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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4. 2017

109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

(2010년 01월 22일 칼럼 기고분)


자정 무렵, A는 골목길을 가다가, 20여 미터 떨어진 강도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주위가 어두웠지만, 사건 장소가 가로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기 때문에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어느 정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범인은 칼을 들고 피해자 B에게서 돈을 뺏다가 누군가 목격자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도망쳤고, A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출동한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C를 검문해 본 결과, C가 강도 전과자인 데다가, 가지고 다니던 가방 안에는 맥가이버 칼과 현금이 있어 용의자로 지목되어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경찰서에서 C는 맥가이버칼은 일용직 노동을 하면서 필요할 때가 있어 소지한 것이고, 현금 또한 노동일을 하면서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관이 피해자 B와 목격자 A에게 범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범인 맞지요. 범행시간에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사람입니다’라고 묻자(사진 제시, 단독 쇼-업), B와 A는 ‘네, 이 사람이 강도짓을 한 사람입니다. 체격이나 인상이 비슷합니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판사는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C를 특수강도죄의 진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건에 있어서는 수사과정에서 범행에 대한 객관적인 물증, 예를 들면 범인으로부터 압수된 피해품 또는 범행도구, 범행 현장에 남은 범인의 지문, 모발, 타액, 정액 등이 확보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피해자나 목격 증인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건에 있어서는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데, 객관적인 물증은 전혀 없거나, 있더라도 그 증명력이 미미하여 거의 전적으로 피해자나 목격 증인의 진술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용의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피해자나 목격자가 착각하고 있는 것인데, 그 진술내용에 따라 용의자의 유무죄가 가려지므로, 그 증명력의 판단은 그 재판절차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기억 과정은 ① 정보 취득, ② 보유, ③ 복구와 타인에게의 전달의 3단계로 나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기억의 부정확 또는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인지과정은 카메라 또는 비디오처럼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심신상태 또는 사건의 성질에 따라서 불완전하거나 왜곡되어 인식되기 쉽고, 특히 인간의 두뇌가 모든 상황을 동시에 인지하고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겪는 것들 중 일부만을 선택하여 기억하게 된다는 점이 신빙성 인정 여부의 핵심인 것입니다. 
또한 사건이 오래 전의 일이거나(망각곡선), 기억된 다음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어 기억이 변질되거나(사후 허위정보효과), 질문자의 암시에 따라 기억이 복구되는 과정에서 왜곡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범인이 흉기를 휴대하고 있는 경우 범인의 얼굴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반인의 상식과 달리, 목격 증인은 범인의 얼굴보다는 흉기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흉기를 들고 있는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는 데는 취약하다고 하며(흉기집중효과), 범행 당시의 극심한 공포 등으로 인하여 범인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상식과 달리, 낮은 정도의 스트레스는 사람의 기억을 촉진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는 때때로 사람의 기억을 훼손하거나 왜곡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예커스-도슨 법칙).


목격자에 의한 범인식별에서 우리나라 일선의 경찰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내부 전산망에 저장된 동종수법 전과자들의 사진들 중 목격 증언에 따라 연령이나 인상착의 등이 비슷하고, 거주지역 및 구금 여부, 현재 상황 등을 고려하여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들 사진을 한 장 또는 몇 장을 뽑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니가 본 놈이 이 놈 맞지? 맞잖어~"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목격 증언의 범인식별력 왜곡현상에 대한 연구결과를 받아들여, 법원은 다음과 같이 수사기관에 주문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1. 2. 9. 선고 2000도4946 판결, 대법원 2008. 1. 17. 선고 2007도5201 판결, 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8도12111 판결 등).


안면 불식 강도․성폭행과 같은 흉악범죄의 용의자가 무죄로 풀려나지 않길 바란다면, 주된 용의자에 대한 암시를 주지 말고, 영미에서처럼 되도록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들을 동시에 줄 세우기를 하는 방법(라인-업)을 취하여 범인을 식별하고, 적어도 가두 식별이나 유사 인물사진 제시를 통해 범인을 특정해야 한 다음 기소하라.




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8도12111 판결

[1] 용의자의 인상착의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키거나 용의자의 사진 한 장만을 목격자에게 제시하여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력의 한계 및 부정확성과 구체적인 상황하에서 용의자나 그 사진상의 인물이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를 목격자에게 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하여, 그러한 방식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서의 목격자의 진술은, 그 용의자가 종전에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피해자의 진술 외에도 그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등의 부가적인 사정이 없는 한 그 신빙성이 낮다고 보아야 한다.

[2]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게 하려면, ⓐ 범인의 인상착의 등에 관한 목격자의 진술 내지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화한 다음, ⓑ 용의자를 포함하여 그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하여야 하고(퍼레이드 라인-업), ⓒ 용의자와 목격자 및 비교대상자들이 상호 사전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며, ⓓ 사후에 증거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대질 과정과 결과를 문자와 사진 등으로 서면화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고, 이러한 조치는 Ⓐ 사진제시․ 동영상제시·가두식별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photo/ video/ live 라인-업)와 Ⓑ 사진제시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서 목격자가 용의자를 범인으로 지목한 후에 이루어지는 동영상제시·가두식별·대면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3] 그러나 가해자가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자이거나, 범죄 발생 직후 목격자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현장이나 그 부근에서 범인식별 절차를 실시하는 경우에는, 목격자에 의한 생생하고 정확한 식별의 가능성이 열려 있고 범죄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즉각적인 대면의 필요성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용의자와 목격자의 일대일 대면[단독 쇼-업]도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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