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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May 18. 2020

일흔살 엄마가 마흔살 아들에게 끓여주는 아귀탕

82년생 타향살이 아들


토요일 아침, 서울집 내 방


옷. 눈을 뜨니 8시다. 설날 이후 처음 올라온 것이니 거진 4개월 만이다. 코로나 19 기승으로 더 올라오기 힘들어져 이제는 아예 내 방을 동생이 쓰고 있다.


'어 맞다. 오후에 전주집 주인 온다 했지' 번뜩 생각에 부리나케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엄마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 한다.


"아. 전주집 주인 지인이 집 보러 온대요. 좀 빨리 내려가려구요."

"몇 시차로 가려고?"

"뭐 11시 차니까 씻고 금방 나가야죠."

"아이~~그럼 말을 해줘야지! 밥 다 놨어. 밥 먹고 가!"

"어휴... 내 이럴 줄 알고 말 안 한 건데 뭘 또 했어요?"


엄마가 씩 웃으며 내 앞에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아귀를 짠 하고 보여준다.

 

"너 좋아하는 아귀탕 고 샀어~~! 이게 냉동이 아니고 생물이야! 시장 가서 엄마가 어제 사 온 거야! 이거 먹고 가라!"

"아이고 이걸 어느 세월에 해요. 기차 타야 돼! 엄마 이따 송희랑 아빠랑 드세요."

"얘야.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지! 한 숟갈이라도 뜨고 가라! 얼른 씻고 나와! 거기 수건이랑 양말 다 챙겨놨어."


나에겐 '엄마손 밥상' 베스트 3가 있다. 꽃게탕, 돼지고기찌개, 그리고 아귀탕. 그중에서도 난 아귀탕을 제일 좋아한다. 부위별로 촉감이 다르다는 점이 이 아귀의 치명적인 매력 포인트다. 몽실몽실한 겉살, 촉촉하고 쫀쫀한 속살이 어우러진 요 녀석이 우리 엄마의 손에 감겨 보글보글 탕 속으로 던져지고, 낙지, 미더덕 등 해산물과 함께 미나리 심심하게 넣어 칼칼한 국물 한 숟갈 후 불어 떠먹고 간장에 고기 콕 찍어먹으면 캬.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한 끼의 세계를 만끽한다.


와. 기차 시간 맞춰 버스 타려면 빡빡하겠는데 이걸 먹어 말어.




씻고 나오니 그 새 푸짐한 아귀탕이 나와버렸다. 김이 모락모락 잘도 피어나는구나. 고소한 내가 코를 훅 찌른다. 기차든 버스든 에라 모르겠다.


"생물로 끓인 거야 이거. 밥은 조금 먹고 아귀 많이 먹어. 고기 먹지 말고 생선을 많이 먹어야 피가 맑아지는 거야. 너 엄마가 준 굼벵이 환 먹고 있어?"

"간간히 먹어요."

"매일매일 하루에 한 번씩 먹는 거야 그거. 그래야 효과가 있는 거야. 크릴 오일은? 비타민 남았어?"

"아이고~~ 네 잘 먹고 있습니다. 아니 언제는 또 약 많이 먹으면 부작용 생긴다면서?? 준 거 잘 먹고 있어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지!"

"뭘 걱정을 안 해!!! 이렇게 살이 쪄가지구 어이구 이 배 봐라 이거 어떡할 거야! 운동하고 있지? 이렇게 보니까 쪼끔 빠진 것 같긴 한데?"

"네네~~"


엄마가 식탁 끝에서 뭘 뒤적뒤적하더니 내 주머니에 봉투를 하나 찔러준다.


"이게 뭐야?"

"생일인데 현금으로 주는 거야. 정 살 안 빠지면 한약 지어먹으라고. 내려가면 꼭 진맥 받고 건강 상태 확인해봐."

"아~~~ 엄마! 내 나이가 내일모레 마흔이오! 무슨 이 나이 먹고 용돈을 받아요. 고맙습니다! 마음으로 받았어. 됐어."

"얘는! 엄마가 주는 용돈인데 그게 뭐라고 안 받아!"

"아요~~~ 됐어요."


옥신각신하고 있으려니,


"얘야. 내가 얼마나 산다고... 주면 몇 번을 주겠냐!"

"아니 백세시대에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백세시대면 뭐하냐! 외할머니가 예순아홉에 돌아가셨는데. 사람 가는 데는 순서가 없어."

"엄마!!!!!!"


탕. 숟가락을 내려놨다. 순간의 정적. 밖에서 우웅우웅 찻소리가 휑하고 지나간다.


"엄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내가 너한테 뭘 숨기냐?"

"엄마 맨날 아픈 거 말고... 그거 말고 어디 또 아파요?"

"내가 어디가 아파. 매일 운동 다니는데."

"근데 왜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요! 내가 송희한테 다 물어볼 거야! 어디 아픈데라도 나와봐!"

"너 건강관리 잘하라고 얘기하는 거지 내가 어디가 아프다고... 참 얘도 이상하게 말을 해."


큰소리친 건 나지만 놓치고 간 것 역시 나다. 엄마 나이 이제 예순아홉.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나이와 같다. 유독 올해 그렇게 '건강 노래'를 사방팔방으로 부르고 다닌 데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엄마는 무서웠던 것이다.




할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시던 해, 엄마는 갑상선 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의사 말로는 수술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암이라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엄마는 펑펑 울었다. 아빠는 별 거 아닌 수술에 뭘 그렇게 우냐 했다. 정확히 10년 후, 아빠도 갑상선 암에 걸렸다.


엄마가 암으로부터 회복되고 난 후, '가족 건강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엄마는 모든 식단을 건강식으로 바꿨다. 모든 음식이 밍밍해졌다. 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제철 나물 위주의 채식단으로 아침저녁을 짰다. 티비에 앉아 건강 관련 프로그램은 다 챙겨봤다. 퇴근하고 오면 냉장고에 펜으로 빼곡하게 적은 식단 메모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집에만 오면 자연스레 '건강음식 섭취 캠페인'에 동참하게 되었다.


뭐는 먹어라, 뭐는 먹지 마라, 티비에서 무슨 박사가 이 운동을 하면 좋다더라 귀가 닳도록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싸우기도 하고 짜증도 많이 냈다. 세상에 그렇게 먹으면 대체 뭘 먹고 사냐고. 그럼 엄마는 그렇게 먹 게 원래 정상이라고 되쳤다. 그렇게 십수 년이 흐르니 나도 그런가 보다 대서봐야 무엇하랴 하고 그저 네네하고 만다.


그래도 언제나 '특별식'은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서울 살던 시절, 퇴근길에 지친 목소리로 "집으로 가요" 엄마한테 전화라도 걸면, 엄마는 귀신 같이 알아듣고 뭐 먹고 싶어 물었다. 그럼 나는 셋 중에 골랐다.


아귀탕 되면 해주세요.




냉장고가 커지면 뭘 하나. 메모지만 더 붙었구나. 가려고 짐 싸려니 엄마가 조용히 옆에 와서 운을 띄운다.


"요번에 건강검진받았더니 고지혈증이 좀 있다더라고."

"왜 그게 나왔대요?"

"내가 요새 센베 과자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고. 빵도 땡기고. 낮에 좀 먹었더니 수치가 올라갔다네."

"나도 요즘 소주맥주 안 마셔요. 엄마도 과자 그런 거 드시지 마세요."

"알았어. 이제 먹지 말아야지."

"내가 과자 대용으로 뭐 찾아볼게요."

"됐어. 송희한테 물어보면 다 알려주니까 걱정 말고 가. 근데 이거 어쩌니. 반도 못 먹고 가니..."

"다음에 올 때 또 해주세요."

"그래! 생물로 해줄게! 마스크 잘하고 가! 답답해도 제대로 쓰고 가!"

"네~~~~"


버스는 이미 늦었다. 택시를 잡아탔다. 아. 왜 이리 마음이 무겁냐. 뒷좌석에 고개를 젖히고 퍼져 앉았다. 뭐가 바쁘다고 엄마를 뒷전에 두고 있었을까.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멍청하긴.


용돈 봉투를 쥐어들었다. 속이라도 안 썩이면 본전이나 치지. 내 나이가 마흔이든 일흔이든 나는 엄마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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