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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Oct 01. 2024

귀환하는 중입니다.

중력에 익숙해지는 중입니다.


비가 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벽에 눈을 뜨고 잠시 산책을 나갔다가 갑자기 쏟아진 빗줄기에 집으로 쫓겨났습니다. 좀 더 견뎌볼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튀어 오른 빗물이 우박처럼 단단해서 따끔거리기까지 했다니까.      



마치 빗방울에 발목이 물린 것처럼.

땅 속에 있던 벌통을 건드린 것처럼  

    

비가 그친 건 집으로 돌아와 따스하게 데워놓은 머그잔안으로 결명자 티백하나를 우려낸 뒤였어요 아시겠지만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면 심장 뒤쪽에 있던 알람시계는 동그란 모양의 아주 오래된 시계인데 시끄러운 타종소리를 멈추는 단추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아요.      

자명종 소리를 끄는 방법은 유일하게 깨어나는 일뿐이죠.     


어제 아침에 눈을 뜨자 몸이 부어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부어있다기보다 조금 부풀어져 있었죠. 그런 적은 없지만, 라면 두 개를 먹고 그대로 잠든 뒤 일어난 것처럼 불어 있는 것 같은 느낌. 체중계를 꺼내 그 위에 올라서는 것조차 조금 힘겨웠죠. 모든 생각들은 고정되지 못한 채 조금 떠올라 살짝 기울어져 있었어요. 벽을 잡고 서서 체중계에 오르자 몸무게가 1/6로 줄어들어 있었어요.      

내딛는 발길마다 몸은 더 앞서 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며 걸으려는 모습은 뛰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 달에 있었던 것 같아요. 와이파이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몸은 계속 부유하고 있었죠.     


오늘 아침 아침에 눈을 뜨자 몸은 한결 무거워졌습니다. 디딤발의 생각이 엇갈리던 어제와는 다르게 정확히 중력을 느끼며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하늘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습니다.      

몸이 떠날 때와 같이 중력을 느끼는 걸 보면 내일 출근을 의식하고 있나 봅니다.     


아침 산책길에 영구차를 보았습니다. 집 앞 건너편에 큰 병원이 들어섰고 지하에 장례식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한 번도 영구차를 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장례식장 앞으로 휴일을 장례식장에서 보냈을 유족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영구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늘한 기온은 상복만으론 너무나 차가운 아침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장지로 향하는 운구 행렬이 안전하기를 기원하며 산책길이 우울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력에 익숙해지는 중입니다. 발걸음은 감당치 못할 만큼 무겁고 몸이 떠오르거나 하는 일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미뤄뒀던 설거지를 합니다.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라는 접시는 바닥에 떨어진 뒤에도 흠집 하나 없습니다.      


정오가 지나도록 오전 9시 같았던 하늘은 오후 늦게야 노을을 준비하느라 주문이 밀린  새벽의 주방처럼 분주합니다.     

10월 1일 자 노일을 훔쳐왔습니다.          

날씨는 조금 아니 생각보다 깊게 차가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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