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꼬매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그날 저녁, 잠이 오지 않았다.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그 원인이었다. 내용은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넘어가기로 하자. 우리집에도 있을 수 있는 문제, 숨어있지만 가능성이 있는 그 문제가 기사로 나와있었다. 덮어놓고 살수 있을까, 혼란을 주는 그 문제를 열어놓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나, 그런 까닭이었다.
또하나의 문제는 그날 아침 식탁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번쯤 만나야만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은 오래전부터 소개시켜주고 싶은 부부가 있다고 말했었다. 같이 만나면 좋을 것이라고. 여러 사정으로 미루다가 이제는 볼때가 됐다 싶은데, 남편의 협조가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원래도 적극적이지 않던 사람이, 건강에 적신호가 오면서 더욱 움츠려드는 것 같다. 그런 그를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호기롭게 "한번 뵙지요"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뱅뱅거린다.
그런 걱정들 때문이었는지, 그날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새벽쯤 결정된 사항이 3일이다. 3일만 먹는 걸 참아보자, 그렇게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 극에 달하는 수난절이니, 종교적 금식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내가 가끔 하는 금식은 기도와 성경보는 그런 금식이라고 할만하진 않고, 내 정신의 환기 정도로 부를 수 있다. 처음 금식을 시작한 것도, 간헐적 단식에서 얻은 아이디어였으니.
금식하는 기간에 하루에 커피 한잔, 물 1리터, 그리고 꿀물 한잔을 마셨다.
금식 첫째날, 일하는 곳에서 그 부부를 보았다. 예전에 교회에 나왔던 두분. 예배가 언제 시작하는지, 몇번 물어보셨는데, 그날 또 묻으신다. 다시 한번 알려드린다. 그리고 마침 내 브레이크 시간이 되어서 그분들과 뒷편에 서서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다. 일하는 중에는 단 몇마디 나누는 것도 힘이 드는데, 그날은 그분들이 떠나기전에 마침 15분의 여유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대부분 그 시간에는 간식을 먹으며 힘을 비축해서 남은 시간에 대비하는데 말이다.
그분들이 말하셨다. 당신들도 힘이 들었다고. 왜 아니겠는가. 한인교회가 생겨서 기쁘게 섬겼는데, 목사가 그렇게 배반(?)할 줄이야. 그분들은 특별히 더 목사를 챙기셨던 분들이다. 물질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그런 다음에 새목사가 왔지만 상처 때문인지 교회에 오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새목사와도 우리는 결별을 하게 된다. 그분들은 또다시 새 목사가 오게 됐다는 이야기를 내게서 처음 들었다고 했다. 벌써 1년도 더 된 일인데 누구도 교회이야기를 꺼내길 꺼려한다. 어쩌면 교회가 지역 한인들에게는 "독종 바이러스"처럼 느껴지는 것 아닐까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니는 피해망상일지 모르지만 교회다니는 우리들을 "멸시"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나는 교회의 현주소를 말씀드렸다. 모두 떠난 앙상한 모습 그대로. 그리고 도와주는 교회들과 노회가 있어서 운영이 되고 있다고. 새로운 목회자는 이 지역 한인들의 상처 때문에 오히려 발걸음을 참고 있다고 했더니, "배려"가 있으시다고 말하셨다. 이번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시겠다고 하셨다. 그 두분의 참석은 이 작은 교회에 얼마마한 선물이 될른지, 벌써 마음이 두근두근해진다.
금식 둘째날, 페이쓰(Faith, 이름이 믿음이다)가 일하는 내곁에 와서 이야기한다. 내 손녀가 죽었어요. 신문에도 났어요. 그애 부모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괜찮아요. 이렇게 말이다. 그게 무슨, 심장이 쿵 떨어진다. 손녀가 몇살이지요?라고 간신히 물었다. 16살이란다. 신문에 났다는 걸 보니, 보통 죽음이 아닌 것 같다. 손녀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분노조절 장애로요. 추모모임이 있다고 해서, 메세지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녀가 보내준 기사에 보니,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한 그 다음날, 강에서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녀는 부모에게 이런 상태로 계속 살아갈 수가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기사에 나온다. 그녀와 부모를 아는 사람들이 그녀가 발견된 강가 다리위에서 작은 모임을 가진 기사였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 엄마는 가족들을 위해 Go Fund me를 통해 모금창을 열어놓고 있었다. 장례비용과, 아이를 추모하기 위해서 부모가 일을 한동안 안해도 될 정도의 기금을 모금한다고 되어있었다. 기금은 이미 목표액(15,000달러)를 넘어서서 2배쯤 되어보인다.
나도 그녀의 부모를 조금은 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작년 음악캠프를 주관했던 사람이다. 내게 이메일로 한인음악가가 오는데 집을 제공해줄 수 있는가 묻기도 했었다. 그 캠프에서 페이쓰를 만났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백인노인이었는데, 내게 관심을 보였다. 아들이 주관한 캠프를 위해서 사스카치완에서 비행기타고 온 분이었다. 그녀를 통해서 알렌의 가정사를 조금은 들었는데, 그중 알렌이 안타깝게 느껴졌던 것은 그가 1살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페이쓰는 아들이 있는 오웬사운드로 이사올 작정이라고 했다. 음악캠프가 끝나고, 그녀가 오웬사운드로 오고, 그녀가 많이 아팠기도 했고, 그런 일들이 지난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그녀의 손녀가 그렇게 세상을 등지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페이쓰가 예전에 보내준 가족 사진에서 그 손녀를 다시 찾아보얐다. 처음 볼때도 느꼈지만, 그녀의 표정이 흐릿했다. 그녀는 선택적 함구증과 분노조절장애를 앓았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사건을 대하는 친구들, 이웃들의 시선이다. 다리위에서 사람들은 꽃을 강위로 뿌리고, 그녀의 삶을 기념하는 추모모임이 준비중이란다. 그리고 그녀가 댄스를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아하고, 마음이 예쁜 소녀였다고 소개하면서 추모기금을 모금하고 있었다.
페이쓰는 아들과 며느리도 이 사건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도 괜찮다고 말한다. 아픔이 쉽게 가시지는 않겠지만, 이런 관심과 애도는 그들에게 많은 위로가 될것같다.
금식을 간신히 끝내고 어제 막내가 집에 왔다. 많이 말랐다. 남편과 둘이 있으면 보지 못했을 것 같은 뮤지컬 JEJUS를 함께여서 볼 수 있었던 것같다. 딸이 없었다면 남편은 나혼자 보라면서 자리를 피했을 수도 있다. 뮤지컬 JEJUS는 그냥 그런 뮤지컬이 아니다. SOUND & SIGHT에서 부활절을 맞아 3일간만 무료로 보여주는데, 펜실바니아에 있는 이 극장을 몇년전 한번 가본적이 있다. 이번에는 텔레비전으로 봤는데, 무대는 그때 봤던 것보다 더 실감났다. 연기와 노래를 살리는 무대는 영화에 버금갔고, 심지어는 살아있는 동물들이 무대에서 뛰어다닌다. 한두마리가 아니고, 꽤 많이. 양, 염소, 말, 낙타 심지어 비둘기까지. 이 뮤지컬을 보라는 권유를 두 군데서 받았는데, 이렇게 막내딸과 같이 보게 될지는 몰랐다.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생애, 죽음과 부활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메세지는 "사랑"이었다.
그렇게 저녁시간을 보내고 누웠는데 새벽 3시에 잠이 깼다. 막내가 오늘 집에 가게 되니, 말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 어쩌나 했다. 깨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위층에서 소리가 난다. 그래서 문자를 보내봤다. 너도 깨어있니?하고. 그렇게 새벽대화를 나누게 됐다. 많이 자란 느낌을 받는다. ADHD약을 먹지 않아도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으로 보인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잘 안된다는 것이다. 그애가 25살이 넘어서면서 약을 먹지 않게 됐다. (25살까지는 정부에서 지원해준다) 약값이 어마어마해서 스스로 끊은 것이다. 약값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안먹어도 될것 같다면서. 그래서 돈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 누그려뜨려줬다. 살기도 힘들고, 제대로 살기는 더욱 힘들고. 그런 걸 왜 모르랴.
내가 해답을 줄수도 없고, 네가 정신과 의사든, 상담사든 찾아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때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땅에 끄는 긴 청바지를 입고 왔길래 바지를 줄여주겠다고 했다. 재봉틀은 없지만, 손으로 꼬매봐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바지를 꼬매고 책상에 앉아서 이글을 쓰는데 부활의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