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J May 26. 2024

35세, 해고통보와 함께 되찾은 삶

해고 통보와 함께 내 삶을 돌아보는 회고 스토리

음.. 이 스토리는 현재 진행형 이야기이다.

곧,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글을 적어보겠다.


시작 전, 이 스토리는 우여곡절 끝 성공의 이야기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힘듦의 순간 신을 찾아 기도했더니 신이 기도를 들어주시거나, 거절하시거나, 또는 무시하셨다는 결론적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창조한 신을 체험하고 만나게 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족한 점이 많을 수 있다. 왜냐면 나는 아직 인생의 절반조차 살지 못한, 아직 경험하고 체험해야 할 것이 한참 많은 한낱 35세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혼하신 부모님과 각각 9살, 12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들을 둔 장녀이다. K장녀라서 그런지 무언가 대단히 열정을 다해 살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악착같이 살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이뤄내야만 하고 가족의 둥지를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해외에서 졸업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그저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잡코리아를 통해 지원했던 회사 중 나를 불렀던 회사로 '되는대로' 갔다.


 2013년, 파주에 작은 물류회사에서 해외영업을 11개월간 경험하며, 내가 속해있던 사회와는 전혀 다른 사회를 경험했다. 대표의 회사 설립 비하인드 스토리와 내부영업팀과 해외영업팀 간의 견제, 그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에 대한 영역싸움, 영업사원 각자를 개인 사업자로 일하게 하는 이상한 구조, 토요일 강제 골프모임 참석, 고정급여와 인센티브 구조의 불합리성 등..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렇게 입사를 했을까? 생각하지만, 그때의 과정이 오늘날 더욱 단단한 나를 만들어 줬다고 믿는다. 그렇게 회사와 작별을 했다. 이상한 꼬투리를 잡아 직원들에게 화풀이를 하던 당시의 자칭 회장 덕분에 퇴사 후에도 몇 년간 시달렸다. 내가 퇴사한 후 내부에 있던 인원들 사이 횡령 문제가 있어 피바람이 불었다고 들었는데, 당시 전화를 받아 협박 아닌 협박까지 받았던 생각을 하면 당시에 머리가 하얘지던 24살의 내가 떠오른다. 당시 입사 초기에 나를 맡아 디렉팅 해주던 리더는.. 양의 탈을 쓴 악마라고 생각이 된다 아직도. 퇴사 후 손절했지만, 퇴사 직전 나를 디렉팅 해주던 디렉터는 나에게 여러 차례 소개팅을 주선해 주시며, 나를 많이 응원해 주셨다. 번번이 잘 안되긴 했으나, 나에 대하 응원과 격려는 진행형이다.

*이때 처음 제대로 연애를 시작했고, 5번가량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며 밥도 못 먹을 정도로 힘들어하며 살이 자동으로 10킬로 정도 빠졌던 것 같다.


2014년, 회사가 너무 안 맞다고 판단하여 그 후엔 작은 영어 학원에 취직을 했다. 영어책을 읽고 같이 영어로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영어교사로 1년 정도를 일했다. 아이들을 좋아했고, 누군가 가르쳐주고 공감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자체는 즐거웠으나, 영어를 심도 있게 가르치기엔 깊이가 부족한 영어실력과 작은 학원 규모에서는 꿈을 꾸는데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금세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서 당시 많은 대우를 해주었던 원장님을 뒤로하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당시 원장님과는 퇴사 후 종종 얼굴을 봤었고, 이젠 가까운 오빠동생 관계가 되었다.


퇴사 후 나는 10개월 정도 취준을 했다. 난생처음 취준이란 것을 준비하며 인적성 시험 준비도 하고 자소서도 쓰면서 삼성, 현대, CJ.. 등 유명 대기업들에 이력서를 넣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중 국내 제약사인 한미약품의 자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2016년, 결과를 모르는 10개월간의 답답한 시간을 지나, 그래도 알아주는 제약사의 계열사에 취직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했었다. 입사하여 주어지는 업무들을 열심히 했다. 영어를 하니 영어 소통을 해야 하는 해외솔루션의 국내 총판을 맡아 진행했고, 그 후 대표님 직속부서로 발령받아 서비스 기획부터 영업마케팅까지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문제에 봉착했다. 기획자로써의 아이디어는 어디까지 내야 할지, 내부고객(대표님)의 생각을 어떻게 반영해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할지, 그 고민을 하다 보니 나는 내 생각이 아닌, 대표님이 원하는 그림을 찾아내기 위해 그리고 수정하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나를 가르쳐주던 그리고 당시 팀을 이끌었던 내 사수이자 팀장이자 언니인 동료가 회사를 떠난 뒤 새로운 팀장이 왔고, 팀장 개인의 불안이 팀원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가깝게 일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사표를 쓰게 되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배웠고,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었지만, 마침 마케팅을 하며 알게 된 외부 이사님에 의해 이직 제안을 받아 수락하게 되었다. 네임밸류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나, 이직을 결정했다. 고민했던 부분은 연봉에 대한 상승률과 사업비전,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할 나의 디렉터에 대한 신뢰도였다. 이곳을 정리할 때 사표를 제출했는데, 다시 써오라며 사표를 바닥에 던지던 그 팀장님이 아직 기억이 난다. 내가 퇴사한 후 일 년 뒤쯤 다시 연락을 하시어 저녁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입사 당시에 처음 몸담았던 팀에 팀장님과는 나중에 또 인연이 된다. 그분과는 아직도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젠 함께 늙어가며 고민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을 했다.

*이때 정말 친하게 지냈던 3명의 친구들과 남자친구 때문에 홀로 상처받고, 의절했다가 회복하는데 거의 6년이 걸렸다.


2018년, 다음직장에 갔을 때, 나를 이 회사에 보낸 디렉터가 오지 않았다. 나만 남겨두고... 합류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관계가 어그러지진 않았다. 그러나 일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홀로 있었던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회사의 홈페이지 리뉴얼을 했고, 그 후 아모레퍼시픽 출신의 디렉터가 본부로 오시면서 눈물 콧물을 모두 쏟아내는 연단의 시간을 보냈다. 일로 써도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있었으나, 무엇보다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이 왜곡되어 있으니 외부를 보는 시각도 자연히 왜곡되어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며 스스로가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때 당시에 나의 일희일비 반응에 놀라셨을 디렉터님과는 아직도 긴밀히 연락을 하고 있으며, 최근 나의 회복의 계기가 된 온누리 교회를 추천해 주신 형제님이시다.

*당시 결혼을 전제로 1년 정도 만났던 남자가 있었지만 결국 나의 왜곡된 관점과 불안으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다.


2020년, 또, 바로 전 회사에 나를 불렀던 디렉터가 이번엔 진짜라며 다른 회사로 나를 불렀다. 그래서 더 높은 연봉조건과 포지션을 논의하고, 대표님을 사석에서 한번 뵙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금융계에서 오랫동안 몸담으셨던 능력 있는 대표님과 국내 공동대표님 한분, 그리고 홍콩 김앤장 대표 변호사인 공동창업자 남동생까지, 그리고 화려한 인적네트워크와 자본. 그 회사에 몸담고 있을 땐 몰랐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들인지. 당시에 있던 앱 서비스의 리뉴얼 프로젝트를 맡아 리뉴얼을 하고, 국내 시장에 B2B로 먼저 론칭하면서 서비스 기획 > 사업개발 및 영업 > 그리고 마케팅으로 업무를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도 유사한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나의 노력을 몰라주는 대표님. 주로 나와 직접적으로 일하는 디렉터 또는 대표와의 마찰이 있었는데,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생각했느냐에 관점에서가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가 아니면 틀렸다고 피드백을 주는, 그런데 확실히 어떤 방향으로 그려나가야 하는지에 대하 피드백이 없는 그런 구조에 대해 불만이 점점 커져갔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대표는 당연히 더 큰 그림이 있기에 응당 해야 할 피드백을 준 것인데, 내가 받아들이는 시각이 왜곡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초기 마케팅을 하며 유저를 1차 늘려놓고, 후임으로 매니저를 채용하고 그 회사를 떠났다. 제일 마지막 나를 담당해 주시던 부대표님에게 면담을 요청할 때면 어떤 말로 이 친구를 상담해주어야 하나 고민이 많아지시던 부대표님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아직도 긴밀히 연락을 하고 있으며, 부당해고 소식에 노무사를 소개해주시고 나의 업무 능력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기를 당부하셨다.

*당시 소개팅은 정말 많이 한 것 같은데, 제대로 된 케이스가 하나도 없다.


2022년, 내 사업을 아주 짧게 해 보았다. 커피 원두를 판매하는 브랜드인데, 내가 번아웃으로 한창 우울과 조울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을 때 로스팅 원두의 품질을 품평하는 센서리 라이선스를 따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이 과정이 심리적 치료에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원두를 판매해야겠다! 생각했고, 이 좋은 걸 많은 사람이랑 나누고 싶다는 부푼 꿈으로 아는 지인에게 생두를 매입해 로스팅 업체를 통해 로스팅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브랜딩도 아는 언니에게 부탁해 디자인해서 포장하여 온라인 판매하는 사업을 작게 운영해 보았고, 사업은..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깨닫게 된 중요한 경험을 얻었다. 소량 판매로 경쟁제품에 비해 너무 비싼 고퀄리티의 원두를 팔고 있다. 아마 실패의 원인은 가격에 비해 튼튼하지 않은 경험과 스토리의 흐름일 것이다. 암튼, 이 사업은 아직도 유지 중이다.... 가격을 내리면 잘 팔릴까? 포장하는 내 인건비만 쓰면 될까의 고민의 기로에 머물러 있다.

*이때 짧게 연애했던 상대는 심부전이 있는 사람이었다. 언제든 심장이 멈출 수 있다는 불안을 가지고 살아야 했고, 그땐 그게 그리 문제가 된다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 사람도 나의 불안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


같은 해, 8년 전 한미에서 같이 일했던 나의 첫 팀장님이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주셨다. 같이 일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신뢰는 있었고, 더 높은 연봉과 팀장이라는 포지션을 제안하셨다. 문제는 매번 누군가의 제안으로 이직을 해왔는데, 이번에도 실패면 어쩌지 나의 카르마에 대한 고민이 짧게 있었다. 그러나, 이 고민은 뒤로하고 합류를 결심했다. 새롭게 개설된 본부에서 홈페이지 리뉴얼과 서비스 MVP버전의 기획, 그리고 사업개발을 진행하며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역시나 여기서도 대표님의 말에 스스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컨설팅 회사 출신으로써 시장을 엣지 있게 분석하고 사업을 구체적으로 그려 끌어가는 모습에 많은 부분 배운 점도 있다.

그러던 중 결과적으로 현재 해고당한 회사에서 꼭 하고 싶었던 MBA, 연봉, 지분등을 제안하며 월등한 조건으로 합류를 제안했다. 그리고 나는 합류를 결정했다. 당시 나를 끌어주던 디렉터는 현재 회사의 사업모델을 같이 봐주시며 잘 맞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기쁜 맘으로 보내주셨다. 이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엄청 응원해 주시고, 나의 해고로 인해 내가 솔직한 생각을 표출하지 못할까 걱정하신다. 해고 별거 아니니, 원래 캐릭터를 잃지 말라는 위안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나를 해고한 현재 직장은 4번째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현 CTO)가 추천했다.


2023년 11월 첫 입사를 시작으로 전략기획팀을 운영하는 팀장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2월 CMO이자 임원으로 계약하여 전략 본부를 운영하는 것으로 함께 일을 본격화했다. 투자 유치 및 정부과제 유치를 위해 사업모델을 함께 구상하여 나는 회사의 홈페이지 리뉴얼 및 브랜드 리뉴얼을 시작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자체브랜드를 개발하고 첫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을 진행하고 있었다. 일했던 회사 중 가장 얼리 스테이지이고, 작은 규모의 회사였기에 알고 있는 네트워크를 총 동원해 제품의 시장검증, 자체 브랜드 개발 및 브랜딩, 영업 네트워크 구축, 그리고 제품 생산을 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었다.


2024년 4월 28일, 본부 철회 결정과 권고사직 제안을 받았다.

음... 이곳에서 해고를 당하기까지 회고를 해본다.

나의 첫 번째 실수는, 기도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교회도 안 나가던 때라,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고 내 생각대로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채용한 대표와 함께하는 임원들을 믿었다.

두 번째 실수는, 이사나 임원으로 갈 때는 빠르게 채용을 진행해야 한다는 전 디랙터 분들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작은 규모에 예산이 없는 회사라는 생각에 외부를 통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외주화 하여 진행하며 채용을 미뤘다. 그래서 결국 대표가 먼저 채용해 둔 완전 초년생 사원 한 명을 데리고 모든 일들을 진행했다.

세 번째 실수는,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에 매몰되어 조급하게 프로젝트를 끌어간 것이다. 브랜드와 제품의 출시에 대한 리드 타임을 5개월, 론칭일을 7월로 잡고 열심히 달렸다. 내부 연구소와 다투어 가며, 첫 제품에 대한 시급성에 대해 CTO랑 언성을 높여가며 주말까지도 회사를 위한 긍정적 대안보다는 소모적 걱정을 했던 것이 불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네 번째 실수는, 다른 사람들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지적한 것이다. 대표를 포함하여 CTO, COO, 내가 맡은 본부의 막내부터 다른 사람들의 R&R과 역할을 정의해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의 구조에 대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각 본부마다 급하게 진행해야 하는 많은 업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만들어질 회사의 체계를 갖고 이야기하는 내가 싫었을 수도 있다. 주말에 회사 운영 구조와 관련된 책을 읽어가며 대표에게 공유하고 각 본부별 임원들과 중간 관리자, 그리고 실무자가 중요하게 관리해야 하는 일들과 각 역할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리한 내용들을 공유하며 어찌 보면 회사를 위한답시고 심하게 나댔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전략 본부 업무 진행을 위해 컨펌받아야 하는 내용들이 미뤄지면, 내 불안이 더욱 커졌고 그 과정에서 CTO나 대표에게 직접 의견 표출을 하며 문제 제기를 여러 번 했다. 그리고 4개년 사업계획에 대해 그려놓은 업무들을 진행하려면 시니어, 주니어급 2명의 채용이 필요하고, 현재 뽑아놓은 막내 사원의 태도 이슈 때문에 내가 매니징이 불가하다고 그 친구를 타 부서로 데려가거나 정리해야 한다고 의사를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결국, 나는 지난 4월 28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통지는 나오지 않았다. 해고를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설명과 권고사직을 위한 합의 제안을 받았다.


해고 통보를 받기 2주 정도 전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로 새벽 3시 심장이 멈출 것 같은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 119를 불렀다. 그리고 그 주, 뇌검사와 심장검사를 받으며 결과적으론 공황장애 판정을 받아 약을 먹었다. 그리고 그 결과 해고를 통보받게 되니, 머리가 하얘지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제 이 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합의를 진행하는 과정은 마치 첩보 작전 같았다. 회사 출근은 재택근무로 돌렸고, 인수인계와 합의는 옛날 회사 사무실에서 대표와 단둘이 이루어졌으며 이메일 커뮤니케이션과 카톡으로 진행했다. 내부에 남긴 인원들과 철저한 분리가 이루어졌고, 나를 이 회사에 소개한 CTO와 사전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나에게 지금까지도 한통의 연락이 없다는 이 상황이 더욱 화가 나고 괴로웠다.


왜 내가 가장 먼저 와서 일했는데, 왜 내가 가장 먼저 해고되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나는 그저 열심히 정말 열심히 내가 맡은 일을 한 것뿐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에 불안은 더 심해졌고, 혼자 있으면 무슨 일이 날 것 같아서 본가에 머무르며 애꿎은 부모님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임과 더불어 감정 표출을 많이 했다. 나에게 생긴 일은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향후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합의 내용을 정리하고 인수인계도 마쳤다. 대표가 최종 컨펌을 한 내용을 기반으로 사직서를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투자사 검토가 필요하다며 최종 검토 후 합의 내용의 중요 내용들을 모두 삭제하고 2개월치의 급여로 합의하자는 내용으로 메일을 보내왔다. 7번의 직장 경험 중.. 이렇게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고, 또다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때, 나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오랜 시간 떠나 있던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다. 모태에서부터 내가 내 의지로 믿는다고 착각했던 나의 신,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5월 둘째 주 주일 서빙고 온누리 교회에 참석해 '모르겠으니 살려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주보를 열어본 순간, 내적치유학교 리플릿을 보게 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게 치유일 것 같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그리고 치유학교 시작날 변호사를 만나야 하는 기로에서, 하루를 불참하고 중간부터 참석을 하려고 했으나, 치유학교 조장님의 권유와 가족들의 권유로 변호사와의 미팅을 미루고 치유학교에 갔다. 2박 3일간의 프로그램으로 짜여있는 치유학교 강의들은 7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적 상처부터 시작해 > 역기능 가정 > 수치심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 육신의 아버지 > 용서 > 기쁨의 회복의 순서로 강의를 듣고, 기도를 하고, 조원들과 나누는 순서로 진행이 된다.


어릴 때부터 수련회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참석하며 늘 짜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나였지만, 내가 살고자 참여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한 시간 한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또한 먼저 찾아와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기쁨이란 것을 깊이 깨닫게 하셨다.


첫날 기도도 잘 안되고, 말씀도 잘 안 읽혔었는데 나를 직시하고, 깨어진 나의 과거를 뒤로하고 새롭게 나아가야 하는 미래를 생각하니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게 하셨다. 오늘을 사는 것이 천국이라는 말씀이 기억난다. 지금껏 살면서 내일을 예측하고 앞으로 5년 뒤 10년 뒤를 계획하며 치열하게 달려왔는데, 내가 살려면 오늘에 충실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둘째 날 나의 기도제목은 더 이상 회사의 문제 해결이나 향후 나의 미래에 대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을 바로 보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하나님을 바로 보고, 그분을 알아가며, 그분께 뜻을 구하며, 그분의 이끌어가심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 그것이면 내 삶의 모든 문제들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님을 고백하게 하셨다. 프로그램 내내 식사와 풍성한 간식, 그리고 풍성한 나눔 들을 경험하며 공동체에서 꼭 필요한 두 가지 1) 남의 이야기를 판단하지 말 것 2) 절대 비밀을 보장할 것 를 확실하게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 순간 함께해 오셨던 하나님께로 내 시선을 돌렸다.


그 결과로, 지금 내 상황을 바라보는 나는 무언가 겪고, 주님을 경험하고, 이를 공유하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에 감사한다. 그저 나는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 가운데 경험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역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하셨다.


회사의 문제는 아직 진행 중이고, 마법처럼 잘 해결되거나 회복되지 않았다. 심지어 출근명령이 떨어져서 나는 내일 출근해야 한다. 바뀐 사업방향에 대한 설명 없이 업무 리스트가 한가득 메일로 와서 상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전처럼 화가 나지도 출근이 두렵지도 않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이 왜 이지경으로 치닫았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잘못된 해결 방법에 대해 누군가는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되는구나 경험했으니 된 거지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가운데서 이 회사의 대표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시며, 각각에게 연단하시는 부분이 다르시며 그 뜻은 사람이 가늠치 못함을 믿는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결과가 사람이 보기에 좋던 나쁘던, 이를 들어 더 크게 사용하실 그분을 의지하니 마음에 기쁨이 샘솓고, 감사가 넘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나와 그들을 위해 좋은지는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떠나는 것이 답일까? 잘잘못을 따져 다시는 사람 채용과 해고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불편함을 주는 것이 답일까? 나도 분명 잘못한 부분들이 있을 테니, 나 스스로의 반성으로써 이과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맞을까? 그게 스스로 돌아봤을 때도 후회가 덜 남을까?


이 스토리에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결과에 대해 호언장담치 않고, 그냥 이 상황을 경험해 보는 것, 그리고 그분께 뜻을 구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이 일로 인해 매일 지옥 같았던 나의 마음이 평안을 되찾았고, 이혼 후 서먹했던 엄마 아빠가 나와 2주간 시간을 함께해 주시며 어떤 모습이던 수용해 주시는 부모님의 사랑과 가정의 회복을 경험하게 하셨고, 나 혼자의 의지로 경견히 잘살기 바라는 것은 교만이며, 죄악과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건강한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셨다.


하나님은 늘 사랑으로 먼저 다가오시는 분이시며, 어릴 적부터 했던 우리의 기도들 중 하나도 잊지 않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욥과 요셉이 결과적으로 많은 복을 받기 전,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고백할 정도의 길고 험한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견디게 하셨듯, 앞으로 닥칠 시련과 고난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경험하는 것이 더 복되다고 느끼게 하시는 요즘이다.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스토리를 써나가실지 기대함으로 이 글을 마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글이 전해진다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온누리 교회 내적 치유학교를 추천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수용했더니 불안이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