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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Apr 26. 2020

오빠. 내 꿈은 엄마야.

82년생 풋내기 학생



전주역을 는 내내 택시기사 아저씨는 온통 기차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용인즉슨 요즘 젊은 사람들은 버스로 한 번에 갈 남원, 익산, 군산을 굳이 택시비까지 들여가며 기차를 타고 가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독특하네요."

단답으로 응대하니, 아저씨는 주제를 돌려 택시 타는 불륜 남녀의 기차 타는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주에서 서울은 생각보다 가깝네요."

선문답을 하니 이번엔 서울에서 전주 혁신도시로 출장 오는 사람들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전 장례식장 가요."
"누가 돌아가셨나 봐요!?"
"친구가 죽었어요. 빨리 가주세요."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전주에 막 넘어온 어느 여름날이었다.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비비고 핸드폰을 집어 든 순간이었다.


오빠. 수영이가 오늘 새벽 하늘나라로 갔어요.


누가 죽었다고? 수영이가 죽었다고? 스팸 아닌데? 잘못 봤나?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이었다. 수영이와 가장 가까웠던 그 후배는 밤새 그녀의 임종을 지켰다. 일주일 사이에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했다.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냐 했더니 수영이가 막았다고 했다. 모두에게 알리지 말라고. 수영이는 새벽에 편안하게 잠들었다고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친구가 죽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봤는데.


문자, 카톡, SNS, 전화로 친구의 부고를 돌렸다. 연가를 내고 검은 옷을 입고 그렇게 기차에 올랐다. 턱을 괴고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나뭇잎을 두르르 훑었다.


이제 난 누구랑 우스갯소리 떠드나.




난 우르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질색한다. 학교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극소수의 선배, 동기, 후배들만 연락하고 만난다. 그들은 학우를 넘어 나에게 보물 같은 친구다.


좁은 친구들 중에도 여러 유형이 있었다. 내 속 이야기를 이해하고 들어주는 유형, 시시콜콜 우스갯소리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는 유형, 탈속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유형 이렇게 세 부류가 있다. 물론 유형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수영이는 그중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후배였다. 둘 다 술을 좋아하고 시시껄렁한 잡담을 유머 넘치게 던지면서 서로 미친 인간이라고 늘 배를 잡고 웃곤 했다.

시원한 가을바람 부는 밤이었다.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서 정문으로 내려오는 길에 '오늘만큼은 소주 말고 깔끔하게 청하로 합시다' 굳게 약속을 하고 우리는 흑석시장 순댓국집에 들어갔다. 깔깔대고 웃고 마시다 보니 이럴 수가! 어느덧 수저 옆에 청하 대여섯 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아닌가. 서로 그걸 보고 또 빵 터져서 '이럴 거면 소주를 마십시다' 하여 근처의 친한 학우를 불러 소주에 새 안주로 갈아타 늦은 밤까지 알 수도 없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한참 나눈 기억이 생생하다.

수영이는 「혼불」의 저자 고 최명희 작가의 조카다. 계보를 이어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어떻겠냐 하니 친구는 선뜻 응하지 않고 술잔만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어렵게 꺼낸 말,


"그 혼은 내 동생한테 갔어. 천상 글쟁이지 걔야말로. 난 그럴 깜냥도 아니고."

"야 그런 말이 어딨냐. 뜻을 두면 하는 거지."

"글쎄... 나는 뜻도 없고 능력도 없고..."


괜히 말했나 싶어서 에둘러 주제를 바꿔 술이나 시원하게 마시고 헤어졌다.




수영이가 따끈따끈한 석사학위논문을 술자리에서 꺼내 주던 날, 나에게 책 꾸러미 하나를 더 가져왔다.


"고모 책. 1쇄는 이제 없고, 2쇄 초판이야. 이게 마지막 갖고 있는 거야. 그동안 코칭 많이 해주고 도와줘서 고마워요."

"야~~~ 내가 훨씬 고맙다 야. 이런 귀한 책을 다 주고. 완전 고맙다. 잘 볼게."


수영이가 술을 한잔 마시고 나더니 대뜸 왈,

"오빠."

"어."

"오빠는 꿈이 학자지?"

"내가 그럴 깜냥이냐. 학자하면 뭐하냐 당장 굶게 생겼는데."

"나는 말이야..."

"나는 뭐??"

"꿈이 엄마야."

"엄마?? 무슨 엄마??"

"엄마면 그냥 엄마지 무슨 엄마가 어딨어~~"

"그러게. 적엄마도 아니고. 푸하하."

"나는 그냥 가정 꾸려서 아이 키우면서 그렇게 엄마로 살고 싶어. 뭔가 거창하고 그런 걸 하고 싶진 않아."

"아무렴. 엄마가 사실 제일 어려운 꿈일 수도 있어."

"응원해줘서 고마워! 한잔 합시다!"




수영이는 꽤 일찍 결혼했다. 그리고 예쁜 딸을 낳았다. 주변의 많은 학우들이 너무 일찍 결혼한 게 아쉽다고 했지만 나는 꿈을 이룬 수영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꿈이 무엇이건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한 것을 실천하여 이룬 사람이라면 정말 행복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위암이었다. 재작년 겨울, 소화가 되지 않아 찾아간 병원에선 그녀에게 정밀 검사를 받자고 했다. 결과는 말기였다. 주변을 통해 들은 이야기였다. 수영이는  나에게 한 번도 투병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카톡에서도 항상 쾌활한 말투로 조만간 보자 소리만 했다. 나도 묻지 않았다. 그게 친구가 원하는 것이라면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게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카톡도 짧아지고 답장도 늦어져 주변다시 물으니 병세가 더 나빠져 수술 자체도 어려운 상황이라 했다.


그 때라도 찾아가 볼걸.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자신 대신 부의 좀 전해달라고 사람 챙기던 애가 이렇게 다니. "미안미안 조만간 얼굴 한 번 보자구!" 그렇게 씩씩하게 톡 날리던 애인데.

그날따라 비도 억수같이 울었다.


수영이의 장례가 끝난 후, 나는 회사 책상에 친구의 논문을 꽂아두었다. 그리고 늘 일이 막히고 답답할 때마다 논문을 집어 들어 몇 줄이고 읽었다.


더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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