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을 보내며
죽음과 친숙해지는 시간들이다.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다보면 나의 죽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오웬사운드에서의 시간들중에서 그녀를 내 삶에서 빼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 20여년이 되어가는 걸까. 같은 자영업(편의점)에 종사하면서 우리를 묶는 그룹에 있었고, 어느해인가는 그녀의 남편이 회장, 내가 부회장이 되어 자영업자 연합체를 이끌어나가기도 했다. 칼칼한 부산 아지매였고, 외모가 아름다워서 눈길을 끌었다.
그것뿐인가? 함께 교회생활을 했다. 교회의 부침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기도 했고, 신앙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 말다툼도 하긴 했다.
우리 두 가정을 포함 몇집이 자주 만나기도 하다가, 그안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던 적도 있었다. 우리의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는 “여인 5명의 여행”에 함께 하기도 했었다. 모두의 기세가 등등할 때, 누구도 양보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데 서툴렀던 그때, 우리의 여행은 난파했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어야할 우리들의 해외여행이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기억으로 가라앉았다. 이제는 무엇 때문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해를 풀기위해서 만났던 자리에서 더 큰 상처를 입고 나가떨어지는 그녀를 보면서, 내가 당할 일을 그녀 혼자 짊어지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녀를 감싸안으며, 나도 너와 같은 편이라고 말했던 것은 나중에라도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었다.
그녀가 오랫동안 아팠다. 그러나 본격치료를 위해 토론토로 떠나기전까지는 그녀와의 만남은 즐거운 피크닉이었다. 그녀는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방문오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재치있고, 활기찼다. “모범 환자상”이 있다면 그녀를 추천했을 것이다. 나는 혼자서, 남편과 때로는 주변 친구와 방문하면서 그 기쁨을 늘려나갔다. 지난번 글에서 다룬 리타이어먼트 홈에서 토론토로 떠나보내면서 열었던 이별파티가 많은 사람들에게 진짜 이별이 될줄은 몰랐다. 그날 그녀는 방문오는 모든 사람들의 자리(어느곳에 앉을 지, 음식은 어떻게 배열할지)까지 일일이 신경쓰며 우리를 맞았다. 토론토로 가서는 병원에서 항암을 하기로 했는데, 다른 무엇이 발견되어서 아직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것을 치료하면 저것이 문제가 되고, 오랫동안 병원에 있다가 잠시 퇴원했다고 즐거워하는 소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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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온타리오 북부 여행중, 돌아오는 길에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리곤 그길로 토론토 병원으로 갔다. 나는 여행중이라는 이야기도 하지 못했었다. 했다고 하더라도,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셔” 했겠지만, 그저 살짝 갔다오려고 했다. 그녀를 두고가는 내 마음이 켕겼지만, 나는 나의 삶의 즐거운 부분에 집중했다.
호흡기가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눈을 떴다.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 미안해. 고마워.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이야. 지금도 예쁜걸. 당신은 의젓한 두딸을 두었어. 그동안 많이 고생했어. 당신이 보내준 사과, 온 교회 식구들이 다 나누었어. 고마워. “ 그녀를 붙잡고, 두런두런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나보다 훨씬 말을 많이 했던 그사람, 그녀가 대꾸가 없었지만, 나의 손을 꼭잡아줬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아서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교회음악을 틀다가, 성경을 틀다가, 그렇게 1시간여를 함께 했다.
그녀는 다른 가족이 올때마다 눈을 뜨고 아는체를 했다. 몸은 부었고, 다시 말할 수 없게 된 그녀는 잠시잠시 눈을 뜨며 우리들을 눈빛으로만, 인사를 했다. 그날 중환자실 대기실에서 머물며, 면회오는 온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목사님을 기다렸다. 가족들이 목사님의 기도를 원한 것은 다행이었다. 믿음이 좋은 시누이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크리스천인 너의 엄마는 목사님의 기도를 받아야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고마웠다.
2명씩만 면회가 되는 중환자실이기에 밖에서 가족들과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남편은 “내가 캐나다 온것까지 후회가 된다. 그래서 이렇게 되지 않았겠느냐”하면서 눈물을 흘렀다. 나는 아이들이 잘 자라고,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 가게를 지키던 남편을 가끔 방문가면, 만날때 마다 미소를 보내주어서 감사했다. 가게를 경영하며 3시간 걸리는 병원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날도 딸이 가게를 보러 올라가고, 내려오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가게 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런 일에 닥치면 얼마나 힘들겠는지, 너무 안스러웠다. 그렇게 그녀를 만나고, 1주일후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호흡기를 떼는 것을 미루는 가족들에게 경험많은 노련한 의사가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가족들의 아픔은 내 관심이 아니고, 나는 환자의 상태만 생각한다. 지금 환자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알고 있느냐. 가족들의 결심이 늦어질수록 환자의 고통은 심해진다. 아직도 무엇을 망설이느냐”라고 했기에 가족들이 결심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모든 가족이 한번 더 모였을 때 호흡기를 제거했는데, 얼마후 그녀가 세상을 떠났단다.
내 친구는 그렇게 갔다. 위독해서 중환자실에 들어간지 2주 만이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오랫동안 다녔던 그녀의 교회에서 열렸다. 지금은 임시당회장이 맡고 있고, 새로운 싹을 틔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남들이 보기엔 그 교회 아직도 건재하냐, 묻는 그곳이다. 그 교회 임시당회장 목사는 몇번이나 그녀를 병문안했던, 그 누구보다도 우리들과 가까운 목사가 되어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집례했다.
그녀를 보내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한다. 교회에 냉담해진 이 지역에 그녀를 통해 훈풍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낀다. 죽고 나면 알게 된다.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너무 긴 고통없이 떠나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보내고 난 지금, 남편을 포함한 가족과 이웃의 사랑을 받고, 떠난 그녀는 언제나처럼 웃으면서 이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이세상 작은 다툼들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미움을 내안에 잡아놓지 말고, 물길따라 떠나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이다.
친구 당신은 내안에 언제나 살아있어. 잘 가게나.
사랑의 주님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 있을 것 같았던 사랑하는 문정옥 집사님을 먼저 보내고, 문집사님을 잃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앞에 모였습니다. 주님, 그녀의 몸안에 퍼진 암으로 인해 의사들은 6개월을 선고했지만, 주님안에서 생명을 연장받아 3년 6개월을 머물다 가셨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상처도 받고, 사람들에게 상처도 받았던 문집사님, 그런 마음의 상처에 몸의 병까지 그 가여운 영혼의 문집사님을 주님은 어찌하여 우리곁에서 데려가셨습니까.
사랑의 주님, 이제는 이런 떼를 쓰는 것이 무의미해졌습니다. 문집사님이 몸을 담았던 오웬사운드 교회에서 장례예배를 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문집사님이 한알의 밀알이 되어, 우리들을 묶고 있음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문집사님이 병으로 겪은 고통이 너무 커서 이제는 쉼을 위해 하나님곁으로 불러가셨음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문집사님이 뿌린 사랑의 씨앗이 이땅에서 자랄 수 있도록 남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문집사님은 영적으로 항상 깨어있어서 곁에 있는 우리들에게 영적 자각을 주곤 하였습니다. 교회가 휘청일 때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주님의 전을 지키기도 하였습니다.
죽음앞에 의연하였던 것도 기억합니다. 사랑의 주님, 문집사님은 이삶에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알았던 주님의 자녀였습니다. 사무치게 그리울 것을 우리는 압니다. 가정에서는 두딸의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는 미소가 아름다운 명랑한 가게 안주인으로 그녀의 삶은 아름다왔습니다.
그녀는 주님이 그녀를 이땅에 보낸 사명을, 완주하고 갔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문집사님이 이땅에 남긴 두 딸 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엄마를 여의기에는 아직은 어린 나이입니다. 엄마를 위하여 두 자녀가 헌신한 그것을 주님 아시지요. 주님께서 사랑의 눈동자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옵소서.
홀로 남은 안 집사님, 아내를 위해 애끓는 기도를 드린 안집사님을 지켜주사, 주님안에서 차차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에 모인 문집사님의 가족 모두에게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웃음이 고왔던 그사람
명랑, 쾌활했던 그사람
베풂을 받기보다 베풀기를 원했던 그사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던 그사람
사랑의 주님, 광야같았던 이땅을 떠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간 문집사님처럼 우리들도 천국의 소망으로 믿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문집사님이 주님과 함께 있음을 믿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문집사님을 사랑했던 이들에게 주님의 긍휼하심과 위로함이 임하기를 구하오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