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준 Jun 24. 2021

서로 행복하기 위한 개인주의

다정한 무관심, 한승혜 지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MBTI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또 시작이군'


꽤 오래 전부터 나를 알고 싶고 타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 일본 저자가 쓴 혈액형 심리학이었다. 호기심에 읽어봤지만 그 내용들이 바넘효과라는 건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왜냐면 그 책을 읽으면서 모든 혈액형이 내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로부터 한 1년 정도 흘렀을까? 국내에서도 혈액형 심리학이 붐을 탔다. 그러다보니 초면에 혈액형을 물어보는게 인사처럼 되었다.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아 저 AB형인데요"

"AB형이시면 어쩌고 저쩌고..."


무슨 얘기를 할 줄 알고 있으니까 더 듣기 싫은 말이었다. 혈액형 심리학이 유사과학이라 말하면 이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그게 바로 전형적인 AB형들 특징이예요!"


그 말들은 내가 누군지를 알려주지 못하고 또 그렇게 분류한 인간형이 나인 것도 아니다. 혈액형 심리학 이후에 등장한 모든 인간 분류법들이 다 마찬가지다. 정말로 당신이 그런 얄팍한 분류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분류를 초등학생 때부터 싫어했던 것 같다. 나는 외동아들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어릴 때 처음보는 어른들이 형제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 일도 많았는데 이게 무척이나 싫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거의 비슷했으니까.


"외동아들은 보통 곱게 자라서 이기적이고 예의를 잘 모르는데 어쩌구 저쩌구..."


이런 말에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면 '어른이 그렇다 하면 그렇다고 알아 들을 것이지, 외동아들이라 어른이 이야기하는데 말대꾸를 한다'라는 소리를 듣기 쉬웠다. 이런 반응이 지겨워져서 나중엔 입을 닫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중엔 대답이 좀 달라지긴 했다.


"보통 외동아들은 예의가 없고 이기적인데, 너는 외동같지 않네"

 

장녀, 막내 기질 뭐 이런 것도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나니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외동이라서, 막내라서, O형이라서, INTP라서 와 같은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남들에게 설명하고 싶어한다는 사실만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잘 알다시피 그것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진 못한다. 나 자신이야 나의 복잡성을 알고 있으니 그런 식으로 표방해도 무리는 없겠지만 저런 분류로 타인을 재단하는 것은 타인이 갖고 있는 복잡성을 무시하고 납작하게 만드는 편견에 해당하는거다. 저런 분류와는 상관 없이, 나는 나로써 존재한다. 타인 또한 마찬가지다.


나 자신만큼이나 타인 또한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상대방을 쉽게 단정짓고 편견으로 보는 것이 무리수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단순히 어떤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복잡한 이유가 있단걸 이해하게 되니까. 그리고 이를 통해 상대방이 왜 그런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해한다는게 거기에 동의한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개인을 납작하고 평면적인 존재가 아니라 진짜 개인으로 보고 그 사정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이러한 상호 이해에서 출발을 한다. 타인을 납작하고 평면적인 존재로 본고 이해한다면 존중이 나올 수가 없다. 앞서 언급했던 '외동같지 않다'라는 표현이 그렇다. 본인은 칭찬이라 생각해서 했겠지만 이건 본인이 외동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으로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표현이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너는 마이너스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마이너스가 아니야!'라는 뜻이다. 이게 뭔 칭찬이겠나.


보통 타인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지만 그게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땐 '사과'를 한다. "나는 너를 나쁘게 오해하고 있었지만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사과한다." 라는 형식으로 말이다. 이게 정석이다. 누군가를 편견으로 바라보는게 실례라는 걸 알고 있다면 말이다. 무례란게 바로 이런거다. 이런 무례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필요한게 상대방을 한 독립적 개인으로 보고 인정하는 상호존중인 것이다.


타인은 왜 저럴까? 나쁜 놈이라서 라고 결론을 내리면 할 수 있는게 욕 뿐이다. 그런데  타인의 상황과 사정을 이해하려 시도한다면 그 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를 이해할 때 그만큼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만약 그 문제가 내 수준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라면 더 이상 거기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또한 그 문제가 내 수준에서 해결 불가능하지만 만약 나 또한 그러한 상황과 사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배려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또한 이 단계까지 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된다. 결국 양쪽 모두 좀 더 나아지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개인주의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를 한다. 상호 존중이 아니라 나 자신의 기분이 우선되고 상대방을 억압하고 찍어누르는 것에 큰 열의를 보인다. 그런데 이럴 경우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타인에게 억압당하고 찍어 눌림을 당할 수밖에 없다. 고통이 바로 여기에서 오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내 멋대로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서로 멋대로 할 경우 오는 것이 상호 모두의 고통 뿐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로 불쾌함을 겪지 않기 위해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배푸는 것이 서로가 좀 더 행복한 개인으로 가는 개인주의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 [다정한 무관심] 내용에 공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더들은 왜 나쁜 전략을 남발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