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1일 칼럼 기고분)
몇몇 지자체나 마을이 효도와 관련된 행사를 기획하고 미풍양속으로 권장함은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가족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가는 현대사회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효(孝)’를 주제로 잡아 봤습니다.
‘효’에 대한 법적 규율
법에서 ‘효’에 대해 간접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1) 형법상으로 살인죄, 상해죄, 폭행죄, 유기죄 등에 있어서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해 각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존속살해, 존속상해 등으로 가중처벌됩니다. 그 범죄의 패륜성으로 인하여 비난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2) 민법상으로는 부모와 자녀간의 상호부양의무(제974조)를 규정하고 있으며, 일정한 경우 이혼이나 파양 등의 사유(제840조 4호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제905조 3호 ‘자기의 직계존속이 다른 일방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상속과 관련하여서는 ‘고의로 직계존속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 또는 고의로 직계존속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상속에서 제외되는 반면(제1004조 1, 2호), 자녀들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 · 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부모를 특별히 부양하거나 부모의 재산유지·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는 더 많은 상속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제1008조의2 기여분 제도, 통상 ‘효도상속분’이라고도 불림). 다만, 위 기여분은 몇 퍼센트라고 법정된 것이 아니라 자녀들간 협의를 우선시하고, 협의가 되지 않을 경우 법원에서 정해주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도덕과 법률의 경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효(孝)는 기본적인 도덕규범이며, 특히 우리나라는 덕(德)의 근본이라 하여 이를 중시하고 실천하려 애써왔습니다. 고려장이나 보릿고개가 있었던 옛날에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효와 관련된 옛날이야기를 살펴보면 오히려 끔찍할 정도입니다.
병든 부모를 위해 꿈속에서 나타난 산신령이 시키는 대로 외동아들을 솥에 넣고 삶았더니 천년 묵은 동자삼(어린 아이같이 생긴 산삼)으로 변했다든지, 어머니의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아들이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내어 삶아드렸다든지,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에 뛰어들었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그나마 풍요해진 지금은 어떨까요. 물론 사회가 복잡해지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하는 측면이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에게 효도하면서 살기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효를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일까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란 말이 있습니다. 즉, 적어도 이것만큼은 지켜야한다는 정도의 효는 법에서 정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법이론적으로 ‘포괄적인 효의 강제’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4년경 우리나라에서도 ‘효도특별법’ 제정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효도특별법의 주요 골자는 “부모 부양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회피할 때에는 부양명령 등 강제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법제정은 무산되었지만 패륜형 범죄의 일상화 등 각박해진 사회현실을 대변한다는 측면에서 의미있었던 일로 기억합니다.
2007. 8. 8. 제정된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효 자체를 강제하지는 못하되, 10월을 효의 달로 정하고, 효행 우수자에 대한 표창,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부모 부양자에 대한 지원, 주거시설 공급, 민간단체 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던 까마귀가 커서는 그 어미를 되먹이는 습성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말로 ‘반포지효(反哺之孝)’란 말이 있고, 우리는 흔히 ‘효’란 말 뒤에 ‘도(道- 도리, 수양)’를 붙여 ‘효도’란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까마귀도 그러한 습성이 있다고 하는데,
인간인 우리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
효가 마치 ‘도를 닦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