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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16. 2024

흰코뿔소이야기

나는 보호종입니다.

어제 귀찮아서 널다 탁자 위에 잘 펴 둔 빨래가 펼쳐 놓은 채 말라가고 있습니다.     

빨래를 널다 무슨 생각으로 잊어버린 걸까 생각합니다. 뭐 구겨지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으니 기억해내지 않기로 합니다.     


저는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 길가의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턱없이 부족한 걸음걸이를 쪼개어 생각합니다. 우울한 요일 의 생각들은 붉은 발가락, 노란 부리를 가진 병아리 몇 마리가 올라와 머리를 디디고 부리로 콕콕 찍으며 돌아다닙니다.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합니다.               


2018년 케냐의 올 페제타 보호소에서 수컷 북부 '흰코뿔소'는 죽었습니다. 이제 북부 '흰코뿔소'라고 불리는 암컷 코뿔소는 현재 살아있고 이제 지구상에 단 한 마리뿐입니다.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성공을 확신할 순 없습니다               


저에겐 5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린 꽤 친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것…. 고등학생 학교 때부터 늘 함께 어울려 다니고 나쁜 짓도 함께 하였으며 젤 먼저 담배 피웠던 것도 그즈음으로 기억합니다               


3명의 친구는 차례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친구와 난 그 순서를 .여린대로‘ 라고 불렀습니다.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아니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3명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남은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시 그 친구를 만났을 때 그는 나를 본인의 집으로 불렀습니다. 서로를 안아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장 무딘 자로 지구에 남겨진 우린 서로의 퍽퍽한 안부를 묻고 그들은 왜 그랬을까? 서로에게 첫 질문은 같았습니다. 오래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린 지구에 단둘뿐이기 때문에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흰 코뿔소처럼 더 이상의 개체는 없습니다               

그 당시 건넨 메모였어요. 녀석이 웃었어요     


녀석이 1.8L짜리 생수통 세 개와 커다란 유리 볼을 가져옵니다               


내가 먼저 떠난 친구 얘기를 합니다. 섭섭함과 배신감 남겨진 절망 두려움 죽음     

그런 것들…. 그 이외의 것들까지      


우린 서로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얘기를 시작하기 전, 내가 나의 고통이나 슬픔을 느끼고 이해한 만큼 투명한 볼에 물을 부어 한 잔을 부어도 되고 붓고 싶은 만큼 붓는 거야 단!! 네가 부은 물은 여길 떠나기 전에 다 마셔야 해 우린 서로가 따른 물을 마시는 걸 보게 될 거야               


그건 상대의 슬픔에 대한 예의와 상대의 슬픔을 내가 줄 수 있는 위로까지      

가늠한 행동이었습니다. 서로 슬픔은 침범하지 않겠다는                


그 혹은 그녀가 나의 고통의 수치에 맞혀 보려는 노력은 숭고합니다     

그 숭고한 마음으로 상처 입고 힘겨워야 할 그를 위해                


우린 앞에 놓인 그 엄청난 양의 물을 이 자리에서 마셔야 합니다.     

그것은 마시는 사람도 마시는 걸 보는 사람도 목이 멥니다               


나는 지구에 남아있는      

한 종(種)입니다


그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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