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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Jun 29. 2023

흑인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상속녀에 대하여

상속녀에 대해서 스쳐 지나가듯 듣기는 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생긴 일 때문에 묘한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시카고에 사는 동생에게서 긴급회동 문자가 왔다. 안건이 있을 때마다 줌으로 만나곤 했지만, 5분후에 만나자고 하는 일은 좀체 없는 일이었다.


마침 언니와 남편과 토론토로 향하는 중이라 우리는 차속에서 접속할 수 있다 했고, 브런치 약속이 있어서 나가는 중이라는 동생과 함께 4명이 잠시 함께 했다. 한국에 있는 언니와 바쁜 동생은 카톡문자를 보지도 못했다.


세명은 차안에서, 제안자는 가게에서 대화를 하게 됐는데, 동생이 대뜸 가게에 오는 한 노인 고객에 대해서 말한다. 긴급한 안건이 있을줄 알았는데, 고객이라니 처음엔 무슨 일인가 했다. 가끔씩 가게에 와서 "가짜손톱"을 사가는 한 노인고객이 있단다.  금방 돌아가실듯, 행색과 얼굴빛이 말이 아닌데, 잊을만하면 와서 가짜손톱을 사가는 단골이란다. 언제부터인가 대화를 통해 암에 걸린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분이 잘 드시지 못하신다고 하여서, 음식을 갖고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동생이 음식을 갖다준 것은 그 한번이 다였다고 했다. 가게에 올 때마다 도움을 주고 말을 들어드리고 그런 정도의 인연이라고 했다. 동생말은 할머니의 손톱이 아주 못쓰게 되어 그것을 가리기 위해서 가짜손톱을 사다 붙이는 것 같다고 했다. 동생네는 시카고에서 미용제품을 판매하는 대형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동생이 손톱 발톱 매니큐어 기술이 있는데, 자신의 이 기술이 할머니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언제 한번 할머니의 손톱을 깨끗하게 다듬어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생이 한국에 여행간 동안 그 할머니가 와서 동생을 찾았는데, 제부가 지금 없다고 하자,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네 아내에게 줄것이라고 말해서 믿지도 않고 흘려들었다고 했다. 병세가 악화되면서 운전사를 고용해 차를 타고 와선, 가게까지 들어올 여력이 안되어 주차장에서 주문을 하면, 물건을 갖다주기도 했는데, 한번은   그렇게 정성을 들여 찾아와준 것이 고맙다며, 40여달러에 달하는 손톱을 돈을 받지않고 주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날 당신의 생일이었는데, 아무도 기억해주는 이 없었는데 가게주인에게서 그런 친절을 받고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계산이 명확한 할머니는 다음에 와서 돈을 주려고 했지만, 제부는 선물로 드렸는데 그러지마시라고 거절했단다.


할머니가 찾는 네일(손톱)이 없어서 주문해놨는데, 동생이 한국에 돌아온후 물건이 왔느냐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물건이 도착하여 배달을 갔지만, 집에 가니, 도어벨도 없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지않아 그냥 돌아왔다고 했다. 그 뒤로 할머니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할머니는 의사가 얼마 못산다고 이야기했다며 나는 내 재산을 너에게 주고싶다고 말하셨다고 한다. 남은 내 재산을 타주에 있는 형제자매들이나, 나와 관계도 없는 친척들에게 주고 싶지도, 시에 주고 싶지도 않다며 네게 주고싶다고 다시 말하시더란다. 


동생은 그런 상황에서 우리들에게 SOS를 친 것이다. 누구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는 할머니가 가게에 갈때마다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동생에게 위로를 받았었나보다. 


동생은 요즘 직원이 부족해서 일에 매달려있느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지난 주일 저녁 간신히 시간을 내서 할머니집으로 갔다고 했다. 


할머니는 많이 우시고, 내 힘으로 변호사를 부르기도 어렵고 하니 네가 변호사를 불러서 사인을 받아가라고 꼭 당부하시면서, 다이아반지 2개를 주시면서 끼어보라고 권하셨단다. 작은 집이 있고, 거의 새것인 가전제품들도 있으니, 나머지 것도 모두 네 필요에 따라 쓰라고 하셨단다. 할머니는 잠시후 다이아반지를 다시 달라시면서, 내가 죽으면 네것이 될것이고, 나머지 것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목록을 작성하라고 했다고. 할머니는 작년에 누군가가 유산으로 준 집으로 이사하시면서 소파와 등, 탁자 등을 샀지만 포장을 미처 뜯지도 않는 것이 집에 많이 있었다고. 동생이 할머니집에서 발견한 가장 애처로운 일은 강아지 두마리가 있었는데, 할머니의 사정상 밖으로 운동나가지도 못하고 할머니와 있는 강아지들이 너무 안타까워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한 마리라도 데려다 키워줄까, 했지만 그 강아지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하시며 거절하셨다고 한다. 사는 동안 당신의 삶의 모습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집념을 보았다고 했다. 


이밖에 할머니의 도어벨이 고장 나서 그것을 고쳐야 하는데, 사람을 불렀더니 돈 300불만 받고 도망갔고, 울타리 고치는 사람도 선불 3000불 받고 고쳐주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하셨다 한다. 할머니는 그런 커뮤니티 속에서 마음문을 꼭 닫고 사신 분이신 것 같다.  


맞다. 할머니는 흑인이고, 흑인사회에서 힘없고 병든 늙은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할머니의 사연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동생 말에 의하면, 자신은 한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할머니가 그동안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이 너와 네 남편밖에는 없었다고 했다니, 그 삶이 얼마나 황폐하고 고단했을까 짐작되어 마음이 아팠다. 동생은 가시기 전에 하나님품에 할머니가 안기기를 기도하고 있다. 할머니는 이제는 다른 것은 소화를 못 시키고 칩스와 콜라, 펩시 음료수만 조금씩 마신다고 하신다. 그리고 간호사가 집으로 와서 매일 체크하니, 그 마지막이 언제일지 모른다.


동생은 마지막 가는 길에 편안히 가시도록 돕고 배려할 마음은 있지만, 재산은  갖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나중에 친척들 문제도 있고,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찰 것 같다면서. 낯선 동양인이 할머니집의 물건들을 들어낸다던지, 재산을 가져가면 지역사회 오해의 소지도 많아도 섣불리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라고 했다. 그리고 상속세등 법적인 문제도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닐 것이니 그런 결정을 하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훌륭한 흑인교회 목사님을 만난다면 좋을 것 같은데, 가게 가까이 있는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다 하였다. 할머니의 마지막에 대해서 조심히 여쭙자, "뚜껑이 있는 관"이면 좋겠다고 하셨단다. 그 말은 화장을 하지 않고, 묘지에 묻히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며, 교회에서 할머니의 재산으로 장례를 치러드리고, 나머지는 헌금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동생은 지난번 큰언니 가는 길에도 3주간이나 침식을 함께하며 언니 곁에서 지켜줬는데, 그 애는 원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그런 귀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어제 내가 일하는 식품점에 허리가 한쪽으로 휘어 머리도 75% 옆으로 기운 할아버지가 비닐봉투에 담긴 것을 계산대에 올려놓으셨다. 가볍게 들어 올려지는 그것은 체리 몇 알이었다. 무게를 재서 파는데, 금액이 30센트 나왔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게 돈을 꺼내 값을 치르셨다. 남루한 행색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보내는데, 숨이 잠시 멎는다. 동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싶다. 내가 주인이라면, 잠시 가게를 비우고 쫓아나가서 괜찮으신지 물어볼 수 있었을까? 혹시 돈이라도 쥐어줬으면 어땠을까? 그 몇 알의 체리가 할아버지의 또 다른 힘이 되길 기도한다.



한국에 갔을 때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할머니가 차를 타서 바로 자리를 양보했는데, 마침 한 사람이 또 일어나니 나를 손잡아 주저앉치신다. 할머니가 교통사고(아마도 자전거로 치었던 것 같다)로 다리가 다쳐서 병원에 갔다 오는 중이라고 내게 말을 걸어서, 나는 "누구 도와줄 사람이 없으신가요?" 했더니, 할머니가 말씀을 시작하셨다. 며느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야기, 아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이야기, 아직도 일하시면서 사는 이야기, 아들 사진도 보여주시면서 왜 이런 일들이 내게 일어나는지 모르겠다고. 교통사고가 났는데 젊은이가 돈이 없다 하여 보상을 제대로 못 받은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고생시켰던 남편이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일까지. 본인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도 믿기지 않았다. 나는 내려야 할 역이 다가오고 있어서, 해드릴 수 있는 말이 없네요. 할머니를 위해 기도할게요, 하면서 지갑을 열어 5만 원을 드리려고 했는데, 받지 않으셨다. 그런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시원하다고 하셨다.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매일 느끼는 나날이다. 토끼풀과 잡풀이 엉겨있어 아름답진 않아도 잔디가 깔린 정원을 가진 집에 사는 것부터, 혹시 무슨 일이 있어서 해고되어도 당장 큰일나지 않을 재정상태인 것까지.


이런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언제나 가족이 옆에 있어서 힘들때 도와주고, 보고싶은 친구들이 내게 있는 건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 삶인지 말이다. 


시카고 흑인할머니도 이제 더이상 외로움에 사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지고 계신 것을 지켜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싶어하는 마음을 지녔고, 그렇게 위로가 되는 이웃을 가졌으니, 좋아질 일만 남은 것이리라.


하나 덧붙이자면 또하나의 상속녀에 대해서 알고있다.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언니. 언니는 엄마의 상속녀이다. 딸이 많은 우리집에서 언니가 특별히 상속녀에 당첨되었다. 엄마는 매달 꾸준히 생명보험을 들었고, 보험금 전액을 부을만큼 장수하셨다. 그리고 그 보험은 엄마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인 언니를 위한 것임을 우리 가족들은 다 안다. 미혼인 언니에게 언제나 애틋했던 엄마는 "내게도 가족이 있다"라고 장난스레 말씀하셨다. 언니도 연금을 받는 나이가 됐지만, 소아마비로 캐나다에서는 큰 벌이를 하지 못했다. 지금은 정부에서 주는 아파트에다 연금까지 사는 데는 부담이 없지만, 목돈이 있는 것은 아니니, 이 돈이 언니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언니는 그 돈으로 작년에 차를 샀는데, 그 차가 자동이 안되어 있어서 트렁크 올리기도, 운전석 의자 조정하기도 힘들어서 불편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 차를 다시 갖다주고 돈을 더 얹어주고 새 차로 업그레이드했다. 장장 7개월을 기다려 그 차를 며칠 전 찾아왔는데 언니의 만족도는 상상 이상이다. 엄마가 남겨준 그 돈으로 언니는 튼튼한 구르는 발을 갖게 됐다. 


내가 가진 것을 상속받을 사람을 지정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엄마가 떠나시면서까지 안심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흑인할머니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도와준다고 하다가 동생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고, 할머니의 가는 길에 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비참하게 살았지만, 하늘나라에 간 거지 나사로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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