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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Jun 08. 2023

상생의 손과 스페이스 워크 미션 달성

포항으로 회전한 우리들의 여행


처음에는 지리산자락을 걸으려고 했다. 리디북스에서 공짜로 얻은 이북일 것이다. 이민학이 지은 "지리산 둘레길" 책을 보면서 뽑은 트레킹 코스였다. 지리산 둘레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20km 코스를 소개한 책이다. 그는 20km를 걷기가 어렵다면 12km로 약간 줄인 매동마을에서 시작하여 금계까지 가면 좋을 것이라 소개했다. 아이들에게 지리산의 영험(?)한 기운도 느끼게 해주고, 하룻밤 남원에서 자고 이도령과 성춘향 자취를 둘러보는 것도 교육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는 큰딸과 둘째가 있으니 일단 멤버는 완성됐고, 같이 가게 되는 큰조카도 흔쾌히 함께 하겠다 했다. 그리고 그시간에 시카고 동생도 한국에 있을 예정이니, 그렇게 일행이 모아졌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주말은 겨우 한주뿐이었고, 그것이 내가 도착한 주였다. 지리산을 간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 예약등은 한국에 가면 하리라 했는데, 약간의 변수가 생겼다. 최근에 한국을 방문하고 온 캐나다 지인이 우리집을 방문해서 한번 여쭤보았는데, 지리산 둘레길에서 지리산을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란 말씀을 해주셨다. 그저 걷는 일인데, 아이들이 좋아할지 그것도 조금 의심스러워졌다. 가다가 비어있는 민박에 들어가면 되리라 했지만, 그런 것이 수월치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그러던 참에 큰조카가 와서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텐데 괜찮겠냐고 했더니 썩 긍정적인 답변이 아니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조카가 그편인듯했다. 어디 가고싶은 데가 없느냐 물으니, 언젠가 사진에서 본 스페이스 워크가 있는 곳이 있다던데, 그곳이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스페이스 워크를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프로에서 한번 본적이 있다. 둥근 원같은 큰 조형물에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었고, 출연자들이 어머나 어머나를 연발하며 그곳을 올라가더란 말이다. 내가 그곳을 찾으니, 포항에 있었다.  그 포항이란 데는 큰조카가 방문하기 며칠전 어쩌다 광고에서 본 지역이기도 했다. 그 광고는 역이민자들을 포섭(?)하려는 빌리지 분양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포항에 작은 돈으로 집한채 마련하라고 하면서, 해외교포들을 위한 설명회를 개최한다는 광고였다. 한국방문을 앞두고, 이상한 광고에 꽂히게 되어 포항을 한번 가봐? 하고 있을 때 큰조카가 포항을 들먹이기에 나도 맘이 확 동했다.


그런 다음에 포항으로 목적지를 바꾸면 어떻겠는가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큰딸은 상생의 손으로 유명한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고 한다. 바닷가에 세워진 큰 손이, 떠오르는 해를 받치고 있는 사진은 심심찮게 만나는데 그곳의 이름은 호미곶이다.


그렇게 정하니 지리산의 영험함은 멀리 사라졌고, 포항에 대한 기대로 옮겨가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하고 며칠안에 여행계획이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우선 KTX표를 구매하겠다던 큰애가 자리가 하나도 없다고 연락이 왔다. 포항까지는 멀어서 반드시 빠른 기차를 타야 하는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큰애가 아니면 우리 모두 외국인이라 기차표든 무엇이든 표를 예매하는 것이 어려웠다. 인증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언니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언니도 예매하고 이런 것들을 잘하지 못했다. 우리가 가는 것이 옳은지 모두 고개를 갸웃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토요일 하루 비가 온다는 전망이었다. 그래도 용기를 모아서 KTX가 아니라도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로 가자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언니네 샵에 있는 젊은 직원에게 부탁하니, 고속버스 예매를 바로 해주었다. 토요일 일찍은 자리가 하나도 없어서 오후 3시쯤 예매가 됐고, 돌아오는 버스편도 이 차가 편할 것이라면서 오후 늦게 떠나는 것을 끊었다.


그런데 잡혀야할 숙소가 잡히지 않는 것이다. 숙소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찾아서 기록해서 전화로 예약을 해야겠다고 노트에 적고있는 신세가 한심했다. 나는 크레딧카드도 잊고 가져오지 않아서 나 스스로 뭘 할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큰애는 직장에 다닌다고 크게 도와주지도 않고, 제안한 내가 해내야 하는데, 지쳐가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던 에어 비엔비도 잘 작동이 안되고, 숙소를 예약해 본적이 별로 없다는 언니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런날 밤, 새벽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숙소도 잡히지 않는데 너무 힘들이지 말고, 모두 같이 서산 둘째언니네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곳에 가면 숙소를 고민할 필요도 없고 한번은 가야 하니, 가는 길에 서산 근처 볼거리를 찾아서 하나 보고, 언니네 집에 가면 모두가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그런 내용의 문자를 보냈더니, 급속도로 냉각된 답변이 왔다. 친척(가족) 방문과 여행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럼 숙소를 못찾아서 그러니 너희들이 좀 노력해보라고 했다. 몇집의 펜션이 물망에 올랐고, 나도 사이트를 뒤지며 만난 한곳에 예약을 해보라고 했다. 마침내 숙소가 결정되었다. 5명이 가서 하룻밤 묵을 곳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될줄이야.


서론이 지나치게 길었다.


그 숙소는 우리를 기다리는 곳임을 알게됐다. 주인아저씨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아이들은 내게 영어로 질문거리를 보내오고, 나는 한글로 그것을 풀어서 주면 아저씨에게 다시 전달하고 그러면서 소통을 했다. 차를 가져가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일정들이 꽤 어려움이 많을 것이 예상됐다. 처음에 포항에 내려서 어떻게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지 아저씨가 잘 설명해줬다. 늦게 도착해서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우리가 모두 5명인 것이 큰 문제가 아니런가. 동생이 상냥한 얼굴로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했는데 차2대가 손사래치며 거절했다. 택시 2대를 대절해서 가야하나, 하는데 마지막 한번만 더 물어보자고 해서 마지막 3번째 택시 기사분이 우리를 태워주셨다. 강사교회 근처라고 아저씨가 알려주셔서 그리 말했더니 숙소앞으로 잘 데려다 주었다. 숙소이름은 "샬롬 펜션"이었다. 웹사이트에는 샬롬 펜션형 민박이라고 나와있었다.


우리의 첫번째 미션은 다음날 새벽 "상생의 손"이 있는 바다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저씨에게 이곳에서 그 바다까지 걸어서 갈만 한가요? 했더니 조금 낯빛이 어두워진다. 새벽바람이 매섭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날 새벽기도회에 가기전에 차로 태워다주겠다고 하신다. 헉, 이렇게 감사할 수가. 올때는 해변가로 오다가 길이 끊어지면 그 윗길로 해서 올라오면 집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여행지에서의 친절은 그 자체로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모든 것이 낯설때 가장 중요한 도움을 주셔서 포항은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된다.


그렇게 상생의 손, 상생의 바다를 만났다. 아이들은 아침햇볕에 노르스름하게 빛깔을 입은 얼굴이 되었다. 상생의 손은 바다에 하나, 마주보이는 공원에 하나, 이렇게 두손이 마주보고 있었다. 삶은 이렇게 두손이 만나는 일인가 보다.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 삶, 우리를 데려다준 민박집 아저씨를 생각하고 5명을 태워준 택시기사를 생각한다.


엷은 모포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이 햇빛을 보고 들어가 한잠씩 다시 잘지도 모르지만, 우리처럼 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내려와 알람을 켜놓고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맞고자 나선 길이니, 정답고 반가웠다. 아이들은 캐나다에 있는 아빠와 화상통화를 하면서 그 풍경을 보여준다.


인증사진은 찍어야지!
호미곶에서 해변을 따라 가는 길에 만난 강아지, 둘째와 한참을 놀았다.


포항에 온 가장 큰 미션을 잘 달성했기에 모두 의기양양했다. 해안가를 따라 걷는 길도 흥미롭다. 외우고 있는 노래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빨랫감처럼 집게에 꽂혀 말려지고 있는 생선들도 있고, 망태기, 그물 등이 갯가에 파묻혀있기도 하다. 펜션과 카페 이런 것들이 조금씩 들어서고 있지만, 큰 관광지는 아닌 것 같다. KTX를 타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근처 숙소까지 오는데 거진 5시간 걸린 것같다. 역이민자들을 위한 설명회는 우리가 도착하기 하루전날 있었는데, 그것이 제대로된 회사가 하는 지는 모르지만, 서울과 너무 멀어서 큰 효과는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쪽이 고향인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 것이다.


샬롬 펜션형 민박 아저씨는 강사교회에 다니신다고 하셨다. 강사교회는 펜션 바로 아래에 있었다. 아이들은 일요일 아침 새벽해를 보고와서 다시 노곤해져서 조금 쉬겠다고 했다. 펜션은 침대도 있지만, 바닥이 따뜻하여 아무곳이나 누울 수 있었다. 서로 바닥에서 잔다고 그전날 싸우기도 했다.


나와 동생은 아이들이 쉰다고 해서, 잘되었다고 하고 교회로 향했다. 마침 일요일이었다. 그림처럼 아름답고 작은 교회였다. 마침 민박집 아저씨가 대표기도를 하셨다. 교회에서 반주를 하시던 분이 있는데, 예배가 끝나고 우리를 쫓아오셨다. 나중에 보니 그분은 사장님의 아내되신 분이었다. 민박집 사장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토종 포항사람이고, 고향에서 산다고 하셨다. 젊은이들을 키워서 대처에 많이 보내셨다고. 교회에서 자란 청년들이 일할때쯤이면 고향을 떠나는 모습을 많이 봐서 서운하다고 하셨다. 본인은 너무 잘 지내고 있다고 하셨다. 다음에 올때는 에어비앤 비를 통하지 않고, 바로 연락주면 된다고 명함도 주셨다. 혹 포항에 갈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 연락하면 좋을 것 같다. 방이름이 사랑방 온유방 기쁨방등 사장님처럼 따뜻한 이름의 방이다. 우리는 겸손이라는 방에서 머물렀다. ( *샬롬 펜션형 민박 대표 김정규 전화 (054)284-8869..개인적 부탁을 받은 적 없다. 그저 포항에 갈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을뿐) 아 그리고 펜션에 대해서 조금 찾아보니, 단체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별채가 있다고 한다. 언제 다시가면 온가족이 그곳으로 가면 좋겠다.


정원도 참으로 정갈하게 잘 손질되어 있었다. 곳곳에 항아리들로 조경도 되어있었고, 꽃과 소나무가 있었다. 왼쪽 사진은 바베큐도 해먹을 수 있는 야외 테라스.


둘째의 음식에 대한 간절함은 진심이었다. 그애도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그때 해산물을 많이 먹지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언니가 비건이니 언니를 쫓아다니다 보면, 비건음식을 주로 먹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친구들과 가족들과 이런저런 음식을 먹었다고 했더니, 이번에 가면 자신도 그런 것들을 꼭 먹고싶다고 했다. 구룡포에서 작정하고 그런 식당을 찾아갔다. 해산물 식당. 민박집 사장님이 불러주어서 5명을 태워준 택시기사분은 자신의 이름을 대면 잘해줄 것이라면서 한곳에 세워주셨다. 식당은 넓지않고 고급스럽지는 않았지만 음식은 푸짐했다. 대게와 각종 회들이 나와서 열심히 먹는데, 큰애가 먹을만한 음식은 거의 없었다. 급하게 몇가지 야채와 고추장을 넣고 밥을 비벼먹고 불편한듯 앉아있어서 나가있어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상처가 될듯싶어 가만 두었다. 조금 후에 자신은 나가있어도 되겠느냐고, 나한테 마음쓰지 말고 편히 먹으라고 말한다. 그래서 큰애를 내보내고 남은 사람들은 열심히 먹었다. 큰애는 이제는 고기집에서도 생존할 수 있고, 차선으로 음식을 찾아먹는다고 하는데, 그날은 너무 많은 해산물 냄새에 머리가 아파왔다고 한다. 본인이 선택한 삶의 방법이니, 겪어내야 할일이다. 그래도 큰애 때문에 캐나다 가족이 편하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고, 집에서는 최선을 다해 가족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한다. 사회성도 늘었고, 생존능력도 더 강해진 것같다.


왼쪽 사진밑에 큰애가 만들어놓은 비빔밥이 있다.


그렇게 식사를 거하게 하고 찾아간 곳이 근대역사거리였다. 큰애는 "동백꽃 필무렵"의 강하늘 팬이고, 그 드라마를 봤던지라 촬영장소가 그곳이라는 말에 반색을 했다. 일본인들이 살았던 곳을 잘 보수해서 사람들이 살고, 장사도 하고 있었다. 한두시간 보내기 좋은 코스였다. 공효진의 술집앞에 포토존 자리가 있는데 사람들이 줄서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줄서서 기다리는데, 한쌍의 연인들이 그곳에서 촬영을 하는데, 정말 다른 사람이 안보이는듯, 온갖 포즈를 다했다. 특별히 그 아가씨, 귀엽게 새촘하게 요염하게 등등 별별 표정으로 남자 친구에게 촬영을 하게 하더니, 두사람 셀카까지 연기하듯 찍어서 구경거리였다. 큰애는 그곳에선 사진을 안찍겠다고 하더니, 그옆에 세워진 오토바이(소품) 위에선 잘나올때까지 찍어달라고 해서 힘들었다. 그 아가씨를 못마땅해하는 것 같더니, 조금 떨어진 오토바이위에선 이쪽 각도로, 저쪽 각도로 요구하더니 결국 크게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단다.^^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오는 공효진이 경영한 카멜라야 식당앞에서 포즈 취한 동생


이제 마지막 미션을 완성하러 가야한다. 포항에 다른 볼거리도 많지만, 우리는 택시나 버스를 타야만 갈 수 있어서 스페이스 워크를 마지막으로 보기로 했다. 스페이스 워크는 유명세를 톡톡히 내야했다. 꽤 긴 줄이 서있었다. 환호공원이라는 자체가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스페이스 워크 때문에 공원은 들러리가 된듯싶다. 산을 깎아 만들었는지, 꽤 언덕을 올라야 했다. 실물이 안보이는 곳에서부터 줄이 늘어서 있다. 한시간 이상을 뙤약볕에 서있었다. 그래도 그 계단을 밟아야 모든 것이 완성되는 셈이다. 드디어 스페이스 워크의 위용이 보이고, 그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생각없이 계단을 척척 올라가는데, 조금 아래를 내려다보니 큰조카가 머물러 있고, 그밑에 큰딸도 서 있다. 무슨 문제가 있나 했는데, 이게 웬걸, 그애들은 무서워서 더이상 못올라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세다면 가장 쎈언니에 속하는 큰조카와, 큰딸 두애가 무섭다고 난간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기가막힌지.


나와 동생, 둘째는 45%쯤 올라가다가 그만 돌아가자고 내려왔다. 동생은 그런다. 우리가 애써서 기다리고 여기까지 꼭 이걸 해보기 위해서 온 무슨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가 하고. 기대에 못미쳤다는 말이겠다. 나는 큰 불만은 없다. 굽어질 수 없는 철근으로 만든 구조물이 구부러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휘어지고 늘어진 곡선을 보여주니, 미학적이었다. 곳곳에 조금 더 흥미롭고, 사람을 끌만한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포항시는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본다. 바다에 거대한 손조각을 세워서 그 호미곶이 유명해졌듯이 환호공원도 스페이스 워크라는 조형물이 생겨서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 것이니. 음 말하자면 고급전망대라고 해야할까? 그곳에 올라가니, 바다 건너 포항시내도 보였고, 해질녘 반대편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도 볼수 있었다. 줄서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올라온 보람도 있고 말이다.


포항의 바다가 보이고, 아파트촌도 보인다. 왼쪽 위 사진을 보면 줄서있는 사람들까지.


이제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면 된다. 넉넉하게 시간을 계산해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금방 터미날에 갈줄 알았던 버스가 계속 달린다. 그래서 버스기사에게 여쭈니, 앞으로 1시간 더 가야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빙빙 돌아가는 버스를 탄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내렸다. 마지막으로 택시를 잡기 시작하는데, 택시가 안온다. 택시가 오더라도 5명을 태워줄 것 같지 않다. 마지막은 내가 나섰다. 너무도 애절하게 서울갈 버스를 놓치게 되어서 그런데, 지불을 더해드리겠으니 5명 태워주시길 부탁드린다, 고 해서 간신히 얻어탔다. 나는 그 버스기사와 고속버스 터미날에 도착할때까지 대화를 나눴다.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등산코스는 이 동네 어느산이 가장 좋다고 하시고, 택시기사들이 5명 태우다 사고가 나면 보험이 안되어서 안태워주는 것이라는 등,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제시간에 고속버스터미날에  오지못했을 것이므로 나의 귀는 그분의 대화에 열렬히 열려있었다.


그날의 버스는 대단했다. 언니네 샵의 직원은 버스가 좋을 것이라면서 끊어줬는데, 프리미엄이라던가? 비행기로 치면 비지니스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발판이 있고, 뒤로 의자가 한참 넘어가서 잘수 있고, 한자리씩 개인 커튼이 있어서 사생활(?)이 보호되었다. 너무 수다스럽게 좋다고 했더니, 큰애가 그런 촌스런 소리를 내지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좋은데 좋다고 말하지 못하다니, 큰애는 한국문화에서 이상한 것을 배운 것인가? 아니면 캐나다 문화를 가져온 것인가?  아이들은 엄청 좋아했다. 긴 여행끝 편안한 좌석이 우리 마음을 녹였다.


우등고속을 탔을때도 우와 했는데, 이건 그 차원이 아니었다. 버스의 바닥은 집안 거실처럼 나무색 장판이 깔려있었다. 모두 이어폰을 끼고 영상 삼매경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서울에 와서 깨달았다.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다. 전철도 버스도 다 끊긴 시간이었다. 한시간만 일찍 오는 차를 탔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처음엔 택시가 선다는 곳으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데 오는 택시는 가뭄에 콩나기이다. 그래서 택시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길쪽으로 가는 편이 좋겠다고 의견이 모여서 밖으로 나왔다. 큰애가 앱으로 택시를 불러서 간신히 한대가 왔다. 세애가 엄마와 이모가 먼저 가라고 말했다. 우리는 거여동으로 아이들은 용산으로 가야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앱으로도 택시가 잡히지 않아, 숫제 걸어가자고 1시간 이상을 걸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택시가 와서 타고 집에 도착했다고. 아이들의 "효도"로 그렇게 고생하지 않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포항을 포기했던 날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들에게서 이 귀한 시간을 뺏을뻔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쉬운쪽으로 뒤집기하는 내 마음을 늘 감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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