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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Jun 08. 2022

026 슬기로운 정치생활 (1)

(2022. 6. 3. 기고)


     역사의 행방을 좌우하는 것은 어느 개인 또는 집단이 각각의 역사현장에서 내린 의사결정이나 선택일 겁니다. 물론 역사는 외적 환경의 변화나 우연적 요소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고 그 비중이 클 경우도 있습니다. 종교나 철학 사조에 따라서는 생래적인 환경이나 우연적 요소 또한 필연의 인과 법칙에 따른 것이라 설명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여기’(now and here)의 좌표에서 내린 선택과 결정에서부터 또 다른 인과(因果)의 세상이 열리고, 때론 구원이나 해탈의 역사가 시작되거나 반대로 지옥의 문이 열리기도 하므로, 어느 모로 보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될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선택의 의미가 중할진데, 현재를 살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만 하거나 요행수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히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였듯이 진심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도리를 다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부단히 실행에 옮기고, 아울러 겸허히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공동체의 선택과정은 곧 정치입니다. 정치는 ‘선택’과 ‘권력(의사관철력)’으로 특징 지워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정치는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일상적인 것입니다. 생활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호에서는 개인을 비롯하여 가족․마을․도시․국가․인류 등 각각의 공동체가 의사결정을 할 때 고려할 기준이나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1. 의사결정의 기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의사결정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부단히 갈고닦는 일입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에 사회와 동떨어진 독립적인 개인을 상정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첫걸음인데, 연기법(緣起法)에 대한 고찰일 수 있습니다. 또한 누군가에겐 弘益人間, 敬天愛人의 뜻을 탐구하는 과정일 수도 있고, 삼강령(明明德․新民․止於至善)과 팔조목(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을 그 세부적인 목표로 삼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목표와 기준을 잡는 일은 거친 풍랑에서도 나침반을 부여잡고 삶과 사회의 본질을 궁구하는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의사결정이란 어떤 것일까요? 나와 세계(타인, 각종 공동체 등)가 더불어 잘 지내는 선택이겠죠. 그렇다면 잘 지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옳고(right) 좋은(good, virtue) 일로 가득 차게 하고, 그르거나(wrong) 나쁜(bad, evil) 일은 억제하거나 그 악영향을 최소 하는 것일 겁니다. 이를 가리켜 누군가는 정의(justice)라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행복(happiness)이라 부르기도 하더군요.


     세계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고, 선택을 요구합니다. 그 질문은 수학 문제와 같아서 사칙연산처럼 비교적 쉬운 것도 있지만, 삼각함수, 미적분 나아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과 같이 복잡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삼척동자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쉬울 정도로 자명한 질문은  정작 이를 실천하고 있는지 여부를 묻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보편적 진리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정직, 성실, 신뢰, 희망, 사랑과 같은 것들이겠지요.

     하지만 복잡한 문제라면 그 공식이나 해법을 세우기 쉽지 않고, 그 기준 또한 시대나 지역, 문화에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사회가 복잡다기해져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거나, 글로벌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우리는 그러한 문제를 ‘물질과 정신’, ‘성장과 분배’, ‘경제와 환경’ 등 상반된 가치의 충돌 국면에서 흔히 마주하게 됩니다. 흔히들 딜레마(dillema), 트릴레마(trilemma)와 같은 말로 진퇴양난, 선택장애 상태를 표현합니다.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복잡한 문제는 기본 공식을 이해하고, 각종 응용문제도 자주 풀어봐야 실력이 느는 것처럼, 여러 가지 사고 실험을 해보기도 하고 아울러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의 풀이법도 참고해보는 것이 도움 됩니다.

    트롤리 딜레마(trolley-dillema) 기본문제(선로 변경)에서 70~80%의 사람들은 1명의 생명보다 5명의 생명을 구하는 선택을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결과 중심의 공리주의나 합리적 선택모형(비용편익분석)은 특히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를 다루는 경제정책의 선택에 있어서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양적 공리주의’는 다수의 횡포나 핵심적 가치의 무시라는 악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고, 나아가 ‘모르는 남자 5명과 사랑하는 딸 1명’ 또는 ‘사병 1000명과 군 통수권자 1명’ 중 누구를 살려야 할지와 같이 현실세계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주진 못합니다.

    이럴 때는 단순히 정량적 기준으로만 판별할 수 없고 정성적(定性的) 기준을 아울러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질적 공리주의’라 부를 수 있습니다. 즉 위 사례에서 생명에 존귀가 없으므로 모두 공평하겠으나, 같은 공동체 구성원인지 또는 그 역할은 무엇인지에 따라 질적 의미와 가중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난파선 구명보트 남은 한 자리에 노인을 태워야 할지, 의사를 태워야 할지, 어린아이를 태워야 할지 묻는 문제도 정성적 기준을 묻는 사고 실험 중 하나입니다. 현대의 공리주의는 거의 질적 공리주의라 보면 되는데(대부분의 비용편익분석에서도 질적 요소를 산술화시키든지, 정성적 평가를 포함시키는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질(質)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가치관이 개입되며, 이때 '자유주의' 또는 '공동체주의'와 영향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결국 의사결정의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어떤 ‘정치철학’을 가진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서양에서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논쟁으로 이어 갑니다. 가치 충돌의 경우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할 것인지 아니면 평등 또는 공동체의 가치를 더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인데, 양 극단의 이념(무정부주의, 전체주의 또는 사회주의)을 택하는 자들은 많지 않으므로 절충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만 강조하는 방점이 개인의 자유에 찍히냐, 공동체적 가치에 찍히냐 하는 정도의 차이라 볼 수 있습니다.  

     동서양의 역사와 학문의 흐름을 살펴보면 동양은 통합적 태도를(통일국가, 유학, 화쟁사상 등), 서양을 분석적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는데, 정치철학을 전공하는 분들은 복잡하게 세분화된 개개 학설의 차이점을 알고 있어야 하겠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어느 ‘ism(主義)’에 매몰되지 말고 해당되는 쟁점의 생활영역과 그 중요도, 긴급성, 파급효과 등을 감안하여 ‘개인의 자유’와 ‘공공선’의 조화점을 찾아가는 유연한 판단기준을 모색해 봄으로써 족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사적 영역에서는 자유주의를, 공적 영역이나 안보 영역에서는 공동체주의(공화주의)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세분화시켜서 경제분야에서는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를, 국내 정치분야에서는 센델의 공동체주의나 페팃의 신공화주의를 각각의 주된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사나 민족문제가 대두되는 쟁점에서는 서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강조하는 매킨타이어의 공동체주의가 설득력 있게 들릴 수도 있고, 국제정치분야는 현실주의, 국제경제분야는 신자유주의의 안경을 쓰고 그 작동원리와 해법을 찾아보는 것이 유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과 사고 실험 과정을 거쳐, COVID-19 방역정책, 국가의 시장개입, 지방분권, 지방 소멸위기, 4차 산업혁명과 노동정책, 에너지 정책, 식량정책, 통화정책, 대북정책 등 다양한 시사이슈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다른 이의 생각도 들어보면서 자신의 판단기준을 다듬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께 ‘당신은 어떤 정치철학을 지니고 있소? 보수요 아니면 진보요? 자유주의요 아니면 공동체주의요?’하고 묻는다면, 어찌 대답하실 건가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라, 나의 생각을 규정하지 않을 생각이네.’라 답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나는 대한민국 헌법이 밝히고 있는 정치철학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네.’ 정도로 우회하여 답할 수도 있는데, 헌법은 나름 심오한 정치철학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헌법 제1조는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여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하여, 칸트의 정언명령에 따른 듯한 인간의 존엄성 존중 사상을 밝히고 있는가 하면, 대의제나 다수결의 원리로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인권이 존재함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선언하여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 자유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 등 공동체 이익을 위하여 제한될 수 있음을 밝혀 공동체주의와의 균형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 제119조는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여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에 입각한듯한 표현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결하는 사법부 또한 '중용(中庸)'을 기준으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정치적 '중도'와는 다른 국면의 논의입니다). 일례로 형사소송법상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을 들어보겠습니다. 이 원칙은 죄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그 법칙을 고수하면 죄를 지은 것이 명백함에도 적법절차라는 문제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데, 그 같이 처리하는 것이 공동체 전체의 입장에서 과연 타당하다 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갈등관계에 관하여 판례는 절차 하자의 정도와 정의의 침해 정도를 저울질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합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고,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하여 압수ㆍ수색에 관한 적법절차와 영장주의의 근간을 선언한 헌법과 이를 이어받아 실체적 진실 규명과 개인의 권리보호 이념을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도록 압수ㆍ수색 절차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형사소송법의 규범력은 확고히 유지되어야 하므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 역시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 다만, 위법하게 수집한 압수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때에는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 과정에서 이루어진 절차 위반행위와 관련된 모든 사정, 즉 절차 조항의 취지와 위반의 내용 및 정도, 구체적인 위반 경위와 회피 가능성, 절차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 또는 법익의 성질과 침해 정도 및 피고인과의 관련성, 절차 위반행위와 증거 수집 사이의 인과관계 등 관련성의 정도,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 등을 전체적ㆍ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하여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하여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도2109 판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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