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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Mar 11. 2024

140 세 치 혀, 세 마디 손가락

2024. 2. 27. 칼럼 기고분

 [사례] 뺑덕 엄마는 한마을에 사는 돌쇠 엄마를 이유도 없이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돌쇠 엄마를 착하고 예의 바른 여자라고 생각하고 좋아했습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개울가 빨래터에 마을 아낙들이 모였습니다. 누군가 ‘요즘 돌쇠 맘한테 좋은 일이 있는지 얼굴이 활짝 핀 것 같애’라고 말하자, 뺑덕 엄마는 기분이 팍 상하면서 던진 말이 ‘돌쇠 맘, 애인 생겼잖아. 자기들 몰랐어?’라고 있지도 않은 말을 내뱉습니다. 주위에서는 ‘사실이야? 누군데?’를 연발하고, 몇몇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앉는다더니~’라며 호응을 합니다. 뺑덕 엄마는 내친김에 ‘며칠 전 돌쇠 맘을 물레방앗간에서 마주쳤는데 말이야 글쎄. 아랫동네 어떤 총각이 물레방앗간에서 따라 나오더라니까’라며 말 한마디 툭하니 던지고 슬그머니 자리를 떴습니다. 그 뒤로 돌쇠 엄마가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자 흥이 난 뺑덕 엄마는 깊은 밤 마을어귀 담벼락에 ‘돌쇠 맘하고 아랫동네 X총각하고 얼레리 꼴레리 했대요’라고 방을 붙여놓기까지 했습니다. 다음 날 마을회보에는 ‘충격보도! 청순녀 돌쇠 맘,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1면 탑 기사로 실렸습니다. 돌쇠 엄마는 남편의 의심까지 받아 매까지 맞고 집에서 쫓겨날 판이 되었기에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고을 원님을 찾아가, ① 뺑덕어멈과 마을회보 기자를 상대로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고(형사고소), ② 앞으로 헛소문을 퍼뜨리지 말 것(금지청구)과 사죄문을 교부할 것(회복처분), 그리고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백미 1000가마를 지급하라(손해배상)는 소장을 냈습니다.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는 언어는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좋은 말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나쁜 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요. 거짓된 험담으로 타인의 능력과 자질을 깎아내릴 수도 있으며, 자신에 대한 거짓과 과장으로 타인을 현혹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쁜 말들이 모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수단이고 사람마다 언어습관이 다를 수 있어 그 표현이 다소 무례하고 저속하다 해서 모욕죄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사기죄나 명예훼손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의 과장과 허위가 수반되는 정도라면 사기죄로 보기도 어렵지만 거래의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 사실에 관한 거짓말을 한 경우라면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고, 단순히 타인에 대한 의견이나 평가를 말하는 정도의 뒷담화라면 명예훼손이 되지 않겠지만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킨 것이라면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 대법원 판례들은 전파가능성 법리를 유지하면서도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엄격하게 인정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데(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예를 들어 공개적인 언사가 아니라면 발언 상대방이 발언자나 피해자의 배우자, 친척, 친구 등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경우 또는 직무상 비밀유지의무 또는 이를 처리해야 할 공무원이나 이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경우, 상대방의 가해에 대하여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언하게 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공연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뺑덕 엄마의 말처럼 일응 역기능만 있고 순기능이 전혀 없는 말도 있지만, 어떤 말은 지목된 누군가는 듣기 싫은 말이겠지만 그가 속한 사회를 살리는 건전한 비판과 견제가 되기도 합니다. 즉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알권리’ 간의 충돌이 본격적으로 문제되는 국면이라 할 수 있지요. 따라서 대다수 국가들은 ‘사적인 영역’의 언어와 ‘공적인 영역’에서의 언어에 대한 취급을 달리하는데, 예를 들어 명예를 훼손당하는 자의 사익보다 그러한 비판으로 인해 사회와 세상이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형사법상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형법 제310조에서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명예훼손은 위법성이 없다고 정하고 있고, 최근의 판례는 공적인 인물, 제도 및 정책 등에 관한 것으로 국한시키지 않음으로써 공적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위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는 대략 살펴봤으니 이제 실태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일례로 요즘 학생들의 학교폭력 사안을 보면 언어폭력, 사이버폭력과 따돌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욕하기, 비아냥대기, 꼽주기는 기본입니다. 아이들 세계에서 '공적인 영역'과 '공익'의 범위는 그리 크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순기능조차 없는 말들이 각종 SNS 창구를 통해 막말과 저격글의 행태로 쏟아집니다. 여기에 학폭신고로 이어지면 맞신고로 대응하기도 합니다. 무책임한 뺑덕 엄마와 같은 꼴인데, 이런 현실에 대해 어른들이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른들 세계에서 각종 매체를 통한 본글과 댓글 공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심지어 업체광고에서조차 조작과 테러가 빈발합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가슴에 새겼던 이들도 ‘거짓이 살아 남는다’는 경험칙 앞에서 무릎을 꿇곤 합니다. 


다시 사례로 돌아와 뺑덕어멈은 돌쇠맘의 고소에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아마도 뺑덕어멈은 친한 엄마들 몇 명을 조용히 불러 ‘아닌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연막작전을 펼치기로 한 다음, 돌쇠맘에 대한 대대적인 뒷조사를 하는가 하면, ‘청순녀로 알려진 돌쇠맘의 외도 여부는 열녀문이 세워진 우리 마을의 공적인 관심사로서, 본인은 거짓을 말한 적도 없거니와 사실과 다르더라도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을지... 씁쓸한 추측은 더더욱 정의를 갈망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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