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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4. 2017

110 증인신문 (上)

(2013년 4월 15일 칼럼 기고분)

3형제를 둔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막내가 엄마에게 쫓아와 울음을 터트리며 고하는 말인즉, 둘째 형이 자기를 때렸으니 엄히 처벌해달라는 것입니다. 

엄마가 둘째를 소환 조사해보니 자기는 막내를 때린 적은 없고, 막내가 자기에게 사탕을 달라고 조르는데도 안 주었더니 울면서 엄마한테 달려간 것이라고 또박또박 반박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둘째와 막내를 놓고 대질신문을 합니다. ‘둘째가 막내의 어딜 어떻게 때렸는고?’

막내 왈 ‘머리를 꿀밤으로(이내 울음)’

둘째 왈 ‘저는 결백합니다. 사건 내막을 모두 알고 있는 큰 형을 불러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혀 주십시오’




이 순간 엄마는 판사요 진상규명조사위원장입니다. 논리와 경험칙으로 양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 내용을 검토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법과 논리, 경험칙 기타 등등의 법원칙을 총동원하여 판단하기에 앞서 전제가 되어야 할 일이 있으니 바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즉, 엄마는 둘째가 막내를 때린 사실이 있는지 여부부터 확정해야 하는데, 엄마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닐뿐더러 그 현장을 목격한 당사자가 아닌 이상 당사자의 주장입증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때에 따라서는 직권탐지․조사권 행사를 통해서라도 사실관계를 확정해야 합니다. 사실관계만 확정되면 그에 따른 판단은 수월합니다. 즉 둘째가 막내를 때린 것이 맞다면 그에 따라 둘째에게 훈계를 내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일종의 무고를 한 막내에게 훈계 또는 교육을 시행하면 되는 것이지요. 


형사소송에 비유하자면, A가 여자 친구 B를 낭떠러지로 밀어 살해한 것으로 기소되었는데, A는 B가 실족사한 것뿐이라고 변명한 사건에서, 사건 전후의 각종 정황 등에 비추어 살인한 것이 맞다고 판단된다면, 판사는 기타 정상관계 사실을 참작하여 형법 제250조 제1항에 따라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란 법정형을 기본으로 하여 처벌하면 됩니다. 


아무튼 위 사건에서 엄마는 첫째를 증인으로 소환하여 신문한 결과 둘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른 판결은 ‘무고(誣告)한 막내에 대한 꾸지람과 회초리 1대’로 신속하게 집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위 판결은 잘못된 판결이었습니다. 사실은 첫째가 둘째로부터 사탕 한 봉지를 받고 허위 증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엄마는 그동안 첫째가 정직하다고 여겨왔었는데 그러한 선입견 때문에 말썽꾸러기 막내의 주장을 쉽사리 믿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어 3~4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온 가족이 가족여행을 갔다가 첫째와 둘째가 펜션 한 귀퉁이에서 시시덕거리면 주고받는 말이 아빠와 막내에게 포착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젠... 세월이 지나서 말인데, 예전에 막내 놈이 엄마한테 회초리 맞았던 거 사실은 엄마가 우리들한테 감쪽같이 속았던 건데 말이야. 흐흐’ 


이 말을 들은 막내는 엄마에게 큰형을 위증죄로 처벌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과거의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를 하였고, 위 위증사건 증인으로 아빠를 내세웠습니다. 

3~4년간 오판으로 인한 굴욕의 역사가 새롭게 쓰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증거는 물증과 인증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물증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아 인증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민형사, 특허, 가사, 헌법소송 등 각종 재판뿐 아니라, 감사원, 국회, 지자체의 각종 업무집행감사, 기타 특별법상의 조사절차에서 ‘증인신문’은 진실규명을 위한 유용한 제도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증인신문이야 말로 ‘변론의 꽃’이라 생각합니다. 사건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사건 당사자에 준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거기에 여러 가지 실무 경험칙을 바탕으로 허위 증언을 탄핵하는 것은 기본적인 소양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변호사는 서면은 투박하게 대충 쓰고 증인신문은 현란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증인신문 절차는 영미의 법정영화를 보는 것처럼 역동적인 때가 많습니다. 우호적 증인으로부터 자신의 입증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진술을 들을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불리한 진술이 튀어나올 수도 있으며, 비우호적 증인이 초지일관 모르쇠나 거짓진술로 일관할 경우 이를 탄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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