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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Mar 07. 2020

300미터도 못 뛰던 그는 어떻게 640킬로를 뛰었을까

82년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인터뷰 인물 소개
38세. 전직 기자 및 파워 블로거 및 프로그래머 및 주방장.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지도 디지털화 제작업에 종사하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의 얼굴은 확실히 좋아 보였다. 얼굴뿐만 아니라 말투와 억양, 몸짓까지 모든 것들이 가벼워졌다. 살로 뭉쳐 있던 뺨은 기름기가 빠졌고 그 자리엔 갸름한 턱과 목선이 모습을 드러났다. 편안해 보였다. 술자리에 풀어낸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지인이 개최하는 한 전시회에 찾아갔다가 밖에서 담배 한 대 피고 들어오던 중 '허욱' 하고 허리가 삐끗했다. 한 참을 서지 못하고 있다가 겨우 진정이 되어 안으로 들어와 귀퉁이에 구겨져서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때 한 여성 지인이 다가와 물었다. 어디 아프냐고. 허리가 너무 아파서 그렇다 니 느닷없이 마라톤 이야기를 꺼냈다. 뛰라고. 본인은 10킬로 정도는 쉽게 뛸 수 있다고.


10킬로 그게 어쨌다고.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화살처럼 돌아온 질문. 그럼 나는?”


해봐야겠다.


큰 충격을 받았다. 300미터도 채 못 뛰고 힘들어 주저앉았다. 허리가 아파 몸을 일으킬 수 없고, 양다리는 전기가 흐르듯 지릿지릿 저려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저 하늘만 보며 담배만 피웠다. 30대가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이제껏 한 번도 운동이라곤 해 보지 않았구나. ‘엉망’ 딱 두 글자. 내 몸이 지금까지 버텨 온 것만으로도 기특한 거다. 그때 그 여성의 말이 생각났다.


5킬로. 딱 그 거리부터 뛰자.


그렇게 죽자 사자 뛰어 몇 달 만에 처음 성공한 5킬로 완주. 심심한 터에 친구들에게 목표 달성 인증샷을 보내니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환호, 축하, 부러움, 독려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아. 이런 맛에 하는구나.


지도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디지털 맵만 만들었지 그 길을 직접 밟아본 적이 없었다. 주어진 길만 키보드 위에서 손으로 건너 다녔지, 정작 그 길에 어떤 건물이 있고, 나무와 꽃은 무엇이며,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강의 모습은 어떤지 한 번도 내 눈으로 밟아본 적이 없었다. 김정호 선생이나, 손기정 선수 같은 위인은 아니더라도 나 역시 내가 사는 이 땅을 직접 발로 뛰어보는 것이야말로 지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마라톤으로 가자.


마블사에서 개최하는 서울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무엇보다 마블사에서 주는 메달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메달을 손에 거머쥐는 것은 뒤의 기쁨, 뛰는 그 순간부터 가슴이 벅차올랐다. 혼자 뛰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뛰고 있다는 사실이 사방의 숨소리에서 전해졌다.

마포대교에 이르자 한강에서 휘영청 강바람이 어왔다. 차로만 무심코 넘어가던 이 거대한 다리 위를 내 발로 건너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자의 페이스에 맞추어 지금을 살고 있다. 헤어졌다 만나고, 만났다가 헤어지고, 결승 지점에 도착하여 다시 한번 만나고, 서로를 축하해주고. 이런 게 마라톤이구나.




‘3대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했다. 21킬로에 달하는 춘천 ‘손기정’ 대회, 공주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다. 이제, 서울 마라톤 대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 외에도 각 지역에서 개최하는 마라톤 대회에 꾸준히 참가했다. 골인 지점에서 메달을 받고 스스로에게 걸어주었다.


잘했다. 더 잘하자.


이후 일주일에 3번을 원칙으로 뛰었다. 평일 2회 각 10킬로. 주말 1회 21킬로. 엑셀에 차곡차곡 그날의 족적을 입력했다. 그렇게 3년 동안 뛴 거리는 640킬로에 육박했다. 뛰어보니 알 수 있었다.


다 하면 되는 것인데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그는 뛰면 동안 지저분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말도 덧붙였다. 나나 형 같은 사람은 평범한 축에는 속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나 이런 운동을 추천한다. 버럭 ‘왜 한데 묶고 그러냐!’ 정색하면서도, 실실 웃으며 소주를 털어놓게 되는 달콤 씁쓸한 맛이다. 허공에 뜨는 조언이 아니었다. 폐부 깊숙하게 그의 말이 자리 잡았다. 그의 메달을 쥐어봤다.


손아귀에 꽉 찬다.
이 놈 확실히 성장했다.


돈을 벌겠다고 한다. 부모님 심려 끼쳐드리는 것도 이제 면목이 없다, 전보다 윤택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우리도 이제 그럴 나이라고 답했다. 끓는 열정으로 황무지에서 금을 찾기보다는, 지금 보유하고 있는 나만의 무기로 점점 세를 불려 나아가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이렇게 인생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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