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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Sep 28. 2024

유리병편지

종이에 문장을 널어…. 


한 문장이 볕에 마를 때까지 일렁이는 문장을 바라다보고 있어      

바람에 일렁이는 문장은 젖은 채로 행간을 만들고 잘 마른빨래를 문단처럼 개어 차곡차곡 있어야 할 곳에 채워놓지.


내 맘속엔 유리병이 가득한 것 같아. 다들 그렇게 유리병을 한없이 쌓아두고 살고 있다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되었어요.     


스무 살 무렵에 극단에서 잠깐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문의 전화를 받고 매표소에 앉아 표를 팔거나 그 작은 구멍으로 표를 내어주면 되는 일이었죠. 가끔 단역으로 무대에 오르곤 했었어요.


중소도시의 극단은, 아니 소극장은 형편없는 곳이기도 했죠. 매번 남아도는 관객석을 바라보는 일은 생선가게에서 한 마리 생선도 팔지 못한 채 문을 닫아야 하는 심정 같기도 했지만, 순전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은 비늘이 벗겨진 갈치나 푸른빛이 점점 사라지는 고등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가 오거나 너무 화창한 날엔 아무도 들어오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 날이면 한 사람의 승객이 벨을 누를 때까지 종점까지 향해 달리는 시내버스 같았어요.      


종이 위에 편지를 씁니다.

    

해변에 다다라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깨어납니다.

다음 단어에 물을 토해내며 쓰여진 활자를 번지게 하곤 할 거예요     


편지지 위에 초를 얇게 바르고 나면 활자들은 이제 벗어날 수 없게 되고 굳어있는 양초들이 조각조각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편지를 동그랗게 말아봅니다. 유리병 안에 편지를 넣고 코르크마개로 봉인합니다.      


달빛을 보는 건 오래전 달빛의 마음을 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던져놓은 편지가 다다르는 곳이 그대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가라앉지 않고 수면에 떠오를 수 있기를           

※ 또다시 낯선 곳에 정착한 기분입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유용한 물건들을 양손 가득히 들고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 잠시 눈을 붙였다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침입니다.

불을 피워야겠습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본다면 허공에 대고 인사하면 좋겠습니다.

아직 저는 멀리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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