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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Oct 01. 2024

날개의 언어, 발가락의 언어

먼지를 날리는 목소리. 


중력을 지닌 너는 간혹 나를 사로잡곤 해. 기사에서 포획된다는 말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길고양이에게나 사용될 말이잖아. 잡아서 좋은 주인을 만날 때까지 임시 보호 상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인간적이긴 하지만 낭만적이지 못해. 어떤 지구인이 행성을 잡아둘 수가 있겠어. 게다가 지구인은 그렇게 착하지 않거든.     

두 개의 달을 보게 될 거야. 나는 어딘가 처박아 놓은 천체 망원경을 찾을 거야.


2024PT5. 명명된이름은 멋대가리 없어. 

길고양이 이름을 짓듯이 처음 보게 된 날 나만의 이름을 지을 거야 서로를 끌어당겼던 것만큼, 다가서지 못한 거리의 기억을 남겨두고 떠날 거야.     

53일 동안 두 개의 달을 밤하늘에서 보게 될 거야.           



제일 처음 타인의 말을 배운 것은 수어(手語)였어요     

그 친구 사랑하는 사람이 농아였는데요 그녀에게 시 한 편을 읽어주고 싶었다고 해서 헌책방으로 달려가 수화 책을 사다가 한 달 동안 손가락을 구부려가며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을 연습했어요     

왜 나와 함께 가야 하는지 묻지도 못한 채 따라가 그녀를 앞에 두고 암송해 주었어요     

보여지는 말….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어요. 손가락에도 음색 같은, 서로 다른 뉘앙스나 부드러움이나 낮고 굵은 혹은 높고 가는 그런 게 있는지 물어보려다 참았던 것 같아요.

처음엔 책을 그냥 보여주면 되는 거 아냐 그렇게 물었었는데 자기는 꼭 그게 하고 싶다고 해서 대단한 우정 같은 것 말고 재미있을 것 같아 그냥 같이 배웠어요     

그녀가 울었어요 

저녁을 같이 먹자는 권유도 뿌리쳐 내며 둘을 보내고 혼자 먼 길을 돌아왔어요. 전철 안에서 수어를 하는 사람들 대화를 듣게 되었어요

그들이 큰소리로 들숨을 쉬며 웃고 나도 웃었어요. 곁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어요    


      

비둘기 발가락 본 적 있나요?

네 그 평화의 상징이며 더러운 깃털을 날리고 쓰레기봉투를 쪼아 먹는 그 생명체   

  

가만히 보면 발가락이 다 있는 비둘기가 별로 없어요. 주머니 속에 소지품들이 너무 많아요. 고양이 사료 한 움큼 아주 작은 손톱깎이     


산책길을 밤이 먼저 맞아주었어요. 비둘기들은 하늘을 날다 벽에 붙은 현수막 길을 가로지르는 만국기 같은 곳에 발이 걸려요. 혼자서 멈추지 않고 어둠 속을 날아오르죠. 옥죄는 나일론 실에서 벗어나려고 점점 더 엉키다 보면 날개 힘도 잃어가고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날아오르며 발가락을…. 끊어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살아가는 건 살을 내주고 얻는 전리품 같은 거예요. 상처가 아물 때까지 조심히 디디며 살아가요 절름거리면 안 돼요. 표적이 될 순 없으니까요

어떤 비둘기는 양쪽 발가락이 하나도 없어요. 킬힐 뒷굽만 신은 것처럼 걷게 되죠


어느 도시 구석 지친 날갯짓이 들려와요     


미안해 아저씨가 미안해     


엉킨 이어폰 줄도 못 푸는 내가     


길 끝에서 누군가 소릴 지르며 뛰쳐나와요.

지혈되지 못한 비둘기 한 마리가 밤하늘로 뛰어들어요.

가만히 모른 척 지나가 주세요     


우리가 그냥 걸어서 달까지 걷는다고

달까지 걸어서 갈 거라고 생각하고

그때까지만 쓰는 걸 멈추지 말자고

가방 가득히 연필과 종이를 가득 채워서

달까지만 다녀오자고

도착하고 나면 편도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귀환하자고

딱 한 번만 달까지 걸어갔다 오자고     


다음 주는 친구 기일입니다. 이십 년 전 하늘로 가버린 친구였는데 오늘 문득 떠올랐어요

우리 매일 만나서 싸웠죠. 문단의 배치와 행의 연결, 제목의 고루함 그리고 종종 감정싸움으로 번져 멱살까지 잡으며 뒹굴기도 하였어요.


행려병자로 처리되어 있던 병원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친구를 만나러 갔었고 그 뒤로도 친구에게 찾아갔었어요. 한껏 들떠있던 친구를 면회하러 갔었어요. 같이 뽀얗게 우러난 설렁탕 국물까지 말끔히 비운 친구는 돌아갈 곳을 찾고 있었어요. 담당 의사의 말은 좀 달랐어요.     


친구가 꾹꾹 눌러쓴 글씨로      

걷는 것은 쓰는 것과 같다고 달로 이미 출발할 거라고 쓰여있던 편지를 받아보았어요.     

글 쓰는 삶을 존경합니다.

때로 나는 쓰는 게 아니라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건 다시 떠난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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