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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Sep 29. 2024

햇살이 입안에서

흑설탕처럼 씹혀.. 잘 녹지도 않은 채 

염색공들은 고무다리에 허리까지 물과 쪽풀을 채우고 수천 번 발길질해서 파란색을 만듭니다. 발효시킨 쪽을 우려낸 물에 산소를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일은 단어를 발로 차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단어를 우려냅니다.     

발효된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가 마지막으로 무릎까지 푸른 하늘이 물이 들도록 발길질을 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우러나온 쪽빛을 바라다보며 뭉개진 슬리퍼는 행복합니다.      


나는 간혹 목수가 되는 일에 생각해 봅니다. 나무를 자르고 홈을 파서 못질 하나 없이 안부도 물은 적 없는 다른 나무가 서로 비껴가며 하나의 나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깎고 베어낸 것 같은 의자나 식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간혹 서툰 손으로 인해 손가락이 베이거나 다치더라도 붕대를 웃으며 감을지도 모릅니다. 잠시 지혈될 시간 동안 산책을 다녀오거나 통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무언가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었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젖은 천은 볕에 말라가며 점점 더 연한 빛을 가질 것입니다.      


바라보는 사람이 물들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모든 작업이 끝나면 면과 색이 남아 염색공을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공원 모퉁이 건물 끝으로 의자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사실 의자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보통 의자는 네 개나 세 개의 다리를 지니며 스스로 기대지 않고 지면에 닿아 서 있는 물건이므로 등받이 쪽으로 두 개의 다리만 남아있는 의자는 벽에 기대어져 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다리가 아쉬운 것은 너무나 견고하다는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그 가당찮은 의자의 쓰임새를 알게 되었습니다. 45도 기울어진 채 벽에 기대어진 의자는 그렇게 쓰이는 의자였습니다. 앉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먼저 남아있는 두 다리를 의자와 벽 사이에 믿는 만큼 벌려놓은 뒤 의자에 엉덩이를 깊이 넣고 발로 살며시 땅을 차오르면 무중력의 상태를 유지하던 의자가 벽에 닿는 게 느껴집니다. 그 느낌은 자물쇠가 풀리는 느낌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이제 편안히 건물과 건물 사이가 내어준 하늘을 바라다보면 됩니다. 

의자에 앉는 사람은 나와 한 사람의 사내, 그리고 늘 고개를 숙이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던 초등학생 여자아이.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며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 채 떠날 때 의자의 기울기를 유지하는 일을 합니다.           


산책 시간은 가로등이 켜졌다가 꺼지는 시간 동안입니다. 간혹 1시간 이상일 때도 있고 30분가량 산책을 할 때도 있습니다. 가로등이 켜질 때 즈음엔 길가에 멈춰 서서 이탈리아사람처럼 손가락을 뾰족하게 모았다가 활짝 폅니다. 마치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처럼 말이죠.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 본 사람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아직 그런 제스처를 꺼내긴 힘들 만큼 부끄럽기도 합니다. 어디서 이런 몹쓸 손짓을 배운 건지.     



일요일은 어떤 날씨여도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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