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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4. 2017

108 현장부재 증명 - alibi

(2009년 02월 13일 칼럼 기고분)


서유기 속의 손오공에게는 분신술이란 특별한 기술이 있었습니다. 손오공은 자기 머리털을 뽑아 입김을 불어 날리면 머리털이 자기와 똑같은 분신들로 변하면서 서로 합세해 악한 요괴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신화와 설화 속의 얘기는 아닐지라도 생물계에선 플라나리아 한 마리를 자르면 두 마리가 되는 분신술 유사의 생태를 보이는 개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의 인간은 ‘지금 여기에 있는’ 단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장소’에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자연법칙이 있기 때문에 영미법계에서는 현장부재의 증명이 이루어졌을 경우, 피고인이 범죄를 실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의 직접증거로 채택된다고 합니다. 





수사관이 얘기합니다. 

‘범행 현장에서 당신의 지문이 나왔다. 당신이 범행을 저지른 것 아니냐?’ 

이에 용의자가 답변합니다. 

‘그 장소에 갔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범행이 일어났던 그 시간이면 저는 여자 친구와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수사관이 다시 얘기합니다. 

‘그 친구를 한 번 불러와 봐라. 그런데 명심할 점은 범행 시각 그 현장 근처에 세워져 있다가 이동한 당신의 차가 방범용 CCTV 화면에 잡혔다. 이런데도 거짓 알리바이를 댈 거냐?’ 

용의자 이때 ‘묵묵부답’합니다. 



거짓 알리바이를 댈 때, 가장 쉬운 것은 ‘누구누구랑 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같이 있었던 사람 몇 사람만 매수하면 되니까요. 그런데다가 범죄를 입증할 책임은 수사기관인 검찰에 있기 때문에 용의자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명백한 증거도 없다면 사건은 미궁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반면 사건의 용의자로 억울하게 지목된 사람은 알리바이 증명이 그 억울함을 풀어줄 결정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알리바이는 ‘시간’을 중심으로 한 개념이기 때문에, 범행 시각에 착오가 있다면 결과적으로 객관적 진실에 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단편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미국에서 있었던 ‘포커게임 알리바이 사례 <Michigan Ethics Op. CI-1164 (1987)>’인데 그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갑은 낯선 누군가로부터 강도를 당해 손목시계와 귀중품을 탈취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그 피해 시각이 ‘밤 12경’이라고 했다. 경찰은 을을 강도 범행의 용의자로 체포했고, 검찰은 을을 강도죄로 기소했다. 을은 자신의 변호사와 면담을 하던 끝에 결국 범행을 자백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범행 시각이라고 주장하는 그날 밤 12시경에는 여러 사람과 함께 포커를 쳤기 때문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며, 이를 증언해 줄 사람들의 명단을 제시한다. 사실인즉 을은 포커게임이 끝나고 난 ‘새벽 2시경’ 실제로 범행을 저질렀는데, 갑이 둔기에 머리를 맞고 실신한 데다가 손목시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범행 시각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이 포커를 친 사람들 중에는 사회적 평판이 좋은 사람들도 있어 이들이 증언을 한다면 알리바이가 인정될 것으로 변호사는 판단한다. 그런데 이들을 증인으로 불러야 할 것인지에 대해 변호사는 고민한다. 이에 변호사는 자신이 소속한 미시간주 변호사협회 윤리위원회에 익명의 질의를 통해 조언을 구한다.』




여러분께서 변호사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알리바이를 주장하겠습니까, 아니면 의뢰인의 말대로 피해자가 시각을 착각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의뢰인에게 범행을 모두 인정하도록 권하시겠습니까? 실제 사례에서의 변호사윤리위원회는 ‘변호사는 포커 친구들을 증인으로 소환해야 해서 알리바이 입증을 해야 한다’는 권고의견을 냈습니다. 즉,『알리바이 주장을 할 경우, 결과적으론 범인을 풀어주는 일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변호사는 검사의 역할까지 할 필요가 없는 데다가, ‘검찰 측에서 주장하는 범행 시각’에 함께 포커를 쳤다는 알리바이 증언은 진실한 증거(truthful evidence)이기 때문에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유리한 진실한 증거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결국 변호사윤리위원회의 입장은 차후 정확한 범행 시각(새벽 2시)이 밝혀질는지 모르지만, 피해자 주장 시각(밤 12시)을 중심으로 한 알리바이는 진실된 사실이므로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반면 우리나라 형사소송실무는 범행시간을 공소사실 중 경미한 사항으로 취급하고 있긴 합니다.


‘진실은 신만이 안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 모든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진실의 조각들은 어딘가에 ‘증거’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기에, 입법자들은 차선책으로 ‘진실의 깨진 조각들’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알리바이’가 시간이란 관점을 중심으로 진실을 규명하지만 본질적 진실과는 다를 수도 있는 것처럼, 만화경 속의 색유리조각처럼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진실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그럴듯한 알리바이 주장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면, 실체적 진실을 찾는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손오공의 허수아비 분신과 싸우는 것처럼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진짜 손오공을 찾아 그의 머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분신들은 스스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알리바이를 악용하는 사람과 허위 알리바이를 벗겨내려는 자들 간의 진실게임이 이 시각 늦은 밤에도 계속되는지 검찰청 창가엔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알리바이 판단 실례] 


○ 대구지방법원 2010. 10. 4. 선고 2010고합39 판결(성폭법위반) 중 발췌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은 판시 제1항 및 제3항 기재 일시에 범행 장소에 없었다는 취지의 알리바이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에 관하여 증인 권OO의 증언은, 당일의 특징적인 일과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휴가철 토요일 오후라는 일반적인 상황만을 근거로 피고인이 당시 옥수수 판매를 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추측에 가까운 내용에 불과하여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고, 피고인 측이 제출한 일일출역현황 또한 그 작성형식이나 내용에 비추어 피고인이 위 판시 제3항 기재 일시에 흥해읍 등지에서 용역작업 중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오히려 앞서 거시한 통신회신 결과(증거기록 161쪽, 202쪽 참조)에 의하면, 피고인은 위 각 범행 일시에 범행 장소 인근에 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특히 2010. 5. 3. 17:12경에는 ○○읍 부근에 있었으나, 그 후 당일 18:25경에는 범행 장소 인근으로 이동하여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2013. 3. 18. 선고 2012고합72 판결 (살인) 중 발췌

피고인은 자신이 운행하는 중장비를 청소하기 위해 황산을 가지고 있었고 칼도 평소 낚시에 필요해서 승용차에 보관하고 었을 뿐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우연히 피해자를 발견하자 순간적으로 화가 나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피고인은 황산을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지인으로부터 중장비 청소에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황산을 얻었다고 하지만 그 시기가 범행 전 불과 보름 전이고 그 양도 약 250cc에 불과한 데다가 계속하여 집에 보관해 온 점, 이 법정에서 적법하게 채택된 증인 고OO은 평소 피고인과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임에도 피고인의 차에서 낚시에 필요한 칼을 보거나 피고인이 낚시를 하면서 칼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범행 직전 피고인과 술을 마실 때 피고인이 누군가를 혼내줄 것인데 무슨 일을 저지르더라도 피고인과 같이 있었다고 말해달라고 부탁받았으며, 당시 피고인이 그다지 술에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고 법정 및 수사기관에서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피해자가 근무하는 치킨집 부근에서부터 피해자를 기다리다가 미행한 후 범행에 착수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미리 황산과 칼을 준비하고, 범행 발각에 대비하여 마치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인 양 꾸미고 알리바이까지 준비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였던 것이지 결코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 피고인은 범행 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술을 주문하거나 마치 계속하여 000과 술을 마시던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하였고, 수사기관에서도 황산과 칼의 습득 경위 등 범행 전후 사정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다가 증거가 제출되면 그제야 진술을 번복하곤 하였으며, 범행 종료 후 불과 세 시간 만에 이루어진 경찰조사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범행 방법, 범행도구인 칼의 행방 등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하였다. 나아가 피고인은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와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이후 있을 손해배상 청구에 대비하여 자신의 주된 재산인 중장비 등을 처분하기까지 하는 등 말로만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한다고 하고 있을 뿐 자신의 범행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자 및 그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하 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징역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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