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lbrae... 그리고 Lake Tahoe
미 서부로 출국하기 전에 우리가 가서 지낼 집 주소를 건네받았다. 나는 당연히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가기 때문에 주소 역시 샌프란시스코라고 생각하고 도로 주소만 받아 적고 지도 앱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 : 이모, 집 주소가 123 abc avenue 맞죠? 여기 xx랑 매우 가까운데 이쪽에서 summer camp해도 되겠네요.
이모 : 무슨 소리냐? 우리 집에서 한참 먼 곳인데?
나 : 지도 앱에서 검색했는데 걸어서 갈만한 거리로 나오는데요?
이모 : 차로도 20분이 넘는 거리인데 어떻게 걸어가? 거긴 샌프란시스코잖아.
나 : 이모 집도 샌프란시스코잖아요.
이모 : 우리는 Millbrae야!!
순간 당황했다. 아니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이모의 집 주소가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니?! 분명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가는데?
다시 주소를 찾아보니 동일한 주소가 샌프란시스코에, 그리고 Millbrae라는 지역에 두 군데가 존재했다. 확인해보니 Millbrae는 샌프란시스코 공항과 매우 가까운 지역으로 샌프란시스코 시내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동네였다.
하마터면 엄한 동네에 아이 캠프를 등록해놓고 도착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고생할 뻔했다.
그렇게 정확한 집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는 모든 일정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나는 아직도 이모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샌프란시스코가 아니었다니. 사소한 충격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서 처음 본 Millbrae 지역은 매우 평화로웠다.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악명은 익히 들어서 충분히 겁을 먹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곳은 평화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엄마 또는 아빠와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놀고, 서로 잡기 놀이를 하고 자전거를 타며 깔깔대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한국의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특히 집 근처에 위치한 Millbrae Central Park는 앉아서 멍 때리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멀리 여행까지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시간이 참 좋다. 물론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일주일, 또는 열흘 정도의 여행에도 꼭 이런 시간을 여행 중간중간에 갖는다.
summer camp에 참여하게 될 장소도 찾아가 보고 현지인처럼 다른 아이들과 뒤섞여 뛰어노는 아이를 보며 잠시나마 내가 여기 살고 있다는 착각도 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차량에 짐을 두고 내리지 말라는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만큼 정상적으로 세워둔 차량도 한낮에도 창문을 깨고 물건을 훔쳐갈 만큼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여행을 다니며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며 돌아다닌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그런 부분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와는 다소 조금 떨어져 있고 관광지는 아니지만 오히려 평화로운 이곳이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사실 생각보다 돌아다닐 곳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엄청 넓은 지역도 아니고 유명한 관광지는 짧은 시간 안에 다닐 수 있었다. 일정을 아무리 여유롭게 잡아도 2-3일이면 보고 싶은 곳은 다 가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근처 가볼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찾던 중 Lake tahoe를 추천받아 가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소 거리도 멀고 생소한 지역이라 망설여졌는데 우리는 엄청나게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보게 되었다. 다만 굉장히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추울걸 대비하고 얇은 패딩을 챙겨갔는데 결론적으로는 입을 일은 없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조금 쌀쌀했지만 한낮에는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따듯했다.
Lake Tahoe는 샌프란시스코에서 4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중간에 새크라멘토 지역을 지나 해발 2000미터가 훨씬 넘는 호수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처음 오자마자 느낀 생각은 여기는 무조건 와야 한다!!!라는 생각이었다.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들은 스위스를 보는 것 같았고 호수는 너무나도 깨끗했다.
호수는 바다같이 넓었지만 바다 같지 않은 물이었다.
바다로 착각하게 만드는 호수 뒤로는 눈이 덮인 산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높은 위치로 인해 약간은 서늘했지만 호수에서 수영하는 사람도 볼 수 있었고 나도 수영복을 챙기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후회를 했다. 특히 아이가 호수에 너무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게 제일 아쉬웠다.
호수지만 파도도 치고 지금 다시 봐도 이게 호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아이는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모래놀이로 아쉬움을 달랬다.
Lake tahoe에는 나무로 지은 집들이 많았다. 호수를 기준으로 호텔이 많은 지역(상업적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나뉘어 있었는데 우리는 한적한 지역을 택해서 통나무로 만든 펜션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호수밖에 없어 보이는 지역에서 이틀 밤이라 처음에는 지겹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호수에서 즐길거리가 생각보다 많았고 호수를 기준으로 동서남북 각각 위치에서 보는 뷰가 달라 위치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이곳은 아직까지도 산에 눈이 쌓인 것을 볼 수 있고 5월까지도 스키를 타러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한겨울에 오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음에 또 올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겨울에 스키를 타러 와 보고 싶다.
과연 그런 기회가 또 있을지... 지금 이렇게 한 달 씩이나 미국에 올 수 있는 것도 그전에는 생각을 못했던 일이지만 이렇게 와 있는 걸 보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