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잡에서 떨려났다
많은 순간 나를 웃기는 건 나다. 유머가 있는 사람은 아닌데, 나를 웃길 정도는 된다. 이런 것들이 모여 한편의 글이 될수 있을지는 나도 장담못한다. 일단 쓰고보자.
허름한 할아버지가 내 카운터앞에 섰다. 뭐라고 말씀하신다. 다 못알아듣고, 탁스라는 말이 들린 것 같았다. 원주민들은 물건을 사면, 택스 부과 품목에 대해서, 돌려받을 수 있다. 원주민 카드가 있어서 그걸 제시해야 하고, 캐쉬어들은 그의 이름부터 정보를 전부 기록해야 한다. 어쨋든, 나는 택스를 빼달라고 하는가 해서 다시한번 물었다. 그랬더니 그분이 잘 못알아듣는다. 그래서 재차,
what do you want?(무얼 원하세요?) 했더니, I want to go home.(집에 가고싶다)고 대답하신다. 할아버지가 나하고 농담하시자고 하시나, 하다가 번쩍 할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렸다. 아마도 그는 이렇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Can you call Taxi?"하고 말이다.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나지 않고, 본인이 알아서 택시를 부르던지 하면 될텐데, 가끔 전화도 없는 사람들이 있어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한다. 그의 탁시 발음에서 나는 "택스"로 전환해서 들은셈이다.
그러니, 그의 "집에 가고싶어"가 농담이 아니라, 택시를 타고 집에 가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택시"라기 보다는 "탁시"라고 말했던 것 같다. 우리가 자주 쓰는 한국어화된 외래어를 이해하는게 더 힘들 때도 있다. 말하자면 "월마트"도 거의 "울마트" 처럼 들린다던가, "맥도널드"도 "맥더널쓰"(이것도 맞지는 않지만)라든가 말이다.
그래서 그분에게 탁시를 불러드리라고 사무실에 부탁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이 생각을 하면 자주 웃음이 난다.
작년말 이야기다. 카테지에서 마지막날 밤에 거대성찬이 베풀어졌다. 수육과 보쌈이 그것이었는데,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사촌오빠네가 야심차게 준비해왔고, 수육은 그날밤 직접 만든 음식이었다. 모두들 얼굴이 화안해져서 절인배추와 배추속에 고기를 써서 한입씩들 먹으며 기분을 내는 참이었다. 미국에서 동생도 오고, 1년을 마무리하는 행사로 아이들은 빼고 어른들만 골라서 간 길이었다. 카테지에 설치된 야외사우나에 들어앉아 우리끼리 상처받은 일, 늙어가면서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스토리까지 참으로 화기애애했다.
나도 들떠서 좀 커보이는 살점을 입에 꽉차게 넣고 힘차게 씹는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씹는 것을 멈추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입안에 것을 뱉어내고 상황을 들여다보니, 앞니 한개가 덜렁거리고 있다. 유전으로 이가 튼튼치 못해 임플란트도 몇개 했지만, 앞니는 좀 다른 문제다. 그때부터 먹지도 못하고 그 다음날 치과갈 일을 알아봐야 했다. 손으로 잡아빼도 뽑힐 것 같은 앞니는 새로운 틀니를 만드는 몇주 동안 흔들거리며 그 자리에 있었다. 치과의사는 일단 "임시틀니"를 만들어넣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한국에서 임플란트를 하고 왔다는 나의 이야기에, 한국에서 하셔도 되고 했던 걸로 봐서, 가격이 부담될까봐 말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나의 치근이 마모되어 자신이 없는 건지, 잘 알수가 없었다. 이 교정은 바로 할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검사하고 주문하고 또 끼워서 맞춰야 하는 것등 일이 많았다. 처음에 만든 것은 음식을 씹을 수 없었다. 의사는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6개월 정도 쓸수 있다는 임시틀니여도 비용도 만만찮았고, 만드는 공정도 그러했다. 새로 만들어 오랜 시간 들여서 입안에 맞게 조정해준 그 틀니는 외출할 때 꼭 착용해야한다. 입천장을 가려서 이물감이 있고, 많이 불편하다.
이 틀니를 빼면, 바로 영구가 된다. 이 모습을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은 나자신이다. 처음보다는 덜하지만, 볼때마다 웃음이 나지않을 수 없다. 언젠가는 외출할 때 틀니를 잊고나온 적도 있어서 마스크가 필수가 되기도 한다. 남편은 가끔씩 놀리는데, 나는 대놓고 말했다. "날 보고 웃어도 돼". 웃음이 나오는 데 막을 순 없는 것 아닌가. 한국에 있는 딸이 영상통화를 해와서 들키기도 했다. 둘째는 집에 방문왔을 때 불편하면 틀니를 빼고 있어도 된다고 몇번 말해줬지만, 아직은 감추고 싶다.
숫자에 약한 내가 식품점 사무실 일 트레이닝 받았었다. 딴에는 승진이라도 된양, 마음이 부풀기도 했었는데, 최근에 그만두었다. 매니저와 감정의 골만 깊어져 가고, 제대로 일처리할 수 없기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참고 열심히 하다보면, 잘되겠지 했는데, 매니저가 "이 일을 계속 할수 있겠느냐?"고 물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기권"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피스 일은 하나 하나 배울 때마다 쉬운 것이 없었다. 정부에서 "RECALL"을 고지하면, 온 식품점 선반을 샅샅이 뒤져서 그 물건들을 골라내야 한다. 캐쉬어 기계가 고장나면 설비센터에 전화해서 점검을 해야한다. 한번은 핸드 스캐너가 고장나서 전화했는데, 시리얼 넘버를 불러줘야 하고, 그 사람이 말하는 대로 컴퓨터를 조작해야 하는데, 전화 소리로 그걸 알아듣고 해내는 것이 그리 어려웠다. 나중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응답을 받기까지 1시간여를 전화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또한번은 내 아이디로 접근할 수 없는 항목이 있어서, 일을 하다가 막히곤 했다. 매니저는 자꾸 시키는데, 접속이 안되고. 그녀는 자신도 왜 그런지 알수 없으니, 설비센터에 전화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거의 매일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전화할 시간을 낸단 말인가. 그래도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더니, 담당자가 나의 IP 주소를 달라고 했다. 컴에 대해 잘 모르는데, 그 IP 주소를 찾는 데도 땀이 났다. 어쨋든 그녀가 내 컴퓨터에 접속해서 이리저리 해보는데, 잘되지 않는다. 그러더니 결국 "매니저만 접근권한이 있다"는 말을 들려준다.
"내 능력밖"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홀가분하다. 책임질 일을 좀 줄였다. 이런 일들은 내가 나를 보며 웃는 일일 수도 있고, 짠해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NO" 할줄 모르는 내 성격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내딴에는 멀티잡이 가능하다는 오만함이 있었는데, 오피스 일을 하다가, 줄서는 사람들 해결하러 캐쉬에 뛰어들었다가, 직원들 쉬는 시간 챙기는 등, 그 모든 일을 빈틈없이 할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니저와 몇명의 오피스잡 담당자들 대단하다.
조금 소설을 써보자면, 매니저가 나를 뽑은 이유는 선데이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현재 일요일 수요일 오피스에서 일하는 그녀를 떨어내고 싶어서. 왜냐하면 내가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우체국 일을 구해서 일주일에 두번 일할 수 있게 됐는데, 사장이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필요하니 자신을 자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요일날 일하라고 몇번 강요하다시피 했는데, 내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필요없어진 것일수도. 매니저는 일을 하고 있는데 또다른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물어댔다. 이일 하다가 저일로, 저일 하다가 이 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매니저 흉을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으로는 다짐했는데, 이렇게 털어내기로 하자.^^)
너무 작은 교회라서 사람이 없어서 내가 회계를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결산의 때가 오고 있어서 그 작업을 하는데, 수입 지출 그 간단한 계산이 잘되지 않아서 일주일간 끙끙댔다. 은행 스테이트먼트에 다 나오는 것인데도, 손으로 기록한 것과 스테이트먼트의 숫자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나 웃긴게 있다면 회계 장부 정리하면서 계산기 두드리는데,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시간이 그리 빨리 흐른다는데, 좋아하지는 않지만, 빠져서 하게 되더라. 숫자를 맞춰야 하니.
이런 내가 회사의 회계업무를 해볼 생각을 하다니, 너무 웃긴 일이다. 웃음은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 분명하다. 허름한 할아버지, 전화기도 없어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캐쉬어에게 부탁해야 하는 그분의 형편도 그렇고, 영어를 못 알아듣는 아시안 아줌마인 나도 그렇고, 틀니를 낀 나, 오피스잡에서 떨려난 나, 웃을 수밖에 없는데 조금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