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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Mar 22. 2020

26개월 아기가 무얼 알겠냐  물으신다면

82년생 육아대디


나는 우리 아들을 "뚱뚱이 칭구", "아기대장"이라 부른다. 아들에 대한 나의 애칭이다. 나는 애 이름보다 이 애칭들을 많이 쓴다. 그런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있다. 아기대장이야 그렇다 치고 뚱뚱이가 웬말이냐는 것이다. 뚱뚱하지도 않은데 왜 그리 부르느냐, 뚱땡이는 좀 그렇지 않으냐, 너가 더 뚱뚱한데 너나 그렇게 불러라 등 이런저런 의견들이 있다.


말하면 뚱뚱이의 본래 애칭은 '꿍꿍이'다. 아들이 8개월, 9개월 하던 때 "떽꿍!", "딱꿍!" 아웅 거리는 걸 보고 내가 끝의 "꿍"만 따와서 꿍꿍이라 일렀다. 당시의 일기들을 보면 소제목이 다 [꿍꿍이야 꿍꿍이]로 되어 있다. 그런데 꿍꿍이라 발음하는 것이 조금 힘들거니와, 특히나 나는 'ㄸ'이라는 발음에 애착이 많아 편하게 뚱뚱이라 부르는 것뿐이다. (참고로 나는 아직도 서른다섯 내 동생을 '뚱이', '땡이'라 부른다. 동생은 키가 크고 매우 마른 체형이다.) 내게 있어 '뚱뚱이'는 '뚱땡이'와 전혀 다르다.


1. 이거 뭐야?


통상적으로 아이가 26개월이 되면 언어능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아들 역시도 돌이 될 무렵부터  "이거이거~", "아냐아냐 저기~"와 같은 원초적인 단어들로 의사소통을 하다가, 갑자기 "이거 뭐야?"만 하루에 수백 번을 외치기 시작했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는 아이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똑같은 "이거 뭐야?"에도 다양한 의도가 담겨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말 이게 뭔지 궁금해서 묻는 것, 알았는데 잊어버려서 다시 묻는 것, 이것과 저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는 것, 엄마아빠랑 놀고 싶은 것, 그냥 하는 것, 내가 관찰한 바로는 다섯 가지가 정도로 확인된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나서부터는 "아빠 같이 놀아요.", "아빠 이거 주세요."로 의사표현이 보다 분명해지기 시작했고, 최근 2주 전부터는 "아빠~ 엄마한테 전화해주세요.", "아빠~ 저거 엄마 차예요.". "아빠~ 텔레토비 틀어주세요.", "아빠~ 사탕 저기 위에! 저기~~ 사탕 주세요." 이렇게 자기표현이 풍부해졌다.


한 방 먹었다.


지난주, 뚱뚱이 칭구와 함께 목욕하고 놀던 중이었다. 늘 자동차를 품에서 끼고 사는 아들이 욕조에서 신나게 차를 몰고 있길래 나는 "뚱뚱이 칭구 이거 자동차 이름 뭐예요?" 물었더니 아들이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대뜸 하는 말,


"아빠. 나 뚱뚱이 아니에요."


정색을 하는 통에 순간 나는 얼음이 되고 말았다. 마침 애 수건 들고 온 아내가 그 말을 듣고 빵 터져서는 "서원아. 그럼 엄마는 뚱뚱해요 안 해요?" 물으니,


"엄마 뚱뚱해요."


아내도 순간 당황, 그래서 "그럼 서원이는 뚱뚱해요?" 다시 물으니 "서원이 뚱뚱 안해요.". 이 발언을 두고 나와 아내는 나름 분석을 해 보았는데, 내 생각으로는 늘 셋이 함께 부르는 곰세마리 노래 중 자신의 캐릭터를 두고 한 말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것이었고, 아내는 그렇다면 나까지 뚱뚱하다고 할리가 없지 않느냐 이건 분명한 자기 의사 표현이다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


누구의 말이 더 사실에 가깝겠느냐 하는 것은 잠들기 전에 알게 되었다. 아내가 아이를 옆에 눕히고 토닥토닥하려니 뚱뚱이 칭구가 일어나서는 엄마에게 하는 말,

"쉬했어요."

"서원이 쉬했어요? 음... 보니까 별로 안하는 것 같은데? 기저귀가 가벼워요."

"아니에요. 여기 많이 쉬했어요."


하여 아내가 자세히 보니 정말 기저귀 뒤쪽이 무거운 거라. 하여 "엄마가 제대로 못 봤네. 미안해요. 아빠한테 기저귀 가져다 달라고 하세요" 했더니 아들 왈,


"아니~~아빠 말고 엄마가요. 엄마가 하세요."


하여 아내 역시 얼음이 되었다. 내가 "자기가 하래잖아. 가져와" 큭큭 웃으니 아내는 그때서야 망연자실 일어나 거실로 터덜터덜 향했다. 둘 다 한방 먹은 날이었다. 이렇게 아기에서 어린이로의 변화가 나타났다.


(뚱뚱이 칭구는 그 이후로도 본인 이름보다는 뚱뚱이라고 부르면 더 나를 잘 쳐다봐서 그냥 그렇게 부르고 있다.)


2. 누웠어요.


뚱뚱이 칭구는 유투브 애독자다. 핸드폰 사용에 비교적 너그러운 우리 부부의 육아방침에 맞추어 뚱뚱이 칭구는 핸드폰 이것저것 다 눌러보며 기능을 살피더니, 어느 날 유튜브 앱을 꾹. 눌렀다. 차량으로 이동 간에 보여주던 이 애플리케이션을 본인 손가락으로 찍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고 말았다. 뚱뚱이가 시청하는 패턴 보통 텔레토비로 시작하여 자동차로 끝나는 식이다.


언제적 텔레토비냐 할 수 있지만 이건 우리 부부가 강권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뚱뚱이 칭구 개인의 취향이다. 뚱뚱이 칭구는 띠띠뽀나 타요처럼 정신없이 사건이 벌어지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명쾌한 것, 알아듣기 쉬운 것으로는 텔레토비만큼 좋은 것이 아 아이에게는 없다. 가만히 보니 뚱뚱이 칭구는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이 구사하는 문장들 예컨대, "나는 엄마와 색종이 놀이를 해요.", "나는 친구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해요." 하는 것들을 귀담아들으며 실생활에서 종종 써먹고 있었다. 며칠 전 새벽, 애가 잠꼬대로 "텔레토비~~ 텔레토비~~" 소리를 질러서 깜짝 놀라 깼다. 꿈속에서 우리가 텔레토비를 보여주지 않은 모양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특성상 주로 보는 영상의 관련 콘텐츠가 밑에 깔리기 때문에, 애는 보다가 재미없거나 다 봤다 싶으면 검지 손가락으로 상하좌우 휙휙 넘겨가며 맘에 드는 프로그램을 넘겨본다. 광고가 뜨면 5초 기다렸다가 '광고 건너뛰기' 버튼을 두두두 눌러 버린다. (광고도 재미있으면 일단 지켜볼 때도 있다.)





걱정되는 건 불편한 자세다. 바닥에 폰을 두고 앉아서는 고개를 숙이고는 한참이고 보는 터라 무척 신경이 쓰였다. 본인도 며칠 그렇게 해보니 목이 아픈지 고개를 위로 젖혔다 보기를 반복한다. 아기용 책상에 놓고 보라고 해도 몇 번 하는 시늉만 하고 도로 제자리다. "서원아. 목 아프지? 좀 쉬었다 보자." 했더니 듣는 척도 안 한다. 아 요 녀석 이거 어떻게 하지 두리번대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 통화하고 있길래, "그럼 엄마처럼 누우세요." 했더니 냉큼 푹신한 베개 하나를 가져와서는 편하게 누워 핸드폰을 들고 본다. 그리고는,


"누웠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보는 폼이 마치 늘 그렇게 봐 왔던 것 같은 안정된 이 느낌은 대체 뭐지 하면서도, 아 이것도 차선책에 불과한 것인데 싶어 아내와 상의 끝에 앞으로 뚱뚱이가 유튜브를 볼 때는 아기 책상 위에 독서대에 핸드폰을 두고 보는 것으로 정하였다. 요런 깐돌이 녀석.


3. 하찌가 사줬어요.


아내는 결혼 전, 오빠의 집에 갔다가 조카의 자동차 장난감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걸 보고 내심 놀랐다고 한다. '아니 무슨 똑같은 자동차를 저렇게 많이 사줬을까?' 싶어 고개를 갸웃했는데 아들을 키우는 지금에 와서 보니 이해가 간다고.


"서원이가 자동차를 정확한 간격으로 줄 지어 놓는 걸 좋아해요."


최근 들어 어린이집 선생님께 자주 듣는 말이다. 보통 이 시기쯤이 되면 로봇, 공룡으로 넘어간다고들 주변에서 그러는데 뚱뚱이 칭구는 오로지 '차량 덕질'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다. 자동차로 좁혀 이야기해보면 뚱뚱이는 차문, 창문, 바퀴 이런 것은 기본이고 범퍼, 와이퍼, 사이드미러, 운전대, 라이트, 본네트, 번호판, 트렁크 등 차량에 관계된 대부분의 용어를 알고 있고, 그 기능도 이해하고 있다.




최근엔 애를 차에 태우고 주유소에 가서 자동 세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이후 뚱뚱이는 목욕할 때 갖고 놀던 차량에 거품비누를 묻혀 물로 깨끗하게 씻어서는 자신의 목욕타월로 하나하나 정성껏 닦고 있다. 그리고는 반짝반짝해진 차량을 줄지어 세워놓고 아주 뿌듯해하며 말한다.


"이거 하찌(할아버지)가 사줬어요."

"이거 아빠가 사줬어요."


아이는 수많은 차더미 사이에서도 어떤 것을 누가 사주었는지 정확하게 구분한다.


뚱뚱이 칭구는 차량 중에서도 중장비 차를 특히 좋아한다. 포크레인, 레미콘, 트랙터, 불도저, 롤러, 덤프트럭의 용어와 기능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자기만의 세상으로 이해한다. 단순히 차의 개수를 늘리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종류의 다양성을 늘리고, 차량의 세부적인 속성에 대해 파고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누가 이 장난감을 자신에게 선물해 주었는지 중시하면서 인간관계를 따진다.


4. 이거 붙여주세요.


집에는 아이 책이 수도 없이 많다. 과거 내 책장의 책들은 핵심적인 것들 외에는 다 추려내고, 그 자리에 전래동화며, 식물도감이며, 놀이, 탐험, 과학 등 갖가지 종류의 어린이 책들이 들어섰다. 대부분 주변에서 물려준 것들인데, 소수는 아내가 직접 구입한 책들도 있다. 뚱뚱이 칭구는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이 책 저 책 다 끄집어내어 보따리장수처럼 늘어놓고 보았다. 그러다가 요즘들어서는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책들 위주로 꺼내보는데, 이 중에서도 아내가 영어 교육에 좋다고 사 둔 그 책 하나를 마르고 닳도록 본다.


이 책 하나를 유독 아이가 좋아한다. 약 석 달 동안 이 책을 쥐고 살았다. 무슨 천자문 떼느냥 매일매일 한쪽 한쪽 넘겨가며 "이거 뭐야?"를 반복하며 암기하고, 표현했다. 왜 그러는지 우리도 모른다. 덕분에 아이는 인체, 동식물, 우주, 차량, 비행기, 의식주 등 최소 1,000개에 달하는 단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나는 영어로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말이 먼저니까. 외국어는 나중에 본인이 관심이 생기면 알려줘도 늦지 않다.


"아빠. 이거 찢어졌어요. 붙여주세요."


매일 같이 요모조모 뜯어보고 하니 책이 남아날 리가 없다. 모든 쪽수가 너덜너덜해지고 찢어지고 금이 가고 낙서로 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아이는 이 책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테이프로 덧대고 잇고 다시 붙인다.


5. 어흥이 해요.


우리 가족은 매일 밤 아홉 시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어흥이 놀이를 시작한다. 내가 어흥이, 엄마는 어흥이로부터 뚱뚱이 칭구를 지켜주는 사람으로 역할 구분이 되어 있다. 놀이 내용은 이렇다.


셋이서 어흥어흥하며 거실부터 침실까지 기어간다. 여기서 뚱뚱이와 아내가 먼저 침실에 도착하여 이불속에 숨으면 나는 그때 어흥어흥하며 "우리 서원이 어딨냐 어흥~~" 하면서 이불을 휙 열어젖히면 뚱뚱이가 우와앗 하고 놀라며 신나게 웃는다. 이 놀이를 한 시간 정도 계속한다.


아이는 이불의 폭신폭신한 촉감을 느끼며 이리저리 구르면서 자연스럽게 잠에 빠져든다. 이 놀이는 하루에서 가장 중요하다. 아이는 응축된 에너지를 몸으로 발산하지 않으면 그것이 몸속에 남아 어떤 방식으로든 스트레스로 발산시킨다. 잘 때 경기를 일으키거나, 아침부터 무한 짜증을 낼 때, 우리 부부는 어제 제대로 아이가 뛰어놀지 못했나 되짚어본다.


6. 도와주세요.


아이의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 부부의 눈은 동그랑땡이 되었다. 해주세요도 아니고 도와달라니. 무슨 시급한 마음에 이런 표현을 쓰나 봤더니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최종 해결은 내가 할 테니 엄마아빠가 옆에서 조금만 보조해 주세요.


퍼즐을 맞추거나, 칠교놀이를 할 때, 우리는 슬며시 아이에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오... 맞아요! 잘했어요!" 하고, 아이는 해냈다는 성취감에 우핫핫 판을 다시 뒤집어엎는다.


26개월 뚱뚱이 칭구는 생각보다 솔직하고, 반복적이고, 감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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