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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22. 2024

햇살이 갈기를 조련하듯이.

나를 멈추게 해 줘

처음 이 집을 계약할 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다란 창으로 햇살이 한껏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단 마음에 들어버렸어요. 어쩌면 집을 고르는 것은 옷을 고르는 일과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해요.      

한동안 보세 옷 가게 앞을 지나다니며 옷들을 구경하곤 했어요. 여자 옷에 비해 남자 옷은 턱없이 종류가 부족했지만, 가게 여 사장님과 친해지다 보니 가게에 들어가면 신상으로 들어온 옷들을 꺼내 옷걸이 채로 흔들며 취향에 맞는 옷들을 보여주곤 하셨죠.     


뭐 대단한 옷들도 아니었고 가격대가 조금 나가는 옷이거나 그전에 선택했던 옷들과 비슷한 패턴이나 디자인의 옷들이었죠.     


대부분 사장님이 흔드는 옷들을 사거나 오랫동안 책을 고르듯이 빽빽하게 걸려있는 옷들을 바라다보며 집안 옷장에 있는 옷들을 떠올리며 골라서 비닐봉지에 싸서 돌아오곤 했어요.     


햇살은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집안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털썩 쓰러진 누워있어요. 고양이 모란은 식빵 자세를 하고 햇살의 가슴에 안겨있는 아침입니다.      


동네 아이들은 그 사내를 삼촌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고 딱히 형이라고 부를 만큼 친하지도 않았죠. 우리가 놀고 있으면 할 일 없이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리곤 결정적인 순간엔 심판이 되어 혼자 남은 아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판가름하곤 하였어요. 근데 그의 기준은 늘 달라서 아이들은 매번 화를 냈었고 그래도 웃으며 난처한 자리를 빠르게 떠나 버리곤 했어요. 어쩌면 그는 그중 제일 목소리가 크고 화가 난 아이 편을 들어주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그 삼촌에겐 동생이 있었는데 사실 동생이 맞는지 아니면 조카였는지 지금도 알 순 없지만, 가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던 사내는 동네 사람들과 실랑이가 붙으면 어디서든 웃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말을 더듬으며 격렬하게 상대를 제압해 나갑니다. 막판엔 몸을 자해하며 달려온 경찰들도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리곤 했었어요.                

그때만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는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았죠     


그때는 지금처럼 그저 욕을 하고, 멱살을 잡거나,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싸울 것처럼 덤벼들던 싸움이 아니라 어딘가 찢어져 피가 나고 얼굴에 멍이 드는 시절이었죠.     

삼촌이라고 부르던 사내와 싸우다 기필코 혼자 자해하는 모습까지 보면 상대는 전의를 상실하곤 뒷걸음질을 치게 되는데  싸우지도 않고 박수받지 못하는 승리를 쟁취하곤 했죠.     

그렇게 피를 흘리던 삼촌을 제압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어요.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는.      


그 삼촌의 동생인지 조카인지 모를 그녀는 우리와 비슷한 학년을 다니고 있었는데 모여든 사람들의 길이 열리고 그녀가 삼촌에게 다가가 벗어던진 옷가지 중 가장 부드러운 옷을 들어 올려 먼지를 털고 그의 상처를 싸매며 삼촌에게 이렇게 말하죠.     


난 지금 배고파 같이 밥 먹자.      


삼촌의 손을 잡자 그의 손에서 흐르던 피가 잠시 신호를 기다리듯 멈췄어요. 지혈된 밥상으로 사라져 갑니다. 동네는 다시 평화가 황급히 찾아옵니다.      



아무 소문도 없이 사라진 집안에 문을 따고 들어가자 집안은 먼지도 없이 깨끗하고 그렇게 정갈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삼촌과 동생인지 조카인지 모를 두 사람을 다시 본 사람은 없었죠.      


한 가지 분명한 건 참을 수 없는 불안과 분노로 마음속에서 날뛰고 있는 나를 볼 때 내게도 그런 누군가 있다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을 햇살 만으론 턱없이 부족할 테니 말이죠.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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