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3일 칼럼 기고분)
[표지 : 영화 <재심>의 스틸 컷]
[사례]
① A는 살인죄로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나중에 진범이 잡혔습니다.
② B는 사행성 게임장의 실질 업주인 C를 대신하여 자신이 업주인양 자수하여 게임산업진흥법위반 등의 본범으로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C가 위장자수의 대가로 지급하기로 한 돈을 주지 않자 B는 수사기관에 진범이 자신이 아니라 C라고 진정을 냈고, 이에 C 또한 사행성 게임장의 실질 업주로서 기소되어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③ D는 오래전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실형 복역하였으나 나중에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통해 당시 수사기관의 고문, 폭행 등에 따라 자백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④ E는 목격자를 자청하는 F의 증언이 유력한 증거가 되어 절도죄로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나중에 F는 위증으로 입건되어 결국 위증죄의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원은 문제 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이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오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민사소송법 제451조나 형사소송법 제420조, 군사법원법 제469조에서 정한 재심이유가 있다면 오판된 확정판결 등을 대상으로 재심청구할 수 있으며, 5․18민주화운동특별법 제4조, 부마민주항쟁특별법 제11조 등에서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등에서 정한 재심이유의 존부를 불문하고 그와 관련하여 유죄판결확정된 자에 대하여는 불의에 항거한 점을 감안하여 특별재심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상대적 진실 발견과 그에 따른 사적인 권리관계의 확정을 목적으로 하는 민사소송에서는 재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은 제한되어 있으나(원칙적으로 당사자가 판결이 확정된 뒤 재심의 사유를 안 날부터 30일 이내, 또한 판결이 확정된 뒤 5년 이내), 실체적 진실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형사소송에서는 그 재심의 소 제기기간에 제한이 없습니다.
사법부의 확정된 판단은 일단 존중되어야 하므로, 원판결에 사실오인이 있다거나 형벌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만으로는 대법원에 상고할 이유도 되지 않을뿐더러 재심사유에는 더더욱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에 형사소송법에서는 재심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① 원판결의 증거된 서류 또는 증거물,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 등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변조, 허위인 것으로 증명된 때(1호, 2호), 무고로 인하여 유죄의 선고를 받은 경우에 그 무고의 죄가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3호)
② 수사 또는 공소제기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나 검사 또는 원판결 등에 관여한 법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7호)
③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5호) 등
여기서 5호는 'nova(신규)형 재심사유‘라 불리고, 5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falsa(허위)형 재심사유'라 불리는데, 실무상 대부분의 재심사유는 5호 nova형에 해당합니다. 물론 falsa형이라 하더라도 그 판결의 흠결이 사후적으로 판명되므로 넓은 의미의 nova형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사례 ③, ④).
사례 ①, ②와 관련해서 nova형 재심사유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증거의 ‘명백성’과 ‘신규성’ 요건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증거의 명백성이란 신증거가 유죄판결의 기초로 된 사실인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명백한 경우를 의미하고, 당해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하였거나 또는 발견되었어도 제출, 심문 불가능하였던 증거로서 적어도 그 증거의 가치판단에 있어서 다른 증거에 비교하여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는 증거여야 하므로, nova형 재심사유는 원판결 후 진범이 검거되어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가 거의 유일한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사례 ①).
반면 위장자수, 대신범인의 사례에서는 차후 진범이 밝혀져 증거의 명백성 요건을 통과하더라도 신규성 요건 미비로 재심청구가 기각될 우려가 있습니다(사례 ②). 이는 대법원이 신규성 요건은 법원뿐 아니라 피고인 스스로에게도 새로워야 하므로, 피고인이 재심청구한 경우 재심대상이 되는 확정판결의 소송절차 중에 그러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데 피고인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신규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09. 7. 16. 자 2005모472 전원합의체 결정). 이에 대하여 대신범인에게 방조죄 또는 범인은닉죄 등의 죄책을 묻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피고인이 종전 소송절차에서 허위로 자백한 것을 판결확정 후 이를 번복하는 진술을 하거나 진범 스스로가 자신의 소행임을 자백하는 진술을 하였다면, 이는 당해 피고인이 명백히 무죄임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임에도 신규성을 부정함으로써 재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실체적 진실에 반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다수의견]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에 정한 무죄 등을 인정할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란 재심대상이 되는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하였거나 또는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를 새로 발견하였거나 비로소 제출할 수 있게된 때를 말한다. 증거의 신규성을 누구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하여 위 조항이 그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 대상을 법원으로 한정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심은 당해 심급에서 또는 상소를 통한 신중한 사실심리를 거쳐 확정된 사실관계를 재심사하는 예외적인 비상구제절차이므로, 피고인이 판결확정 전 소송절차에서 제출할 수 있었던 증거까지 거기에 포함된다고 보게 되면, 판결의 확정력이 피고인이 선택한 증거제출시기에 따라 손쉽게 부인될 수 있게 되어 형사재판의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헌법이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규정한 취지에 반하여 제4심으로서의 재심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이 재심을 청구한 경우 재심대상이 되는 확정판결의 소송절차 중에 그러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데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 증거는 위 조항에서의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서 제외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대법관 김영란, 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박일환, 대법관 김능환, 대법관 전수안의 별개의견]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는 그 문언상 ‘누구에 의하여’ 새로 발견된 것이어야 하는지 그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있는데, 다수의견과 같이 그 증거가 법원이 새로 발견하여 알게 된 것임과 동시에 재심을 청구한 피고인에 의하여도 새로 발견된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은 피고인에게 명백히 불리한 해석에 해당하며, 법적안정성의 측면만을 강조하여 위 조항에 정한 새로운 증거의 의미를 제한 해석하는 것은 위 조항의 규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또한, 다수의견이 예정하는 피고인의 귀책사유 때문에 신규성이 부정된다는 이유로 재심사유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정의의 관념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법원이 종전 소송절차에서 인식하였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하여 새로운 증거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그에 의하여 판결확정 후에도 사실인정의 문제에 한하여 이를 재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규정한 헌법의 취지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에서 무죄 등을 인정할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하는지는, 재심을 청구하는 피고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재심 개시 여부를 심사하는 법원이 새로이 발견하여 알게 된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