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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회(詩食會)를 시작합니다.

그와 그녀의 사정이야기 김상혁.

by 적적

영화관

김상혁


아내가 도착하지 않았는데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녀가 도착하지 않았는데 영화가 너무 좋아서

나는 그 이야기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여주인공이 산골 마을로 들어설 때

죄송합니다, 좀 지나갈게요,

아내가 어두운 극장으로 들어오며 자리를 찾는다

지나간 이야기를 설명해주어야 할는지?

하지만 아내는 충분히 알겠다는 듯이 집중하고 있다

그녀가 도착한 뒤에 영화는 더 좋아져서

우리는 그 이야기에 금세 빠져버리고 말았다

주인공이 마차에 숨어 마을을 빠져나갈 때

죄송합니다, 좀 나갈게요,

나는 어두운 극장을 나가 담배를 피우기로 했다

아내는 일어서는 나를 만류하였다가

영화가 끝나지 않아서, 영화가 점점 더 좋아져서

그대로 앉은 채 이야기에 다시 빠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밖에서 그녀의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여주인공이 마지막엔 꼭 잘되었으면

여자를 괴롭힌 마을도 다 불타버렸으면 좋겠다

어쨌든 지금은 너무 길고 좋은

그 이야기가 그녀를 언제 놓아줄지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아내만큼 이야기에 빠져 있지만

사람들은 햇빛 속에서도 얼마든지 불행해 보이고

이야기를 몰라도 이야기처럼 산다

뒤늦게 극장을 나올 그녀에게 들어야 할는지?

그래서 이야기 속 여자가 영원히 행복해졌다면

우리에게 다시 극장을 찾게 하는 힘은 무엇이겠는지


출처>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문학동네. 2016


시식평


유부를 사랑했어. 그래 그 유부초밥이나 유부우동에 주재료인 유부 말이지. 늘 유부우동에 올라 오는 유부는 턱없이 부족했던 거야 크면 난 유부를 배부르게 먹는 게 소원이야 하고 생각했었어. 얼마 전 나는 그 꿈을 이루어냈어. 어릴 적 그 꿈이 생각난 것도 웃긴 일이었지만, 때마침 지나던 식자재 마트 앞에서 그 얇고 가늘고 솜털처럼 가벼워 물을 흠뻑 머금고 있어도 무게를 느낄 수 없는 냉동 유부 250g을 사버린 거지. 미쳤나 보네 라고 계속 생각했어.


다시 물을 내리고 우동 사리를 반만 넣고 250g을 넣고 먹기 시작했어 먹어도 먹어도 유부의 바다는 줄지 않았지 아직도 혈관 어딘가에서 유부가 흐르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먹고 나자 다시는 유부를 사랑하지 않게 됐어 아니 데면데면해졌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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