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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Mar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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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을 통하여

창가, 사람이 거의 안보이는 구석진 자리를 찜해놓고, 팀호튼스 주문대로 갔다. 애브리씽 베이글에 플레인 크림치즈, 그리고 토스트해달라고 부탁하고, 도넛상자에 보니 꽈배기가 보인다. 시네몬 꽈배기를 한개 산다. 한국생각이 난다. 집에서 가져온 물과 함께 먹으면 될 것 같다. 주문받은 것을 들고 찜했던 자리로 갔는데, 그 사이 한 여성이 앉아있어서 숨을 흡 들이켜고 뒷걸음질친다. 홀로 있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니다.


팀호튼스에 꽈배기가 있다. 너무 반가웠다.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만..


그래도 창가 좌석이 한군데 비어있다. 그곳에 짐을 부리고 마음편하게 앉는다.  이런 환경에서 글쓰기는 처음이다. 파란색 복장, 망사 캡을 쓴 사람들과, 발에도 망사 버선을 신은 사람들이 일반인과 섞여 점심을 먹는다. 팀호튼스와 함께 있는 병원 카페테리아의 모습이다. 팬데믹 이후로 이런 의자배치가 정착이 되었는지, 사각형 긴 탁자에 정상회담하듯 의자는 반대편에 두개, 서로간의 간격이 2m는 넘어보인다. 소리를 지르면서 말해야 할것 같다.  작년에도 이곳에 있었다. 남편이 대장암 수술을 하는 동안, 딸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기억 때문에 딸에게 시간있을 때 전화하라고 문자를 넣었더니 전화가 왔다.


네 아빠가 대장내시경 받아서 이곳에 있는데, 네가 생각났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1년전 그때 딸은 많이 침체해 있었다. 아빠가 아파서 당연히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개인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수술 당일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됐다.


그녀는 일에 치어서 힘들어했다. 일만 하는 삶을 꿈꾸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친구들도 많이 못만나고, 별다른 취미와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날은 울기만 한다고 했다. 멘탈 치료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너무 멀리 살아서 외롭다고도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기에 많이 놀랐다. 직장이 중요하지만, 너 자신이 더 중요하니 잠시 일을 놓는 것은 어떠냐고 권하기도 해보고, 우리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함께 고민하자고 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친정이나 시가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딱히 도움받고 싶어서라기 보다, 시간을 내서 부모님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그러기 쉽지않아서 지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친정(우리집)은 북쪽으로 3시간,  시댁은 동쪽으로 3시간씩 걸리니 말이다.


남편의 수술이 잘 끝나고 후에 우리가 사는 곳에서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가 나서 지원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그애는 점차 회복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한 것이다. 그때에 비하면 결딜만 하고, 어쩌면 행복하기까지 해보인다. 아직도 "일만 하는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많이 적응이 되었고, 그에 따른 보상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내가 알고싶은 한가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싶어했던 1년전과 달리 "고양이"를 입양하더니 더이상 아이 이야기를 하지않는다. 물어볼 수 없어서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 카페테리아를 통해서 보는 창밖세계는 아직 재색이다. 창밖 야외의자에 엊저녁 내린 눈 손님이 앉아서 차가운 바람을 맞고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와서 창가옆에 앉았다. 지난번 글에서 책상위치를 불평했었다. 책상옆으로 눈을 돌리면, 밖이 바라보이는 곳으로 움직였다. 책상의자도 식탁의자를 가져다놓았다. 이전것보다는 더 낫다. 책상을 옮기면서 원목이어서 꽤 무거운 앉은뱅이 책상의 위치를 변경해야 했기에, 혼자 용을 쓰다가 오른쪽 옆구리에 통증을 느꼈다. 할수없이 내시경 마취 탓인지 시들시들해보이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서 마무리를 했다. 이렇게 두 책상(앉은벵이 포함) 위치를 바꾸고나니, 이제서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지 않아도 오른쪽 창문(아주 작다)을 통하여 들어오는 자연빛으로 오른쪽 볼이 씰룩거린다. 흰분을 칠한 기분이다. 옆으로 돌려 바라본 풍경은 특별할 것 없는 뒷마당과 뒷집, 그리고 그 뒤쪽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동산이다. 이 또한 재색이긴 하나, 앞으로 푸르러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막힘이 아니라 뚫림이고, 그것이 마음과 생각에 신선한 바람을 넣는다.




서랍에 들어있는 글을 다시 불러낸다. 벌써 4일이 지났다. 남편은 내시경에서 용종 2개를 떼냈단다. 그놈이 나쁜놈이 아니길 바란다.


병원에서 인상적이었던 일은 연세가 지긋한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하고 있었다. 병원에 가자마자 접수를 끝내고 나면, 안내를 받게 되는데, 남편은 "데이 서저리(Day surgery)" 하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접수처로 들어올때 안내했던 분이 우리에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가면 된다고 말해준다. 손짓으로 알려주어도 되련만  굳이 우리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안내하면서, 이를 타고 가면, "데이 서저리"로 갈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곳으로 가니, 역시나 자원봉사자가 있다. 수술동의서를 확인하고, 옷을 갈아입도록 돕고, 보호자의 전화번호를 받는 등등의 일을 한다. 그런 다음 카페테리아에서 기다리면 전화가 온다.


수술(내시경도 수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지만)이 다 끝났으니, 차를 가지고 병원 입구에 오면 환자를 데려다주겠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노트북을 닫고 일어난다. 나는 차를 입구에 세우고 로비로 나갔다. 조금 있다가 휠체어 탄 남편이 보이고, 또다시 노인봉사자가 그 휠체어를 밀고 있다. 그쯤에서 남편이 일어서서 나와 함께 나오면 될 것 같은데, 노인은 내게 차 위치만 물어보고, 자신이 휠체어를 밀어서 차앞에까지 와서 남편을 내려준다.


아주 작은 일이면서도 아픈 사람들을 보살피는 세세한 마음씀이 고맙다. 자원봉사자들을 "통하여" 이사회가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느낀다.


다시 앉은 책상에서 오른쪽 볼때기가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아침의 하얀기운을 듬뿍 받고 있다. 어쩌면 이 겨울의 마지막 눈일지도 모르는 흰무리들을 글쓰는 순간순간 내다본다. 몸은 창안에, 마음은 창밖에 있는 느낌이다. 창문을 "통하여" 새로운 나를 모색해본다. 그 새로운 나의 첫번째는 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지금처럼. 이야기거리가 안되는 것으로 한편의 글을 완성한다는 자괴감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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