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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양반들 출세했네

새 신랑들 고마워

by mindy

특별한 초대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

"언니, 아들이 언니네 부부를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네요"라고 그녀에게서 오랜만에 카톡메시지가 왔다. 잠시 아들보다는 나와 가까운 그녀의 초대가 아니어서 당황했지만, 결혼식을 축하한다면서 초대에 기쁘게 응하겠다고 답글을 보냈다.


그렇게 초대가 시작된 것이 지난 6월이었고, 지난 주말 드디어 그애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20여년이 넘는 시골살이에 기피대상 1번지는 대도시 다운타운이다. 이번 결혼식은 그토록 기피하던 그 대도시중에서도 대도시 토론토 빌딩숲에 있는 호텔이었다.


결혼식은 4시지만, 교통이 혼잡할 거야, 우리차를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 외곽에 주차하고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할까 등 시골양반들 고민을 하다가 시작 시간 5시간을 앞두고 출발했다. 우리집에서 토론토 다운타운까지 3시간쯤 걸리지만, 여러가지 돌발상황에 대비해서 말이다. 신랑의 어머니와는 사전교감이 없었다. 어떤 며느리를 얻게 됐는지, 아들은 어떤 회사를 다니며 어떻게 사는지, 우리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만큼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있었고, 그런 호기심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풀릴 날이 있을 것이기에, 과묵(?)한 나와 그녀는 그렇게 아들이 놓은 다리에 함께 올라타고 있는 중이었다.


이메일로 보내오는 초대는 이제 한달이 남았네요, 2주가 남았네요, 주변에 쉽게 주차할 공간이 이런 곳이 있어요, 호텔에 주차하면 비쌀 거예요, 등의 메시지를 보내왔었다. 아무래도 "어린애(?)"들이 주최하는 것이라, 장소를 잘못 구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왜 그런 곳에서 결혼식을 하느냐고 투정부릴 계제도 아니고, 맘속에서만 그런 의문들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은 막내의 친구이기도 했기에 막내도 초대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호텔 근처에 주차를 해놓은 시각이 시작 한시간전쯤이었다. 다운타운 근방 하이웨이에서 잠시 막혔던 것을 포함하면 큰 문제없이 주차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구두를 신어서 걷기가 부자유스러워, 운동화로 갈아 신고 호텔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갑자기 호텔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몇백 미터는 걸어야 할줄 알았는데 말이다. 쭈뼛거리다가 호텔로비에서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하면서 구두가 든 보따리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랬더니 온 가족이 호텔 로비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신랑 신부와 그집 부모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신부는 결혼전까지 꽁꽁 모습을 감추던 그전의 결혼식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오랜만에 만난 신랑의 부모와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신랑은 신부에게 어렸을 때 아저씨 아줌마네에 있는 캔디들을 다 먹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며 우리를 소개했다. 나는 신부에게 신랑이 캔디 때문에 우리를 좋아한다고 나름의 농담을 건넸다. 신부는 잘 웃고, 웨딩드레스를 입었지만 평상시처럼 사람들을 대했다. 가족들이 사진촬영을 한다고 해서, 우리는 식장으로 올라갔다. 나는 운동화가 신경쓰여서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식장은 43층에 있었다. 그야말로 1타로 식장에 도착한 사람이 되었다.


식장은 아직 장내정리가 진행중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구두로 갈아신으며 어떤 결혼식이 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자 이제 입장하세요" 사회자겸 진행자인 목사님이 이야기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둘째 결혼하던 생각이 났다. 둘째는 결혼식 전에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안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신부가 예민해져서 들러리를 섰던 막내와 큰애가 나중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전해줘서 알게 됐다. 딱 시간 맞춰서 물 흐르듯 입장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하객중에 조금 늦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이 들어갈 때까지 밖으로 못나오던 둘째는 가장 우아하고 감동적일 신부입장전에 이미 속이 타들어갔던 것 같다.


우리 애는 그렇다치고 이번 입장도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신랑이 입장하는데, 특이하게 신랑의 어머니와 함께 등장했다. 아름다운 초록 롱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너무 젊어 며느리를 보는 사람같지 않다. 깎은 밤톨 같은 아들과 팔을 껴고 함께 나온다. 그런 다음 신부의 차례, 나는 이미 안면을 본 신부는 신랑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등장한다. 조금 의아한 장면이다.


그렇게 결혼식이 잘 끝나고, 모두 1층에 있는 바로 내려가라는 주문을 받는다. 결혼식장은 토론토 다운타운이 내려다보이고, CN 타워가 손으로 잡으면 닿을 것같이 바로 옆에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멀리 온타리오 호수가 보이고, 빌딩숲을 조망할 수 있어서 좀 머무르며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그 장소를 정돈해야 했나보다. 직원들이 문을 닫으며 거의 내쫓는 바람에 다른 약속이 잡혀있는가, 쑤군대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리셉션이 있어서 그전에 상차림과 무대를 만들어야 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IMG_1307.jpg 결혼식이 열렸던 호텔 43층에서 바라본 토론토 전망. 왼쪽으로 CN타워와 온타리오 호수가 멀리 보인다.

1층 바에서는 음료를 주문하고 앉아서 담소를 나누게 되어있었다. 결혼식에서 우리는 예전에 토론토 살때 가깝게 지냈던 케이트 부부를 보게 되었다. 신랑의 어머니 주디와 학교 선후배 사이로 초대받았다고 했다. 막내가 2살때 시골로 이사왔는데, 그전까지 함께 교회를 다니며 아이들끼리도 어울리던 성실하고, 겸손한 커플이었다. 중간에 한두번의 만남을 빼곤 거의 20여년의 격차가 있었다. 내가 막내도 함께 왔는데, "힘든 삶을 보내고 있다"라고 짧게 소개했는데 인사를 온 막내에게 "힘들지? 아줌마도 힘들게 살고 있어. 괜찮아질 거야" 하면서 위로를 주었다.


주디는 우리 두 커플을 같은 테이블에 배정을 했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케이트네하고는 그집의 두딸과 우리 애들이 어릴때 친구였고, 주디네는 시골로 간 다음에 그곳에서 만나서 몇년간 두집 아이들이 만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기에 말이다. 우리집은 딸이 세명, 주디네는 아들이 세명, 특별한 인연에다가, 한인이 없는 곳에 갔는데 그 지역의 한인의사가 주디의 남편이어서 많은 도움도 받았다. 막내와 그집의 둘째가 친구였고. 주디네가 토론토로 떠나고 우리는 주디네의 집근처로 이사가서 또 한 10년을 살기도 했다. 케이트는 토론토로 내려오지 않느냐고 살짝 질문한다. 귀가 얇은 나는 토론토로 이사올까,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주디네와 이웃해 살때 그녀의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몇번 얼굴을 뵌적이 있었다. 두분다 생존해계시고, 결혼식에 참석하셨는데 그 당시와 비교해서 너무 노쇠하여 많이 놀랐다. 내가 반백이 다 되었는데 말해 무엇하랴. 잠시 가서 두분 손을 잡고 시골에서 뵌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는 한국식(?) 시부모님의 모습이었는데, 노쇠한 모습을 보니 격세지감이란 것을 이럴 때 말하는가 싶었다.


잠시 우리와 대화를 나누었던 신랑의 아버지는 "나와 큰애는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둘째는 삶을 좀 복잡하게 사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나는 우리같은 추억의 사람을 초대한 것을 보면서 그런 의미로 그의 말을 해석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이번 결혼은 온전히 둘째가 준비한 것이다. 이 호텔 비용까지 말이다. 우리 둘은 그저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고 했다"며 그점에 놀랐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그렇게 독립적으로 키울 수가 있느냐, 부럽다"라고 했다. 우리집 둘째는 형편이 안되어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결혼을 하게 됐기에 말이다.


바에서 직원들이 리셉션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주어서 다시 43층으로 올라갔다. 예식장이던 자리가 레스토랑 스타일로 변모되어 있었다. 호수가 보이는 곳으론 무대가 꾸며져 있고, 가운데 자리에 신랑 신부의 테이블이 있었다. 두면이 모두 창으로 되어있어 잠자러 들어갈 시간의 낮은 해가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선글라스가 생각나는 그 찰나, 옆자리 신사분이 빨간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것도 있다고 해서 보니, 작은 케이스에 신랑신부 이니셜과 날짜가 쓰여있는 분홍 하트 모양 선글라스가 들어있다. 이시간, 햇빛과 선글라스, 그리고 축제 모든 게 하나로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주디가 우리에게 다가와 신랑이 각자에게 보내는 카드가 있다면서 한번 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작은 카드가 있고, 그안에 손으로 쓴 몇줄의 글이 들어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우선은 그 섬세함에, 그리고 우리가 베푼 것보다 더 크게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말이다.

신랑 루카스는 우리가 시골로 간 그해부터 그들이 토론토로 간 2005년까지 8년여간 부모들이 만나고 싶어서 모이기도 했고, 아이들을 놀리고 싶어서 만나기도 했던 그런 관계였다. 그 시간들을 루카스는 아름답게 채색해놓고 있었다.


내게준 카드에는 "웨딩에 와주어서 고맙습니다, 아줌마. 당신들은 내게는 두번째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쓰여있었다. 처음에 내가 너무 감격한 부분은 Second Mom"이라는 단어였다. 맞다. 내가 잘못보았다. "Second Family"라고 쓴 것을 "Second Mom"으로 읽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내게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건 아닌데. 내가 한것이 없는데. 그랬는데 집에와서 다시 읽어보니 "Family"였다. 나는 과대망상인 내가 우습고 부끄러워 속이 간질간질했다. 두번째 가족이라는 말도 이미 과한데, 그런 착각을 했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아침에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떠올렸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나를 주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믿음을 주셨다는 것이, 이유가 없는데 두번째 엄마가 된 것(이건 착각이었지만)과 맞물려 해석이 될듯말듯했다.


루카스 아내는 일본인이다. 일본에서 부모님이 참석하지 못하셔서 시아버지 될분과 함께 웨딩마치를 밟은 그녀. 너무 기뻐서 눈물반 웃음반의 그녀를 보았다. 서로의 사연들을 안은 우리들의 자녀들이 결혼이라는 인생의 대사를 치러나가는 기쁨의 현장을 다녀와서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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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선물들을 많이 받았다. 하나씩 준비할 때의 그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고맙고 기특했다.


두울

2주전에 했던 친구 아들의 결혼식은 신부가 중국인이었다. 중국에서 신부의 여동생 호적을 올릴 수 없어서, 그녀를 위해 이민왔다는 중국인 부모는 큰딸의 결혼에 온갖 정성을 들였음을 보고 감동했었다. 밤새 신부엄마가 만들었다는 디저트 테이블은 예술작품의 전시장이었다. 얇은 색상의 마카롱부터 컵케잌과 이름을 알수 없는 디저트가 딸의 결혼을 축하하며 마음을 다해 만든 그 엄마의 정성을 보여줬다.


그날의 예식은 오래 사귄 친구의 아들이었고, 귀한 초대였다. 왜냐하면 작은 예식이었고, 아들이 허락한 그 몇명의 인원안에 우리 부부가 포함되었으니 말이다. 야외에서 했고, 결혼식 전 신랑 신부와 부모님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예식이었다. 포도주 양조장(winery)의 야외예식은 예식을 마치고 퇴장하는 신랑 신부에게 꽃잎을 뿌려주는 행사도 있었고, 아이들이 쏘아대는 비눗방울 기계에선 수백알의 투명한 포도송이가 하늘로 퍼져올라가 축제분위기를 돋웠다.


야외에서 하기에 햇빛이 따가울 수 있는데, 그럴때 쓰라고 작은 일인용 종이우산을 하나씩 주니, 그것 또한 아이디어가 빛났다. 그 결혼식은 게스트를 위한 이벤트가 많았다. 향수를 만드는 테이블도 있어서, 좋아하는 향을 골라 배합하여 향수병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군데엔 즉석사진기 기계도 설치하여 촬영해서 한장은 신랑신부가 갖고 또 우리에게 줬다. 우리는 신랑 부모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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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어머니가 전날 만들었다는 디저트 테이블. 야외결혼식의 신랑 신부


결혼식 참여를 많이 해보지 않았는데, 9월에 이렇게 두번씩 참석할 기회가 있고보니, 감투를 쓴듯한 기분이다. 젊은이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많이 놀랐다. 감동에 무디어져가는 재미없는 어른으로 말라가는 중에, 정성껏 성장한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샘솟았다. 그들의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증인으로 응원자로 청함을 받아서 기쁘다. 기피하던 지역이던 토론토 다운타운도 정복했고 말이다.


특별히 오랫동안 못만났던 친구들을 만나, 그동안의 사연들을 나눴던 것도 두번의 결혼식에서 이뤄졌다. 시골양반들 출세한 것이 틀림없다. 두 결혼식에 나는 같은 드레스를 입었던 것은 두집에겐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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