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 수백 년간 스페인은 바다를 호령하며 신대륙과 식민지에서 수많은 금․은 보화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종종 거센 풍랑과 비바람으로 제국의 보물선들을 삼켜버렸고, 1641년 막대한 보물을 싣고 스페인으로 향하던 600톤급의 ‘콘셉시온 호’ 역시 허리케인의 희생제물이 되어 바다 속에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난 1687년의 어느 날, 보물선 ‘콘셉시온 호’의 전설을 듣고 자란 영국의 ‘윌리엄 핍스’ 선장은 오랜 탐사작업 끝에 ‘콘셉시온 호’의 보물 일부를 찾아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보물의 소유권 취득에 관한 법리는 복잡합니다만 대략 ‘찾는 놈이 임자’라는 법리에 따라 스페인의 보물을 영국이 취하게 된 데다가, 어린 시절 양치기 목동에 불과했던 핍스 선장이 보물 중 일부를 나라에 바쳐 벼슬까지 얻었으니 영국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특히, 투자금의 수백 수천 배를 번 투자자들의 소문은 영국 전역에 무섭게 퍼져나갔습니다.
보물선 테마로 시작된 주식버블
이후 ‘제2의 핍스’를 꿈꾸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투자자를 모아 바다탐험에 나섰습니다. 최근 주식시장의 ‘녹색테마’나 ‘신종플루 테마’처럼 당시에는 ‘보물선 테마’가 형성되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후로 보물선을 찾았다는 소식은 거의 없었고,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자신이 투자한 배가 식민지에서 향신료라도 제대로 싣고 무사히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711년 영국의 재무장관이 설립한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 역시 이렇다 할 실적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720년 ‘남해회사가 신대륙 주요항구에 대한 통상권과 광산 운영권을 따냈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남해회사 주식을 사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주가는 6개월여 만에 10배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남해회사 임원들이 서둘러 주식을 처분했다’는 소식과 ‘주가를 끌어올린 재료가 거짓루머였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주가는 한순간에 폭락했습니다.
당시 영국 증권시장엔 사기와 정보조작이 판쳤기 때문에 위와 같은 사례들도 제법 있었지만, 특히 남해회사의 경우엔 그 피해가 엄청났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네덜란드 튤립 버블, 프랑스 미시시피 버블과 함께 세계 3대 버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증권거래가 전산화된 현재, 금융시장에서의 사기와 조작은 300년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석학들도 ‘전 세계 금융시장에는 감독당국이 확인하지 못하는 투기와 작전들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탄할 정도입니다.
특히, 지난 미국발 금융위기이후 기준금리가 제로금리에 가까워지자 ‘은행이자로는 별볼일 없다’고 판단한 돈뭉치들이 주식시장에 몰리면서 ‘애들도 와라. 돈 놓고 돈 먹기!’ 베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 동호회’세력을 중심으로 각자 역할분담으로 하는 작전들이 늘고 있습니다.
증권거래법 시세조정행위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증권법을 기초로 한 ‘증권거래법’이 시행중에 있는데, 대표적으로 내부자거래와 시세조정행위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내부자거래’는 회사 관계자가 숨겨진 호재가 있을 땐 자기가 미리 주식을 사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식을 사게끔 하고, 반대로 숨겨진 악재가 있을 때에는 발표 전에 미리 주식을 처분하는 행위이고, ‘시세조종’은 시장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형성되어야 할 시장가격이나 시세동향을 인위적으로 관여하여 조작하고자 하는 행위로 다음과 같은 방식들이 있습니다.
① 번개형 - 거래가 뜸한 주식인데, 갑자기 꿈틀거리며 상승하는 움직임을 보이면 사람들은 뭔가 숨겨진 호재가 있는 줄 알고 덩달아 사들입니다(추격매수). 주가가 상한가 언저리에 가면 뒤따라 몰린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넘기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② 메뚜기형 - 메뚜기떼들이 60~70개 계좌에서 주식을 사모았다가 한꺼번에 팔아치워 가격을 확 떨어뜨립니다. 사람들은 회사가 망하는 줄 알고 덩달아 팔아 제낍니다. 그러면 이제 작전세력은 파격할인된 가격에 더 많은 주식을 주워 담은 뒤 적절한 타이밍에 상한가 몇 번 주면서 보유물량 전량 팔아치웁니다.
③ 복합형 - 최대주주변경 등 허위루머를 언론에 유포하거나, 사채업자에게 유상증자물량 받게 하고 호재를 발표한 다음 높은 가격에 증자물량 처분하는 등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가연계파생상품과 관련된 시세조정행위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작전들 중에서 번개형은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고, 메뚜기형이나 복합형 중에서 극소수만 금융감독 당국에 걸려드는데, 최근 ‘유명 연예인과 재벌 2세들의 경영참가’를 내세운 주가조작, ‘알고 보니 시세조정의 주인공’이었던 벤처신화의 주인공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300년 전 남해회사 투자로 인해 큰 재산을 날린 천재물리학자 뉴턴의 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욕심과 광기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