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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May 25. 2020

‘미운 세 살’을 다스리는 생각의 질서

82년생 육아 대디



28개월 차 우리 아들은 그야말로 폭주기관차다. 심성이 활달한 수준을 넘어 거의 광폭적인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 살 정도 때만 해도 뒤뚱뒤뚱대고 해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우사인 볼트처럼 바람을 가르고 뛰어다니는 통에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밖에 산책이라도 나오면 애가 어디로 튈지 몰라 매번 노심초사다. (덕분에 내 칼로리 소모율은 올라갔다.)


힘은 들지만 그래. 건강하면 당연히 좋은 거지. 그건 아이와 우리에겐 더 없는 축복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가볍다.
아이에게 인성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아들은 이제 막 자신의 성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들어다. 수줍음이 생겼고, 자아와 주변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지, 이름은 뭔지, 엄마와 아빠는 나와 어떤 관계인지, 선생님과 친구들은 어떤 존재인지, 꽃과 곤충, 자동차, 미끄럼틀은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 요모조모로 생각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건 희망사항일 뿐 부모 마음대로 뜻대로 절대 될 리가 없다. 말만 하면 “그거 아니야!” 재우려고 하면 “책 또 읽어주세요~~” 밥 먹자고 하면 “까까 주세요!”. 이제는 문장 구사력이 제법 생겨 대화도 된다. 이상한 대화.

“아빠. 이거 덤프트럭 부러졌어요. 붙여주세요.”
“어 아빠 이거마저 하고 붙여줄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이게 떨어졌어요! 안에 장난감이 안 들어가요! 붙! 여! 주! 세! 요!”
“어! 거의 다 했어. 얼른 붙여줄게요.”
“아빠 이놈! 붙여 주~세~요!”
“아빠 이놈이라니! 아빠는 이놈 아니에요!”
“이놈! 도와주세요~~ 빨리요~~”

한 번은 광주집에 갔다가 애가 하도 정신없이 뛰어다니니까 장인어른께서 “이놈~ 얼른 밥 먹어야지!” 했더니 되레 자기가 할아버지 보고 “이놈~~~~”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껄껄껄 폭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나는 ‘저저저 저 녀석 성질머리를 어떡하나’ 탄식을 했다. 이후 아들은 집에서도 나나 아내 가릴 것 없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놈의 “이놈~~” 소리를 질렀다.

처가댁 시제로 일가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 아들은 어른들이 예쁘다 잘한다 해주니 거실 한가운데 서서 30분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춤을 추는 통에 모두 다 정신이 나가버렸다. 요 애는 박씨는 아니다 강씨다, 지금까지 본 애들 중에 제일 기운이 좋다, 세상에 이렇게 즐겁게 사는 애도 있냐, 별의별 우스갯소리가 다 나왔다.

우리도 어릴 때 그랬던가 돌이켜봐도 둘 다 해당사항이 없다. 아내는 원래 어릴 적부터 차분한 성격이라 아예 생각의 여지도 없고, 나는 엄한 엄마 밑에서 커 집에선 큰소리도 못 내봤다. 내가 좀 개구쟁이긴 했지만 그래도 저 정도는 절대 아니었는데. 하여 우리 선조 중에 아주 신명 넘치는 분이 계셨나 보다 잠정 결론을 냈다.

기쁘면 괴성을 지르고, 화나면 누구 할 거 없이 덤벼들고, 짜증 나면 눈물을 쥐어짜서라도 울고, 놀자면 신나서는 메들리로 노래를 부르고. 우리 부부는 인간사 희로애락의 탄생을 절절하게 지켜보고 있다.



아들은 장난감 부자다. 특히 자동차라면 무엇이든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중장비차라면 환장한다. 그런 아들에 양가 부모님도 환장한다. 그래서 집에 자동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실제로 보면 선물 받은 것이 대부분이고 우리가 사 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하루는 아버지가 서울에서 아예 중장비 장난감 대형 세트를 사 오셔서 애 눈을 뒤집어 놓으셨다. 그래서 요즘 집 청소를 하면 애 장난감 치우는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린다.


차라리 장난감 진열대를 사주자!


어린이날이 다가올 무렵, 아내는 아이 선물을 장난감 말고 장난감 진열대를 사주자 했다. 얘가 스스로 정리를 하면 모를까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래 이 넘치는 장난감 보기 좋게라도 두자 싶어 오케이 했다. 기왕에 살 꺼 원목으로 사자 덧붙여 그래 오래 쓸 거 튼튼한 게 좋지 싶어 그러자 했다.

예상보다 아이의 반응이 좋았다. “이제부터 서원이 장난감은 여기다 두는 거예요. 다 갖고 놀면 서원이가 두고 싶은데 자동차 두세요.” 했더니, 자기 입맛에 맞게 주로 갖고 노는 차들을 여기저기에 골고루 배치해 둔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본인의 것은 본인이 직접 정리할 것.


애가 싫증이 나서 다 팽개치고 가려고 하면 우리는 질문을 던진다.

“어. 서원이 자동차 이렇게 두면 다 망가질 텐데 괜찮겠어?”
“어. 자동차 이렇게 두면 혹시 누가 가져가는 거 아냐?”
“어. 그냥 팽개쳐두고 가니까 몇 개 없어진 것 같은데?”

소유욕에 타는 아이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와 하나씩 하나씩 곱게 자신의 소중한 물건들을 정돈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넣을 때마다 누가 사줬는지 이야기한다.

“이거 할아버지가 사줬어요.”
“이거 아빠가 사줬어요.”
“이거 엄마가 사줬어요.”
“이거 이모가 사줬어요.”
“이거 고모가 사줬어요.”



아이는 정돈하며 장난감과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되짚어 본다. 그러자 무작정 들고 이 방 저 방에 장난감을 아무렇게나 던져두는 습관도 자연스레 고쳐졌다. 진열장 앞 매트 위에서 갖고 놀기 시작했다. 진열장을 중심으로 하여 아이의 활동 반경이 차곡차곡 맞춰져 나아갔다. 불과 보름만의 일이다.

받는 것에 대한 소유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지키고 관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없다. 아이에게 장난감은 가장 큰 실 자산이다. 아들이 자신의 실 자산을 직접 운영하도록 연습하는 버릇을 길러주어야겠다.


생각의 질서를 하나하나 잡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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