 원래 당시 아직 서핑 성지로 여겨지기 전의 강원도 양양(지금의 양양처럼 되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 로컬 샵에서 서프보드를 빌리려면 안전상 최소한 1회 강습을 받았어야 했는데 발 빠른 발리 서핑 경험을 인정받고 쉽게 로컬 사람들과 인사하고 서프보드를 빌릴 수 있었다. (실력은 나중에 들통났었지만!)


아마 2015년 할로윈이 한창이던 10월 말 - 11월경 발리, 꾸따


그리고 서핑을 양양 앞바다에서 잘 탔느냐? 


똑같이 파도에서 처맞았고 오히려 발리에서 보다 잘 탈 수 없었다. 그리고 아 파도가 여기는 안 좋네라고 푸념했다. 모두가 거기에 수긍했지만 그러면서도 국내에서 서핑하던 사람들은 파도를 잘만 탔다. 그렇다기보다 즐겼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발리에선 매일 있던 파도가 국내엔 없었지만 그래도 즐기는 사람들, 사람들이 진짜 서핑만 하러 오던 2017년 9월 강원도 양양군 죽도해수욕장


지금의 나의 감회는 그때와 정확히 같은 것이다. 나는 그동안 개발자가 아닌 시각디자이너 출신으로 웹브라우저 기반의 3D를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접했고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부흥하기 직전부터 XR 콘텐츠를 개발을 곁들여 가며 직접 만들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잘했는가 하면 물음표다. 아무도 안 했었던 일이기에 적절한 수준의 퀄리티에 타협해도 와우가 나왔다. 가끔은 기술이 부족해 밤새가며 파헤쳐도 답이 나오지 않아 실현되지 못한 것도 많다. 


어느새 피부엔 그런 경험이 탄 피부처럼 축적되었는지 여러 업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요즘 다른 의미로 새까맣게 탄 내 피부를 보고 노하우를 물어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 컨설팅을 하게 되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강연을 했다. 


세상의 물결은 끊임없이 휘몰아쳤다. 완전히 IT와 관련이 없는 회사들이 DX라는 이름으로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고 거리를 떠돌던 나 같은, 일단 피부가 탄(다른 의미로)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됐다. 


AI가 대중화되면서 작은 회사들만 도전하던 일을 이제 큰 회사가 직접 하고자 한다. 그렇게 들어온 큰 회사는 2017년경 강원도 양양보다 열악했다. 나는 고사양 PC가 있어야 한다, 이 라이선스를 구입해야 한다 등 환경을 탓하기 일쑤였지만 내 하찮은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된다고 격려해 주는 팀원들. 내가 파도를 잡지 못하는 사이에 AI의 엄청난 가능성을 보고 모인 그 사람들은 파도 크기에 굴하지 않고 테이크오프를 하더라. 


AI는 정말로 파도와 같아서 어떨 땐 정말 멋지게 테이크오프가 가능하지만 그 쾌감으로 다음 파도를 타려고 열심히 패들링 해 라인업하는 순간 터틀롤해서 피해야 할 파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을 잔뜩 먹고 전의를 상실하지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어떤 조금의 가능성을 남긴 파도. 나는 조금 더 좋은 파도를 먼저 타봤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이들을 보조하고 있지만 결국 주어진 시간 동안 극복하지 못했던 이전의 파도들이 떠올라 불안하기도 하다.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뉴테크 파도가 들이치고 있다. 나는 3D와 XR이라는 바다에서 얻은 기술들을 이미지 생성 기반의 AI 기술과 결합해보고 있다. 나만의 결과물이 아니기에 마음껏 자랑할 순 없지만 윤곽을 공유하고는 싶다. 


햇빛이 들지 않는 거대한 빌딩 속 사무실 안에서 내 피부는 다시 하얘졌지만 계속해서 뉴테크 파도를 처맞고 AI의 망망대해에서 깔끔하고 시원한 적당한 높이의 파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또 다른 가상현실 속 내 피부는 계속 구릿빛일 테다. 


아마 2018년 발리, 바투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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