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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4. 2017

106 자유심증주의

(2013년 10월 22일 칼럼 기고분)



나이 지긋한 노인이 낙엽 떨어지는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노인은 오랫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뜨더니 옆자리의 젊은이에게 묻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그동안 살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린 적은 없었는가?’ 

젊은이는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아, 예~, 제가 하는 일은 매번 실수투성이인 데다가 날마다 후회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그런데 어르신은 목사님이세요? 들고 계신 책이 성경책 같아서요.’라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아니, 나는 속세의 판사였는데 얼마 전 그만두었네. 이 책은 법전인데, 판사직을 그만두고 나서야 법조문 하나하나가 새롭게 읽히니 내가 내린 판단들 중에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네.’ 

‘어르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예전에도 정말 좋은 판사님이셨을 것 같네요.’ 

곧이어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젊은이는 노인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고 기다리던 사람과 인사를 나눕니다. 


노인은 다시금 나지막이 소리 내어 글을 읽어갑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증거재판주의. 제1항.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제2항.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제308조. 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 판단에 의한다...”


'자유 판단이라!... 자. 유. 판. 단... 무거운 추를 메단... 날개...'




자유심증주의의 연혁


형사사법제도의 최고 이념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인데, 이를 위하여 고대에는 신판(神判)이라 하여 신의 계시를 기다리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피고인의 체중을 2번 달아 무게의 경중이 생김에 따라 유무죄를 판명하던지, 유독물을 먹게 한 다음 중독여부에 따라 유무죄를 판명하던지 하는 것이 그것이었고, 동양에서는 신의 사자(使者)인 해태를 판관의 곁에 두어 해태가 거짓말을 하는 자를 뿔로 받아버리는 것으로 상징화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중세 유럽이나 중국 진한시대 이후 규문 절차, 소위 ‘원님재판’으로 원님이 기소하고 판결하고 집행하는 방식이 정착되자 판관의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고 신판과 같은 비합리적인 사실 인정방법을 배제하기 위하여 국가는 소위 ‘법정 증거주의’를 채택하게 됩니다. 법정 증거주의란 증거의 증명력 평가에 법률적 제약을 가하여 일정한 증거, 예컨대 ‘범인의 자백’이나 ‘2인 이상 신용할 수 있는 자의 증언’이 존재하면 반드시 유죄로 인정하게 하거나(적극적 법정 증거주의), ‘시체’, ‘범행도구’ 등 일정한 증거가 없으면 유죄로 할 수 없도록(소극적 법정 증거주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차만별한 증거의 증명력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실체적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되질 못했는데, 일례로 2인 이상이 거짓 증언하면 죄 없는 자도 죄인으로 만들 수 있었으며, 자백 존중 주의는 결국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까지 성행시켰습니다(당시 생겨난 말이 ‘자백은 증거의 왕’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혁명 이후 형사절차의 개혁과정에서 법정 증거주의가 폐지되고 자유심증주의가 수립되기에 이르러 자유심증주의는 1808년 프랑스치죄법에 최초로 명시된 후 대다수 국가의 형사소송 기본원칙으로 수용되었습니다. 



무거운 추를 메단 날개


자유심증주의는 법정 증거주의의 반대말입니다. 법정 증거주의가 법관의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을 배제하고자 인간 이성을 신뢰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면, 자유심증주의는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증거의 가치판단이나 사실 인정을 전문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게 된 것입니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 신뢰가 그나마 오판을 최소화하는 길이라 깨달은 것이지요. 이에 자유심증주의는 법관으로 하여금 증명력 판단에 있어서 형식적 법률의 구속을 받지 않고 합리적인 사실인정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과거의 법정증거주의의 획일성을 극복하고 사실인정의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할 수 있게 하여 실체적 진실 발견에 가장 적합한 방책이 된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09. 11 26.자 2008헌바25 결정). 


다만,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 형성의 정도는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 즉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형성되어야 합니다(참고로 민사소송의 목적은 '상대적 진실 발견'에 있으므로, 민사소송에서의 사실인정은 당사자간에 다툼이 없거나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하면 됩니다). 


또한 자유심증주의를 통하여 합리적인 사실인정을 담보할 수 있도록 증거능력의 제한, 증거조사과정의 합리화를 위한 당사자의 참여, 유죄판결의 증거설시 등 여러 가지 제도적 보완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법관은 자유롭게 증거의 취사선택을 할 수 있고, 모순되는 증거 중 어느 것을 믿을 건지도 스스로 결정하며, 동일한 증거 중 일부만을 취신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신빙성이 없는 증인의 증언이라 할지라도 일정 부분의 증언을 골라내어 믿을 수 있고, 또한 다수 증거를 종합한 결과에 의해서도 사실 인정을 할 수 있으며, 간접증거 또는 정황증거에 의하여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헌법재판소 2009. 11 26.자 2008헌바25 결정). 



자유는 그 한계선상에서 제멋대로 판단해 버리는 ‘권한 남용’으로 흐르거나 반대로 ‘완벽을 향한 강박증’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이 신을 대신하려다 보니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필연적인 결과라고 하여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국민은 병적 완벽주의에 시달리는 판사를 원하지도 않고, 좁은 경험으로 사건을 예단하거나 친소관계 등으로 당사자 중 일방을 편드는 판사도 원치 않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재판관은 신으로부터 권한의 일부를 인양받았다고 하여 자신이 신 또는 그 대리인인양 착각하지 않고, 스스로가 불완전한 인간임을 명심하여 끊임없이 연마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심사숙고함으로써 공정하고 현명하게 판단하는 자일 것입니다. 



<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8도2621 판결>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겨져 있으나(형사소송법 제308조), 그 판단은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하여야 하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하나(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 이는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를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의심을 일으켜 이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인바, 여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의심이라 함은 모든 의문, 불신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경험칙에 기하여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을 사실인정과 관련하여 파악한 이성적 추론에 그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관념적인 의심이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은 합리적 의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5. 4. 25. 선고 94도2347 판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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