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이 모이면 무슨 대화를 나눌까
고등학교 친구 중에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때는 그냥저냥 알고 지냈다가 나중에 더 친해진 경우가 생긴다. 아무래도 아이가 있는 친구와 없는 친구와는 대화의 주제가 다르고 공감대 형성도 다르기 때문에 점점 더 아이가 있는 친구들끼리의 모임이 잦아지게 된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더라도 아이를 동반해서 가기 때문에(아빠+아이) 이때 엄마는 자연스럽게 휴가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친구와의 여행도 큰 무리 없이(오히려 집에서는 환영) 갈 수가 있다.
그렇다고 자주 만날 수도 없는 일. 회사일도 그렇고 아이 학원, 학교도 챙겨야 하고 요즘 같은 시기에는 빨리 퇴근한다고 하더라도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보통 평일 중 휴가를 내서 친구들과 낮부터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주말에 시간이 맞는 친구와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서 술 마시며 수다를 떠는 편이다.
육아하는 아빠들이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일반적인 회사 생활, 사업하는 친구들의 근황, 팀장급이 된 친구들은 팀원들에 대한 이야기 등 회사를 주제로 시작한다. 하지만 친구들 모두 가정이 0순위이다 보니 회사 생활은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다. 본인의 회사 생활보다는 아이의 학교 생활이 우선이고, 승진보다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중점을 둔다.
친구들과의 고등학교 시절 에피소드들을 하나둘씩 꺼내며 이야기하는 이때가 제일 많이 웃고 행복한 시간이 된다.
이때만큼은 육아나 돈, 회사 문제는 다른 세상 속 이야기가 된다. 오로지 옛날 그때, 그 기억만이 우리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해도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모을 수 있을까. 당연히 중요한 이야기 소재이다. 돈보다는 가정이 우선이지만 그래도 돈도 중요하다. 재테크는 아마 모든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닐까 싶다. 아빠들이 모여도 당연히 꼭 빠지지 않는 내용이다. 주식 이야기, 청약 당첨된 소식, 새로운 재테크 방법 등 새로운 정보를 공유한다. 하지만 코인은 대화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아빠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섭기 때문에.
이제 메인타이틀이다. 앞의 주제가 애피타이저였다면 이제 본 주제로 돌아온 것이다. 아직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의 아빠, 이제 학교를 보내는 아이의 아빠들의 공통된 관심은 당연 아이의 생활이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 대한 이야기, 학교나 유치원, 그리고 남자아이라면 나중에 보내게 될 군대에 대한 주제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 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특히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월화수목금금금' 밖에 없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친구들과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평일에 회사 퇴근을 하고 나면 육아 출근을 해야 하고, 주말에는 24시간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 '육퇴'는 멀고 휴가는 '휵아'가 되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제는 좀 살만하다며 낄낄거린다.
(아내의 직업 특성상 아빠들이 대부분 주말에 아이와 함께하고 서로의 집에 초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이는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영어 유치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되고 나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 아빠들에게 초등학교 생활에 대해 주로 물어본다.
"학교 가게 되면 육아 휴직이 필요하다며?"
"1학년 때에는 손이 많이 간다며?"
"등하교는 어떻게 시켜? 학원은 어떻게 보내? 학원 버스가 학교까지 오나? 학원에서 다른 학원은 어떻게 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아빠는 궁금한 게 많아진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둘째 계획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하지만 하나같이 결론은 "nope".
이유는 비슷하다. 아이는 너무 좋지만 키우기가 너무너무 힘들다는 것. 보통 엄마들이 하는 고민을 똑같이 아빠들도 함께 한다.
자연스레 아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육아 방식을 공유하게 되고 아이의 공부 습관, 게임은 언제부터 시켜주는지, 아예 못하게 하는 친구부터 어느 정도는 허용하거나 좀 더 자유롭게 시켜주는 친구들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면서 각각의 방법에 대한 장단점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부분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지에 대해 나름 심도 있는 토론의 장이 열리게 된다.
(서로의 교육 방식에 대해 지적도 하며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점이 고등학교 친구이기에 가능한 장점인 것 같다.)
글을 쓰고 보니 아빠들이라고 특별히 다른 건 없어 보인다. 남들과 똑같이 관심 가는 소재에 웃고 떠들고 서로의 감정을 공감하며 나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된다.
10대 때는 주요 관심사였던 게임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었다면 20대에는 군대와 취직 이야기 그리고 30대에는 결혼 및 육아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바뀌어 간다.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는 말이 있다. 돌이켜보면 정말 고등학교 친구만한 친구도 없는 것 같다는 걸 느낀다.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며 육아에 진심인 친구가 고등학교 친구라...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건 진짜 친구 중에 제일 끝판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