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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Jun 13. 2022

139  증인신문기술

(2017년 1월 16일 칼럼 기고분)

첫 사건


제가 변호사 뱃지 달고 처음 맡았던  사건은 성폭행 피의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내연관계였던 피의자와 피해자 사이에 치정 및 경제적 이권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사건이었는데, 외형은 어마어마한 성폭행, 감금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풋내기 신참 변호사에게는 꽤 버거울만 하기도 했던 사건이었죠.


피해자측 진술에 따라 구속영장청구가 들어왔는데 저는 피의자가 억울하게 고소 당했다는 판단이 들었고, 나름 열심히 준비했었습니다. 다행히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재판부는 성폭력사건임에도 검찰의 영장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비교적 충분한 시간을 갖고 피의자와 사실관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논의하며 재판을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재판을 위해 수사기록을 열람해보니, 약 10여명의 참고인들이 죄다 피해자 편에서 진술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권분쟁이 걸린 사안이다 보니 피의자를 끌어내리려는 세력 피해자 편에 붙었던 것으로 보였고, 게다가 수사기관에서는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증거보완 명목으로 다수의 참고인(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성범죄의 직접 증거는 아닙니다)을 추가로 내세웠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 재판실무상 변호인은 참고인진술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서 증거 '부동의(不同意)'하게 됩니다. 그러면 검찰이 부동의 증거의 진술인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게 되는데, 증인이 10여명에 달하니 법원이나 검찰 입장에서도 만만한 사건이 아니게 됩니다. 문제는 피고인과 변호인측인데, 피해자측 증인들이 법정에 나오더라도 허위증언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조 선배들에게 '이런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여기저기 물어보기도 했으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서 경험에서 습득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만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한동안 독학으로 증인신문기술에 대해 파고 들었고, 결국 단순 폭행을 제외한 대다수 핵심범죄에 대하여 무죄를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부터 쌓인 경험이 현재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증인신문 기술


요즘 국정감사 청문회를 통해, 국회의원들의 증인신문내용과 답변을 들으면서 증인신문기술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증인신문이란 양날의 칼과 같아, 누구를 증인으로 세우느냐, 그리고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재판결과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데, 실체진실을 추구하는 질문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기술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소개드릴까 합니다. 증인신문은 토론의 전투적 형태여서 그 전략전술이 다양하나 지면상 기본적인 내용만 간략히 소개해드립니다.



1. 기본


  우선 변호사든 국정감사, 국정조사 질문자든지 간에 최우선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은 ‘사건 파악’ 또는 '해당 사안에 대한 장악력'입니다.


  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논리와 경험칙에 의해 나름대로 사건을 구성하고 그 사건으로 들어가 그 전후관계와 실체를 파악해야 함으로써 사건 당사자에 준하는 사건구성을 해야 합니다. 또한 질문하는 현안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만 정리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박, 재반박 등을 염두하여 예상되는 상대 진영의 논리까지도 사전에 확인하여 준비해두어야 합니다.



2. 우리 쪽 증인


   증인이 질문자의 의도에 부합한 답변이 예상되는 자(우리 쪽 증인)일 경우, 주신문절차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되도록 객관적으로 증인이 경험하여 알고 있는 대로 진술하도록 조언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증인의 답변에 허위나 과장은 없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불리한 진술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요(어느 한쪽으로만 일관되게 유리 또는 불리한 진술은 신빙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문기일 이전에도 우리 쪽 증인과의 접촉은 최대한 줄이고 사실관계에 대한 간략한 재확인(이마저도 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과 신문시 주의사항 정도만 알리고 들어가는 편입니다.


  우리 쪽 증인을 신문할 때 신문사항을 길게 하여 예, 아니오 식의 '단답형 답변'을 유도하는 것보다는 짧게 질문하여 '서술식 답변'을 유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상대방이 반대신문을 이어가고 있을 때 증인이 당황하여 적절치 못한 답변을 하든지 예상 이외의 답변을 하더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끼어들어 시정하거나 정정하려는 태도는 자칫 그러한 답변을 사실인양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나을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시정할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오게 되므로 그 때를 노려야 합니다. 상대방의 다음 질문에서 시정될 수도 있고, 판사가 재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시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재-주신문 기회에 물어보면 되는데, 예를 들어 '지금까지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증인은 ~~ 했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증인은 ~~ 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구요. 그렇다면 아까 반대신문에서 ~~ 라고 답변한 것은 실제로 ~~한 취지에서 답하신 걸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라는 식으로 '불명료한 내용을 명확히 한다'는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증인신문을 하다보면 돌발변수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그럴때 새로운 추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길 수도 있는데, 사전에 이미 확인했거나 확실한 개연성이 있는 내용이 아니면 아무리 우리 쪽 증인에 대한 질문이라도 추가 사항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이는 상대방 쪽 증인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증인신문은 나와 사건을 달리 보는 상대방의 반대신문절차를 통해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것을 얻으려고 모험을 걸었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상대방 쪽 증인


  한편 상대방의 편에 선 자(상대방 쪽 증인)일 경우, 어떻게 그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고 감추어진 진실을 캐내느냐 하는 것이 주된 과제가 됩니다.


  이때 질문자는 증인의 경험사실, 성격 등을 미리 파악하여 증인으로 나선 사람이 어떻게 진술할 것인지 미리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마련하고 그 예상답변과 그에 대한 대응질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어느 증인이든 사전에 짜여진 각본 처럼 흘러가는 경우는 없으니, 탄력적인 대응방식이 중요합니다.


  질문은 핵심적인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짧고 단순하고 구체적으로 물어야 하며, 인신공격 등 감정적인 대응은 원칙적으로 올바른 질문법이 아닙니다.


  또한 상대방 쪽 증인신문을 통해 사실관계의 모든 내용을 확인하려 드는 것 또한 좋은 태도가 아니므로, 상대방 쪽에 아킬레스 건이 될 만한 사항에 대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양한 내용을 구구절절 물어보면 증인이 처음엔 긴장하다가 자신이 아무런 꺼리낌 없이 답할 수 있는 몇몇 질문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가지면서 질문자에게 오히려 역질문하는 등 기세를 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실전에서 질문자는 충분한 사전준비를 토대로 증인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쏘아 붙여야 증인의 즉흥적인 답변과정에서 진실이 튀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면밀한 사건파악없이 진행하는 질문은 증인의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오는 순간 꽉 막혀 머뭇거리게 되면서 오히려 허위진술을 하는 증인에게 승기를 내어 줄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가 저돌적인 들배지기식 공격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증인신문은 질문자와 증인의 수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증인으로 하여금 공격기회를 주고 이를 강하게 되받아치는 것이 유효할 때도 많습니다. 이처럼 되치기 기술로 받아치거나, 돌려서 반격하거나, 위증죄를 재차 고지하거나 상대방의 심리를 이용하여 도발시키는 것은 유용한 기술인데, 특히 미리 허위증언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증인에 대해서는 그 신빙성만 흔들어 놓더라도(충분히 거짓말을 할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보면 됩니다.



                                                                                                                               

-  영화 <어 퓨 굿 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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