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2년쯤 된 후배가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예전엔 쉬웠는데 지금은 아니다. 나는 늦게 결혼을 하고 늦게 아이를 낳았다. 사실 남편이 아이를 원치 않았다면 나는 딱히 아이를 낳지 않고 딩크족으로 살았지 싶다. 살면서 아이들이 좋거나 관심을 가지고 살지 않았고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내가 가장 중요했고, 내가 잘되길 응원하며 집중하고 살았었다.
나는 현재는 4살 된 아들 한 명 키우는 워킹맘이 됐다. 아이가 29개월 되기까지는 아예 시댁에 아이를 24시간 맡기고 일을 했던 터라 저녁에 넷플릭스를 보거나 남편과 저녁 데이트를 하는 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주말에만 아이를 데려와 키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아이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주말만 손꼽아 기다렸었다. 말 그대로 애엄마이긴 한데 날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땐 시부모님이 너무 아이를 예뻐해 주시고 웃음이 떠나시질 않으니 그저 우리가 효도하는 거(?)라고 착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육아의 힘듦을 모르던 철없던 시절이어서 아이에 대한 고민이 있는 후배나 동생들에게 무조건 낳으라고 너무 행복하다고 지금 생각하면 존재하지 않는 육아 유토피아를 이야기해준 거나 다름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직주 근접으로 큰맘 먹고 이사를 오겠다고 결심한 건 아이를 데려오고 싶어서였다. 아이와 너무나도 같이 살고 싶어서 매일 남편에게 이사하자고 노래를 불렀다. 직장과 아이의 어린이집이 가까운 집에 살면 우리가 퇴근해서 아이를 볼 수 있는 꿈만 같은 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집으로 이사를 하고 아이와 함께 살 수 있게 된 날 너무 행복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시작되는 육아의 릴레이는 쉬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3대가 덕을 쌓아야 좋은 이모님을 모실 수 있다는데, 나 때문에 덕이 끊긴 건지 좋은 이모님 모시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날들도 상황들도 빈번히 발생했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린 풀타임으로 이모님을 모실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들이 그런 생활을 해야 했기에 이모님 평균 급여도 많이 높아져만 갔다.
아이를 퇴근해서 만나는 건 다른 일과가 시작되는 것과 같다. 너무 힘든데, 너무 아이가 예쁜, 양극화 심한 감정이 동시에 공존한다. 내 옷을 사는 것보다 아이 옷을 살 때가 더 행복하고, 아이와 관련된 정보라면 달러 빚을 내더라도 전부 해주고 싶은 감정이 든다. 내 목숨도 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에 빠져버린다. 무슨 머리에 이상한 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이 작은 존재에게 내 모든 마음과 시간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게 되어버린다. 만약 내게 네 목숨과 아이의 목숨 중에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해라고 하면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내 것을 가져가라 할 것이다. 이건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 후배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육아가 너무 힘든 날, 아이가 아파서 며칠을 고생하거나, 이슈가 생기거나, 혹시라도 이모님이 갑자기 못 나오시는 상황을 마주하거나, 오늘은 야근을 반드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남편도 같은 상황일 때를 만나면 정말이지 '아.. 우리나라 저출산이 왜 생기는지 알겠다' 싶을 정도다. 아이를 기를 때 정말로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맞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분명 맞지만 어떤 상황은 아직 정말 아직 멀었구나 싶은 것도 많다. 모든 환경에서 아이를 맡기는 입장의 엄마는 언제나 을이고 그 상황이 불만인 건 아니지만 머리로는 이 모든 상황이 머리로 계산하면 '손해'인 상황인 거다. 자식에게 뭔가를 바라고 이 모든 걸 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처럼 내 인생이 제일 중요했던 나도 아이를 기른다는 건 새로운 우주를 선물 받는 것과 같았다. 나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작은 존재가 나를 의지하고 나를 믿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걸 보면서 나 자신이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의지력과 나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다.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편이나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또 다른 형태로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게 자존감과 연결이 되며 나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된다.
심지어 긴장되거나 힘든 상황을 만날 때, 두려운 상황을 만날 때도 아이를 생각하면 그런 감정들은 눈 녹듯 사라졌다. 무거운 미팅을 앞두거나 심각한 상황을 만나 암담할 때, 특히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ㅎㅎ) 아이를 생각하면 어째서인지 슈퍼파워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 말을 해주고 돌아오는 길에 예전 어떤 동료가 기가 막힌 말로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했던 내게 결심을 해주게 한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편하게 살고 싶으면 둘이 살고,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아이를 낳으래"
물론 둘이 살아도 행복할 수 있지만 다시 시간을 돌려 두 가지 선택지를 내가 고를 수 있다면 나는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할 거고 지금도 아이를 낳은 것에는 한치의 후회도 없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것이 행복한 건 남편이 육아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걸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길 원하는 부분 때문일 거다.
'네 덕에 아빠 엄마는 에브리데이 슈퍼파워 에너지가 샘솟는구나. 평일은 영혼까지 갈아서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말은 너와 예쁜 추억으로 꽉꽉 채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