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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Sep 30. 2024

가을이 여름에 휩싸인 동안

계절이 흐릿해졌을무렵.


이제 더 이상 기온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이제 더 이상 기온이 오르는 일도 없을만한 계절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잠이 깨어납니다. 잠이 드는 이유는 한 가지인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수많은 이유로 잠이 깨어납니다.      

모란이 가벼운 발짓으로 묵직한 무언가를 조금씩 공들여 바닥에 밀어 버린다든지, 밀려드는 바람에 일정한 간격으로 창가에 버티컬을 밀어내는 소리를 듣는 다든지 소리의 끝은 갈래를 뻗어가며 더 깊숙이 파고들어 결국 감은 눈을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립니다.      

쓰고 보니 나를 깨웠던 건 대부분 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가장 늦게 까지 남아있는 감각 기관인 청력이 나를 깨우는 일을 하는 것.     


서늘한 아침 공기가 일순간 무더워지고 있습니다. 서늘해져서 긴팔을 입어서 야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있는 순간에는 가을 같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여름이 불쑥 몸을 더듬습니다. 선풍기 앞에 앉아 있는 가을의 무릎에 앉습니다.     

이모는 수녀였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처음 기억부터 이모는 검은색이나 회색의 수녀 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간혹 그런 이모의 목소리가 잠들기 전의 소음처럼 느껴져서 어느 순간이고 이내 잠들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모가 수녀를 그만둔 것은 50대 후반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한동안 처음 해보는 사회생활로 공장을 다녔지만 퇴근 후엔 늘 뽑아 놓는지 한참 지난 상추처럼 시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역 이름도 생소한 곳에 혼자 살게 되며 엄마와 통화할 때 수화기 밖에서 큰소리로 안부를 묻는 일이 고작이었습니다. 


이모가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엄마가 몇 번을 찾아가 만나고 오시면 엄마는 가늘게 썰어 놓고 잊어버려 갈변된 양배추처럼 물기가 하나도 없이 며칠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잔 물결도 일지 않던 바람 없는 호숫가 같던 이모가 식욕이 돋고 활력이 생겨난 것 같아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잠겨있을 때 엄마는 자꾸만 설거지하며 접시를 놓쳤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가을은 여름의 호전(好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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