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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Nov 23. 2023

식품점의 오피스 일이란

돈세기, 컴퓨터에 숫자 입력하기

시간이란 흐르기 마련이다. 식품점에서 일한지 일년이 되었다. 그 힘들던 사내방송도 제법 해내고, 손님들과 가끔은 농담도 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가까워졌다. 어느날은 할아버지 손님이 나를 유심히 본다. 왜 그러시나, 했더니 나보고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기억이 나는데, 많이 부드러워졌다며 웃는다. 


그리고 프로모션이라고 부를만한(?) 일도 발생했다. 캐쉬어 오피스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그 일은 지난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오피스에서 일하던 한명이 회사를 떠나면서,  나를 포함 몇명에게 물어보았다. 그 제안은 다른 식품점의 세일상품과 가격을 맞춰주는 "price match" 권한을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프라이스 매치할때 가격차이가 많이 나면, 그 권한이 있는 사람을 불러 해결해야 하기에, 일할 때마다 걸림돌이 되었다. 다른 사람을 부르지않고, 해결하게 되니 우선 그것이 매력이 있었다. 그러면서 오피스에서 일을 배워볼 의향이 있느냐고 말했다. 돈을 잘 셀수 있느냐고, 해서 그 정도야, 하면서 해보겠다고 했다. (그 프라이스 매치가 이제는 본인 것을 할때 다른 사람을 불러야 하는 것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다) 나와 또 한명이 그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오피스 트레이닝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컴퓨터에 나타난 액수와 현찰이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다른 한명은 매일 울상이었다. 나도 같은 형편이라 이 일을 할수 있게 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캐시 오피스의 일은 이밖에도 캐쉬어들의 쉬는 시간을 챙겨주고,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고, 자리를 떠난 사람들을 체크하고, 손님이 줄을 설때에는 직접 캐시잡으로 들어가서 일해야 한다. 손님들의 불만사항을 잘 해결하는 것도 주요 임무다. 이 동네 사람들, 대체적으로 온순하고 참을성과 이해심이 많아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얼마나 다행인지.


오피스 일이라고 해서,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하는 그런 "멋들어진" 일이 아니다. 매니저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높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데, 보조자인 우리들은 대부분 서서 일한다. 사람들이 일하기전 나와서 전날의 금전등록기의 돈을 일일이 헤아려 컴퓨터상의 액수와 맞는지 본다. 10달러 미만의 오차는 넘어가는데 그 액수가 늘어나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찾아내야 한다. 돈과 관련된 일이기에 굳게 잠긴 문을 매번 키로 열고 들어와야 한다. 시스템이 옛것이라 그런지 목에 걸린 자동열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수동으로 연다. 그것도 들어오는 첫문이 있고, 또다시  오피스 문을 열어야 한다. 문을 열어놓고 일하는 법은 없다. 그만큼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서너개의 금고가 있어서 오피스에 다른 사람이 없을 경우, 항상 잠그고 가야 한다. 현금을 은행에 건네주는 현금 배달 회사 사람들은 무장(총)하고 일주일에 두번씩 오피스를 방문하기도 한다.


두어달 동안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Sunday에는 일을 배우기가 쉬워. 한가롭고.

그렇게 말하는 매니저의 말을 못들은척 흘려보냈다.

어느날 그녀는 다시한번 묻는다. 일요일 일할 수 있겠느냐고.

그날은 교회가기 때문에 할수 없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고 또 묻는다. 오전이나 오후나 올수 있겠어?

1시부터 5시까지 교회시간이라고 말한다.


또 며칠후 트레이닝을 받기에 일요일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그렇게 습득이 더디면 이 일을 하기 어렵고,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면서. 그래서 어느날 일하는 속도를 혼자 계산해봤다. 쉼쉬기도 줄이며 열심히 한 결과 그녀가 말하는 시간대에 접근하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한번 일요일을 말하면, 단호하게 안된다고 못박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얼마후든가? 9월 10월 오피스 일에서 내 이름이 빠졌다. 드디어 그 일을 안하게 되나보다 생각했다. 탈락된 것이 좀 아쉽지만, 시원섭섭했다. 그러면서 주일에 일을 한다고 하면 달라졌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오피스 일을 하다가 캐시만 보는 것은 스트레스 없는 편한 일이 된다. 조금 지루할 때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오피스 일을 한다고 해서, 시급이 많이 오르거나 하지 않기에 그 힘든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주변사람들의 말이기도 했다. 나의 경우는, 해볼 만큼 해보고, 영 못하겠으면 그때가서 결정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트레이닝을 시작한 그녀는 볼때마다 "매일 운다"며 사장에게 항의하겠다고도 하고,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하라고 한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나는 오피스일을 하지 않을때 그녀는 꾸준히 하면서 조금씩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오피스 일에 배당되기 시작했다. 거의 잊어버릴 만큼 시간이 흐른 다음이다. 매니저가 매뉴얼을 잘 작성해서 보여준다. 그대로 따라하면 될 정도로 세심하게 적어놨다. 아침마다 밸런스(컴퓨터 합계와 실제 돈이 맞는 것)가 맞느냐 맞지 않느냐와의 싸움이다. 맞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아침에 일을 하기 위해 금전등록기를 시간맞춰 준비해야기에, 피가 마른다. 지적질(?)해대는 매니저에게 저항을 느끼기도 했는데, 하루는 꽤 큰 오차로 현찰이 컴퓨터상보다 많아서 놀랬는데, 그 다음날 금전등록기 계산에서 같은 액수의 적자가 나와서 문제가 해결된 날이 있었다. 이틀간 내가 오피스 일을 했기에, 전적으로 나의 실수임이 밝혀진 날이기도 하다. 그 뒤로 매니저에 대한 저항이 내려앉고 배우는 태도로 돌아섰다. 앞 사람이 잘못하면, 그것을 해결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여러 상황을 겪은 매니저의 판단과 해결에 놀라움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물리적인 돈세기도 정확해야 하고, 그와 함께 입력도 깔끔하게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해가 없이 매뉴얼대로 일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물리가 트인다고 할까, 그런 것들이 생겼다. 


지난주 매니저를 포함, 캐시 오피스 직원들과 사장부부가 함께하는 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사장부인은 우리들에게 "수퍼바이저"라고 떠받쳐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것에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전까지는 오피스 보조자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새끼 수퍼바이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퍼바이저 중에는 저녁 마감시간에 일하는 고등학생들도 있다. 한팀이 두명씩, 매니저 빼고 10명 정도의 오피스 직원이 있다. 이들은 오피스일만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캐쉬어 + 오피스 일을 병행한다.


한두 사람에게 전담시켜도 좋을 일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같다.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교차 확인을 하게 한다. 아침에 헤아린 돈을 저녁에 하시 한번 헤아려서, 착오가 없는지 알게 되고, 일주일 내내 같은 팀이 아니라, 두세팀을 돌리면서 오피스가 문제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오피스 일을 일주일에 3일 정도씩 하게 되면서,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면, 일하는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Break 시간을 챙겨주고, over ride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 하노라면 쉬는 시간 챙기기도 벅차다.


매니저는 돈을 헤아리는 중이라도 고객이 줄서있으면 내려가서 손님을 받고오라고 말한다. 손님들 조금 기다리게 하면 어때, 하는 태도에서 매니저의 마음쪽으로 움직인 것도 나의 발전이다.  또 매니저 자리에서는 가게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고, 기역자로 된 책상의 한편에서 일하는 나같은 사람은 고개를 돌려야만 보이는 단점이 있어서인지, 내려가야 할때를 잘 찾지못한다. 매니저는 언제나 손님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 일을 시간안에 끝내기 위해 몰두할 때, 그런 "지시"를 받는 것이 달갑지 않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나중에 해야할 일을 마치지 못한 질책도 따라오지만 말이다. 중간에 몇개의 금전등록기를 다시 가져와 컴의 액수와 맞는지 또 확인한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감시(?)하니, 캐쉬어가 돈을 훔친다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일하는 매니저급 사람들은 눈이 앞뒤로 있는 것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손님들을 주시하시고 하고, 다른 직원, 고객과 수다떨고 있는 사람들도 눈치를 줘야 하고, 바닥에 흘린 것들도 치워야 하고 말이다. 매니저는 "사장"의 눈이 되어서 일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감시감독한다. 다른 직원들과 수다떨 위험이 없는 나같은 사람이 눈에 들었던 것같다. 손님이 없는 시간, 잠시잠시 숨을 돌리면서 스트레스를 풀면 회사에도 좋으련만, 그런 꼴을 못보는 매니저를 보면 좀 심하다싶다. 나는 그녀를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손님이 없어도, 있어도 긴장하게 된다. 뭐랄까,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은. 누구를 시키는 것보다 내가 해버리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매니저와 비슷한 마음이 들어야 일을 잘배우는 사람일텐데,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것같다. 


일하는 만큼 보수가 오른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이 회사는 "짜기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일하다 보니, 직원들과 유대감이 생긴다. 지난번 캐쉬어 전체 회의에서 사장 부부는 그동안 마이너스 성장이었는데, 올해 10% 성장을 했다며 고맙다고 말한다. 새로운 오너가 생긴 것이 내가 일을 시작할때쯤이었다. 사장과 부인을 모두 이름으로 부르니,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신분상의 위화감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각자의 자존심을 잘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뿌듯한 것은 받는 만큼의 배를 일해주고 있다는 자부심이랄까? 언젠가 제대로 대우해달라고 피켓시위를 하게 될지 모른다. 그때까지는 잘 배우고 익히는 게 우선이다.


에피소드 하나,

직원들이 브레이크 타임에 쉬는 휴게실은 각자에게는 적적한 편이다. 일에 지장이 없도록 번갈아가면서 쉬기 때문이다. 그 휴게실을 CCTV로 찍어 돌려본다면, 사람이 바뀌면서 쉬지않고 들락날락하는 곳일 것이다. 어느날, 야채 파트 직원중 하나가 가족이 나눠먹는 2리터짜리 아이스크림 한통을 퍼먹는 것을 봤다. 큰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도시락처럼 앞에 놓고 먹어서 깜짝 놀랐다. 그런 모습을 두번 정도 봤다. 마주치기 힘든데 그런 모습을 두번이나 목격하고 보니,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는 언제나 화난듯 보이는 얼굴에다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어서 눈에 띈다. 이 식품점에 들어오기전에 쇼핑할 때도 그는 유독 눈에 띄었다. 옛날에 무엇인가 물어봤다가, 불퉁한 말에 무안했던 적도 있다. 어느날 그가 자주 앉았던 자리가 비어있어서 앉으려고 하는데,  그가 나타나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면서 이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아무나 앉는 곳이라며, 걱정말고 앉으라"고 했다. 그래서 앉아서 스낵을 먹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마늘빵"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좋아한다고 대답해야 할것 같아서 "그렇다"고 했더니, 긴 마늘빵 한가닥을 줬다. 옆집 가게에서 사온것 같았다. 그렇게 얻어먹고 나서, 맛있었다고 하며 내 이름을 소개했다. 그랬더니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서, 내가 다음에 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놀라지 말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 뇌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서 기억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술자국을 보여준다. 그는 "암수술을 받았고,   그래도 오늘 이자리에 있으니 된것"이라며 밝게 웃는다. 자신은 17년째 이곳서 일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그와 나는 서로 안면을 튼 동료가 되었다. 만날 때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한다. 그는 나의 이름을 잊어버렸는지, 이름을 부르지는 앉지만, 예전에 불퉁하던 표정은 없어진 것같다.


에피소드 두울,

매니저가 어느날은 그로서리 파트를 도와주라고 한다. 바쁘지 않은 날이었던 것같다. 그로서리 파트에서는 물건을 갖다 채우고 줄을 맞추는 일을 해야한다. 그 물건을 실어나르는 것을 트럭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로서리 매니저에게 가서 어떻게 도와줄까, 했더니 트럭 한가득 담겨있는 것을 주면서 가져가서 선반에 진열하라고 했다. 모든 것이 박스안에 담겨있기에 칼이 필수로 있어야 한다. 새칼을 한자루 준다. 그렇게 "뒷일"을 하루 그리고 며칠후 또 몇시간 했다. 높은 데 있는 것은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칼로 박스를 자르고, 물건을 꺼내고 제대로 진열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매장 일을 하다보면, 손님들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무엇이 있느냐, 어디에 있느냐, 이런 물건을 취급하지 않느냐 등등.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칼자루를 주머니에 차고 일하다보니 자꾸 웃음이 났다. 대형 식품점에는 꽤 많은 업무가 있다. 캐쉬어 일을 시작으로 오피스 일도 해보고 이제는 칼차고 뒷일을 하는 나를 보며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식품점에서는 내가 60이 넘은 아줌마라는 걸 알고 있기는 한가? 아니,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다. 현재 캐쉬어 중에는 74살 할머니가 있고 70이 넘어보이는 분들이 두어명, 내 또래도 그만큼 있어서 나이로 엄살을 부릴 처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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