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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진 Oct 30. 2019

아버지가 스펀지케이크를
좋아한 이유

2015년 첫날. 캐럴이 거리에 울려 퍼지던 성탄절로부터 일주일이 더 지난 날. 96년 쥐띠들이 법적으로 ‘애 딱지’를 떼어내는 날은 주민등록증에 봉인된 자유가 깨어나는 날이었다. 하지만 내 지갑에는 자유가 없었다. 지갑에는 만 원짜리 지폐 몇 장, 선불 충전식 교통 카드, 누차 구겨지고 펴지다 끝내 쪼글쪼글해진 수능 수험표가 있었다. 거기 들어 있지 않은 건 성인이 된 기념으로 술이나 담배를 맘껏 구매하겠다는 일련의 소망이었다. ‘청불’ 영화를 대형 스크린으로 당당히 보는 일도 큰 흥밋거리는 못 되었다. 


나는 우리 집 장롱 안 건강보험증에서 베껴 적은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를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으로 성인식을 대신했다. 당시 미성년자가 폭력성 있는 게임을 하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동의를 거쳐도 ‘성인 버전’과 ‘학생 버전’이 다를 때가 있었다. 게임 속에서마저 애 취급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품은 채 법정대리인을 자처했다. 몇 자리 주민등록번호만 외우면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저 자신의 법정대리인 흉내를 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람의 뇌는 한 번에 일곱 자리가 넘어서는 숫자를 쉽게 못 외운다는, 그래서 여덟 자리 전화번호를 기억하기가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잘은 모르지만 그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연구 대상에 넣지 못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중학교 3학년 때 배운 근의 공식은 금방 까먹을지언정 긴 숫자의 주민등록번호 조합만큼은 어떻게든 기억하고 있던 내 머리 속의 해마는 은근히 쓸모가 있었다. 가족들 생일 날짜를 떠올릴 때만큼은 달력에서 빨간색 동그라미를 찾는 수고를 덜었던 것이다.


음력으로 쇠어서 매년 생신 날짜가 바뀌는 엄마와 달리 아빠의 생일은 정해진 날짜에 딱 맞춰 돌아왔다. 아빠의 생일 케이크는 집에서 신호등을 한 번 건너서 있는 조그만 제과점에서 파는 스펀지 케이크였다. 별 다른 말이 없으면 매양 그랬다. 어린 나는 그 밍밍하고 텁텁한 빵 덩어리를 아빠가 왜 그리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는 생일날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케이크를 달콤한 생크림 하나 없이 먹어야 하는 것에 심술이 났던 걸 테다.


머리가 조금 커지고 나서는, 아빠가 스펀지 케이크를 유독 좋아하시는 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가계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가 하는 답안을 내놓았다. 아쉽게도 정답은 아니었다. 아빠는 그저 담백한 케이크 빵 맛을 그대로 즐기는 사나이셨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도 빵 본연의 맛이 좋지 않다면 웬만 해선 손을 대지 않으셨다. 진득한 크림 또는 토핑이 듬뿍 올려진 빵들은 언제나 누나나 형, 그리고 군것질을 좋아하는 내 몫이었다.


“언제나 기본이 중요한 법이지. 자기가 기본으로 맡은 일, 그거 하나 잘하는 사람이면 어딜 가서 뭘 하든 잘해낼 수 있어.”


지겨울 정도로 자식들에게 하신 말씀은 곧고 우직하게 살아온 당신의 인생이 증명하고 있었다. 어린 나는 아빠를 향한 존경심에서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집에서는 기본으로 지켜야 할 것들, 학생이라면 기본으로 해야 할 공부, 일할 때는 기본으로 능통해야 할 업무 등등.


지금에야 돌아보는 거지만, 어지간히 재미없는 인간을 내리 빚어오고 있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에 기본을 지킬 줄 아는 모범생을 구축(構築)한 시기가 교복을 입었을 때라면, 기본밖에 모르는 빡빡한 헛똑똑이를 구축(驅逐)한 시기는 군복을 입었을 때다. 열 평 남짓한 병영 도서관에서 처음 집은 책 표지에는 “잡담이 능력이 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제목부터 흥미를 유발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덜 생산적이고 기본적이지 못한 것들을 그제야 달리 바라볼 수 있었다.


인생은 다분히 양면적이라 어느 때나 일상 한편에는 굵직하고 중요한 일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쓸데 없고 사소한 일이 있었다. 기본이라는 엔진은 굵직하고 중요한 일을 힘껏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기관이었다. 어릴 적 아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거기에 순종한 나도 헛짓거리를 한 게 아니었다.


다만 책을 통해서 배운 건 잡담이 그 본디 말뜻처럼 쓸데없는 녀석이면서도 일상을 부드러이 작동하게 해주는 윤활유이기도 하다는 것. 우리는 그런 쓸모없는 녀석을 중간중간 칠해야만 굵직한 일을 해낼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하고도 민감한 자동차였다.

굵직하고 중요한, 그러면서 유용한 일에 얼마만큼 힘을 쏟을지, 혹은 별 의미 없고 기본과는 떨어져 있어도 일상을 부드럽게 굴러가게 해주는 무용한 일에 얼마만큼 힘을 쏟을지 생각해 본다. 누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내 마음이고 당신 마음이다. 모범 답안이 있다면 양쪽에 힘을 적당히 분배한 모습이다. 한데 그 적당한 비율이라는 것이 개인마다, 경우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니 끝내 스스로가 풀어야 할 문제다.


스펀지 케이크처럼 살든, 생크림 케이크처럼 살든 우리의 삶이 맛있게, 그저 멋있게 구워지기를.



-  <오늘도 한껏 무용하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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