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의 빗물을 흘리며
비는 언제나 설명이 불가능한 정서를 데려온다.
봄비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비는 여름의 예고장이면서, 겨울의 해지를 알리는 고요한 장례식이다. 창문 너머로 그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겠지만, 봄비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계절 사이에서 방황하는 마음의 속삭임, 감각의 전환점이자 감정의 흔들림이다.
그날 아침, 정수리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를 느꼈다. 그것은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것이다. 마치 마음속으로 슬며시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듯한 감촉. 그것은 어떤 메시지를 품고 있다. 봄이 먼저 도착한 여름을 가만히 달래듯, ‘아직 너의 차례는 아니야’라고 타이르는 것처럼.
어떤 감정은 너무 빠르게 우리를 찾아온다. 마치 여름이 아직 봄의 정취도 다 누리지 못한 마당에 불쑥 손을 내미는 것처럼. 봄비는 그 손을 다정하게 거절한다. 손톱 끝으로 지그시 누르듯, 여름의 속도와 뜨거움을 조심스럽게 멈춘다. 부드러운 제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인생이 우리에게 들이미는 조급한 욕망과 앞선 감정들을 천천히, 가만히 눌러주는 지혜를.
비는 갑자기 오는 법이 없다. 늘 조용히, 아주 미세한 예감으로 시작된다. 하늘의 색이 은밀하게 무너지고, 공기 중의 분자가 조금 더 느리게 진동하기 시작하며, 나뭇가지 끝에서 작은 떨림이 감지된다. 어느 순간, 내려온다.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한 존재로.
봄비는 유리창을 스치기보다, 어루만지는 것에 가까웠다. 바람조차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은 마치 공기 속에서 실수로 뱉어낸 말 같았다. 창밖의 세계는 점점 수채화처럼 번져갔다. 빗물은 건물의 윤곽을 흐릿하게 지우고, 간판의 글자들은 수묵화처럼 쓰러져갔다.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세상은 점점 투명해졌다. 지나가던 자동차조차 그 윤곽이 모호해졌고, 사람들의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하나의 리듬으로 엮여 악보를 완성했다.
골목의 벽돌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들고, 오래된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으로 젖어들었다. 사물들은 더 단단하고 오래된 얼굴을 드러냈다. 모든 것의 속살을 꺼내 보여주는 일종의 정직한 해체 작업 같았다. 마른날엔 몰랐던 균열, 틈, 연약함, 그리고 빛의 잔존까지.
그리고 공기의 냄새. 봄비는 도시의 냄새를 바꾸어 놓는다. 아스팔트와 먼지, 철제 난간과 풀잎, 먼 산에서 불어오는 안개의 잔향이 모두 뒤섞여 비 냄새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재탄생된다. 그것은 이성과 논리를 우회하고 직접 감각을 자극하는 기억의 언어였다. 나는 그 냄새 속에서 유년의 어떤 오후를 떠올렸다. 비닐우산 속에서 들리던 빗소리, 젖은 양말의 축축함, 그리고 누군가의 따뜻한 손. 봄비는 시간을 감각의 틈으로 흘려보내고, 우리는 그 속에서 아주 오래된 감정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내 마음은 그 장면 속 어딘가에서 천천히 스며든다. 나는 존재한다. 느리게, 그러나 깊게. 봄비 덕분이다.
나는 봄비를 맞으며 종종 혼잣말을 한다.
너무 앞서 가지 마. 아직 봄이야.
그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주문이다. 마음속에 들끓는 초여름의 열기를, 어쩌면 도착하지도 않은 미래의 불안을, 조금 더 오래 참아보자고. 봄비는 그런 나의 성급함에 고요한 침묵으로 대답한다. 세상의 모든 섬세한 감정들은 이렇게 말없이 전달된다. 거절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단지 지그시 눌러주는 손톱 끝 하나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보다 느리게 지나가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봄비는 시간을 늦춘다. 거리의 색을 흐리고, 하늘을 낮추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우산 없이 걷는 이들의 어깨에는 느긋한 체념이 깃들고, 유리창 너머로 고개를 돌리는 이들의 눈빛엔 잠깐의 멍하니 흐르는 시간이 담긴다. 봄비는 우리가 감정을 놓치지 않도록 시간을 늘려준다. 삶이 빠르게 흘러갈 때, 봄비는 잠시 멈춤의 권리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가끔, 나는 봄비가 내리는 창가에 앉아 옛 연애를 떠올린다. 너무 빨리 시작되었고, 너무 뜨겁게 불타올랐던 감정들. 나는 봄을 건너뛴 채 여름으로 뛰어들었고, 그 대가는 뚜렷했다. 지그시 누를 줄 몰랐던 시간, 눌림 없이 부풀어 오른 감정은 금세 터져버렸다. 그때 나는 봄비의 손끝을 모르고 있었다. 그 촉촉한 타이름, 속삭이는 제지를. 봄비는 가르쳐준다. 모든 관계에는 ‘기다림의 품격’이 필요하다는 걸. 충분히 말하고, 충분히 눈을 맞추고, 충분히 스며들어야 한다는 걸.
그렇게 봄비는 삶을 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깊게 하는 것이다.
속도보다 방향이, 밀도보다 감각이 중요한 시점에서 우리는 봄비처럼 살아야 한다고. 조용하고 은근하게, 분명한 손길로. 누군가가 너무 빠르게 마음을 열려한다면, 그 계절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는 손끝의 언어로.
비가 그치고 나면, 모든 것이 잠시 달라진다. 공기의 냄새, 나뭇잎의 색, 거리의 반짝임. 그러나 그것은 변한 것이 아니라, 드러난 것이다. 봄비는 덮여 있던 감각들을 씻어낸다. 바쁘고 조급한 마음이 씻긴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지금 여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본다. 여름은 결국 올 것이고, 태양은 언젠가 정수리 위로 불덩이처럼 내려앉겠지만, 그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감정의 계절이 있다. 누르는 봄비, 기다리는 감정, 누적되는 시간.
나는 가끔 그런 사람을 꿈꾼다. 상대의 급한 마음을 다그치지 않고, 조용한 눈빛으로 눌러주는 사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불안한 내면을 물처럼 감싸 안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봄비 같다. 마음의 여름이 너무 일찍 도착했을 때, 그것을 손톱 끝으로 지그시 눌러주는 다정한 기상현상.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이의 성급함 앞에서 “괜찮아, 아직 봄이야”라고 속삭일 수 있는 사람.
삶의 무게를 껴안고도, 그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
빗방울 하나에도 의미를 묻는, 느리고 진한 존재.
그래서 나는 봄비를 맞는다.
먼저 온 여름을, 조심스럽게 손톱 끝으로 누르면서.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