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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Mar 26. 2024

영고 다윈을 위하여

 <센스 앤 넌센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서구의 지성사에서 인간의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선학들의 노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잘못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진화론을 신중하게 사용함으로써 인간성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던 사례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중략)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장에서, 인간의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탐구하는 데는 크게 다섯 가지 방법이 있으며, 각각의 방법이 모두 귀중하고 참신한 통찰력을 제공했음을 누차 확인했다. (중략)

“다섯 가지 진화론적 접근방법 중에서 가장 전염성이 높은 밈은 어느 것일까? 진화론에 마음을 둔 과학자들의 이성과 감성을 독차지하려는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학파는 어디일까?” (중략)

‘진화론 인기차트’를 발표하기 전에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잠시 뜸을 들인다면,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도킨스의 ‘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미메틱스’는 대중적인 과학 기사를 가끔 읽는 독자들 사이에서나 인터넷 토론방에서는 대세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데는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전문 연구자들은 ‘밈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다.

-케빈 랠런드, 길리언 브라운, <센스 앤 넌센스> 양병찬 역, 동아시아, 369~372

진화론만큼 과학과 인간사를 통틀어 큰 영향을 끼친 이론이 또 있을까? 또한 이보다 더 많은 공격을 받았고 받고 있는 이론이 또 있을까? 게다가 진화론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의 다툼이 요란한 이론분야가 또 있을까… 이 책은 현대의 진화론에 대한 모든 논쟁과 분화되어 가는 양상을 다루며 (나처럼) 대충 알고 있는 독자들이 쉽게 오해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교정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충 설명해 놓은 것만 읽어도 알겠지만, 진화론에 대해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딱히 흥미롭게 읽을만한 내용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말은 역으로 진화론에 대해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말도 된다. 일반독서가들을 위한 진화론에 대한 책을 쫌 읽어봤다는 사람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대표적으로, 털 없는 원숭이가 불러온 어이없는 넌센스들)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네…)

개인적으로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부터 시작된 ‘밈’에 대한 매우 인색한 평가가 약간 충격적이었다. ‘밈’이라는 단어는 저자들이 지적하듯이 인터넷 용어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하위 개념으로 계속 파생되어 밈 그 자체로 밈이 되고 있지만 더 이상 유의미한 연구서는 나오지 않고 있는 듯하다.

저자들이 손을 들어준 분야는 진화심리학으로, 재능 있는 저술가들(스티븐 핑커, 로버트 라이트, 데이비드 버스 등)을 확보하고 있으며 ‘인간의 보편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중들에게 덜 위협적인 인상을 줬’(375)기 때문에 현재의 지배적인 다윈주의 학파라고 평가하고 있다.

… 역사적으로 볼 때,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여러 종들을 사다리 위에 배열하고 직선적, 진보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던 라마르크 진화론은 편견을 초래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다리 위쪽에 있는 종이 아래쪽에 있는 종보다 더 진보했거나 서열이 높은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인종을 불평등하게 바라보는 견해들 중 상당수는 간접적으로 라마르크의 견해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윈의 진화론은 종 내부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인종차별에 내재하는 유형학적 사고를 거부한다. 나아가 현대의 다윈주의는 자연선택뿐만 아니라 돌연변이나 유전적 부동과 같은 우연적 사건도 상당히 강조한다.

자연선택은 최종목표나 ‘더 높은 상태’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다윈 자신다 진화를 진보로 잘못 표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깨닫고, 개인 노트에 “절대로 더 높다거나 더 낮다는 말을 쓰지 말 것”이라는 문구를 적어 놓고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 위의 책, 96~7

놀라운 것은 도킨스 등이 라마르크 진화론과 그토록 강렬하게 싸워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라마르크 진화론이 죽지 않고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다루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명망 있는 진화론자가 라마르크가 옳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식으로 도킨스의 혈압을 상당히 올려놓고 있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어쩌면 진화론에 대한 대부분의 (악의적인) 곡해는 라마르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론과 다윈을 늘 일치하는 것으로 대충 뭉뚱그려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오명은 다윈의 진화론이 뒤집어쓰기 일쑤다. 영원히 고통받는 다윈.. (그가 얼마나 욕먹기 싫어하는 소심한 사람이었는지 알면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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