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0일 칼럼 기고분)
아이들을 유괴당한 엄마 2명이 기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인터뷰합니다.
① A 모 “내 아이들이 나를 원했고, 필요로 했어요. 그런데 나는 이제 도울 수 없다는 것이 슬퍼요.”
② B 모 “내 아이들을 찾아주세요. 아이들은 나를 필요로 해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내가 아이들을 구해야 돼요.”
위 두 명의 엄마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상황이 급박함에도 ‘과거 시제’를 쓰고 있는 A 모입니다. A모의 진술은 미국 전역을 경악케 한 ‘수잔 스미스’ 사건의 인터뷰 내용을 옮겨 놓은 것인데, 범죄심리학자나 진술 분석가들은 위 인터뷰 진술과 인터뷰 과정의 표정 변화로 진범이 바로 아이들의 모친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수잔은 이혼 이후 직장에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지만, 남자가 아이들 양육을 꺼리는 바람에 아이들이 사라지면 사랑을 지킬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아이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를 호숫가로 밀어 넣어 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잔의 유괴 신고로 시작된 수사는 답보상태를 보이다가, 결국 수사관들의 과학적 심리분석․진술분석을 통해 진범은 다름 아닌 수잔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10월 K수영장에서 9살 여아가 수영 중 질식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안전요원에 의해 수영장 밖으로 나온 딸아이를 보고 엄마 C녀는 아연실색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엄마 C녀를 용의자로 지목하였습니다. 사건 전날 C녀는 딸 앞으로 보험을 들었고, 수영장에 대해서도 별도로 보험금 청구하였으며, 그 밖에 딸이 C녀의 내연남을 싫어했다거나, C녀가 탈의실에서 딸에게 과자와 음료수를 주었다는 제3자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C녀는 자신은 범인은 절대 아니라며 강력히 반발하였고, 경찰에서는 심증은 있으되 물증이 없는 관계로 2년 이상 미제사건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 후 수사기관이 C녀에게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과자와 음료수 등을 보여주며 뇌파검사를 실시해 본 결과 급격한 변화가 있었으며,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통해서도 양성반응이 나오자 이를 토대로 C녀를 구속하였고, 결국 재판 과정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창원지방법원 2006. 8. 16. 선고 2005고합335, 2006고합83 판결). 당시 C녀의 진술서 중 흥미로운 내용은 집에서 밥 먹고 수영장으로 출발한 시각 등은 정확히 진술하면서도 ‘청산가리가 든 음료수를 건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 자체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생략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술분석방법에는 CBCA(준거기반내용분석), RM(현실모니터링), SCAN(과학적 내용분석), FBI 진술분석기법들이 있는데, 최근 김종률 검사는 ‘진술분석(학지사, 2010)’이란 책을 통해 SCAN기법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진술분석을 소개하면서, ‘거짓말은 은폐와 조작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은폐와 조작 과정에서 심리적인 동요나 미세한 표정 변화가 탐지된다면 이는 진술분석과 병행된 심리분석 대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① 은폐는 ‘표현되어야 할 감정’이 결여되어 있거나(감정표현진술), ‘정작 밝혀져야 할 범행 전후 상황’에 대한 진술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중요치 않은 정보로 진술의 대다수를 채울 경우(진술내용과 그 비중)에 포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나무밭에서라도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란 것을 외치고 싶듯이 비밀이 엄청날수록 이를 감당하지 못하여 내뱉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비밀을 공유한 진범과 목격자가 범행을 은폐하기로 합의하였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진술 속에는 진실의 파편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② 조작은 대체로 용의자 등이 기억 속의 다른 상황이나 허구의 상황을 사건에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때에는 진술내용이 제3자의 관점에서 진술되거나 추상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기억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므로 등 뒤에 남겨진 상황은 1차적 기억의 대상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떠나온 장면으로 회귀하는 진술’이 있거나(기억의 전진 법칙), 진술내용에 대해 암초에 걸린 것처럼 우왕좌왕하고 확신이 없다면(암초 효과) 조작된 진술의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대법원 2005. 5. 26. 선고 2005도130 판결>
거짓말탐지기의 검사 결과에 대하여 사실적 관련성을 가진 증거로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으려면, 첫째로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일정한 심리상태의 변동이 일어나고, 둘째로 그 심리상태의 변동은 반드시 일정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며, 셋째로 그 생리적 반응에 의하여 피검사자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가 정확히 판정될 수 있다는 세 가지 전제요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마지막 생리적 반응에 대한 거짓 여부 판정은 거짓말탐지기가 검사에 동의한 피검사자의 생리적 반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장치이어야 하고, 질문사항의 작성과 검사의 기술 및 방법이 합리적이어야 하며, 검사자가 탐지기의 측정내용을 객관성 있고 정확하게 판독할 능력을 갖춘 경우라야만 그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대하여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는 없다.
[코멘트] 거짓말탐지기 검사(심리생리검사)의 일반적 기법으로는 대적심사기법(CIST), 벡스터구역비교법(BZCT), 수정된 일반질문검사(MGQT), 유타구역비교법(UZCT)이 있고, 이와 같은 일반검사 후 부가적으로 실시하게 되는 긴장정검검사(POT), 묵답식검사(SAT), 자극검사(ST), 재검사(RT) 등이 있는데, 경찰청에서는 실무상으로 ‘유타구역비교검사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법원에서 그 결과를 쉽게 채용하지는 않는 편인데 그 주된 이유는 소심한 피검자는 경찰서 가서 검사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떨릴 수 있는 반면 뻔뻔한 거짓말쟁이는 대담하여 거짓말이 안 잡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여타 진술분석, 행동분석기법과 마찬가지로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 검사) 또한 그 원인분석에 있어 검사자의 주관적 의도가 개입될 수 있는데다가, 소심한 피검자의 경우 ‘단순 초조불안이나 죄책감의 심리상태’로 발생한 생리이상반응을 ‘탄로우려의 심리상태’에 기인한 것이라고 오판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결과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통상 ‘부정적 답변을 유도한 질문’과 ‘긍정적 답변을 유도한 질문’을 골고루 해야 하는데 질문자가 선입견을 갖고 질문지를 작성할 경우 질문사항의 합리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