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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진 Oct 15. 2022

과거는 다시 쓸 수 있다

세상 어딘가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선택한 또 다른 내가 있다고 상상해 보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흔히 말하는 다중우주 개념인데 물리학을 딱 교양 수준으로만 좋아하는 나는 깊이 있게 파고들지는 못할 주제다. 허나 흥미를 자극하는 맛은 충분치 않은가. 당장 오늘 아침 계란을 삶아 먹느라 지하철을 놓친 내가 만약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면 출근을 늦지 않았을 테고, 상사에게 들볶일 일도 없었을 테고, 스트레스 해소용 야식으로 불닭발을 시키지 않았을 테고, 야밤에 화장실에서 곤욕을 치르는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 봐. x나 용감해질 수 있어.”     


영화 <올드보이>에서 철웅(오달수 분)이 오대수(최민식 분)에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때 만약’이라는 벽 뒤에 숨기만 한다면 인간은 한도 끝도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그 미완의 시나리오를 우주 어딘가에, 어쩌면 우주 밖 어딘가에 또 다른 나는 실현해내고 있겠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있다 한들 나는 그와 소통할 수도 없고 그의 결실을 뺏어올 수도 없다. 상상이라는 웜홀의 구멍으로 잠깐 훔쳐보는 게 고작, 너저분한 일상에 달라지는 건 없다.     



이따금 부잣집에서 사랑받고 자랐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씁쓸히 웃었다. 노력으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더는 심장이 뛰지 않는 나이, 인생이란 어쩌면 확정된 길을 밟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는 게 현실이다. 노력 뒤에 따라붙는 좌절은 비 오고 마르는 땅처럼, 그걸 수차례 반복해서 결국은 굳어버린 땅처럼 심장을 딱딱하게 만든다. 쫄지 말라고, 발이 쇠사슬에 묶인 새끼 코끼리가 몸이 커서도 경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거라곤 하지만, 여기서 얼마나 더 몸집이 커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가 도무지 없다.

     

집안 경제 수준이나 주어진 환경이 문제라면 오히려 다행일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슬픔을 조금 덜어낼 수 있는 값싼 위로의 말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기 삶을 일부나마 설계할 여지가 있을 때 내려버린 선택은 퍽 설익은 것임에도 치러야 할 할부금을 누가 대신 내주지 않는다. 살면서 조금씩 갚아나가는데도 원금은 도통 줄어들 생각이 없다.     


아마 열아홉, 담임선생님 앞으로 내민 수시 원서에는 여섯 장 중 두 장이 비어있었다. 적혀있는 건 부산교대 한 장, 부산 거점 국립대 세 장. 전교 1등이 자기 반에 있다고 자랑하던 담임으로서는 참으로 속 터지는 일이었을 게다. 종교적인 이유로 고향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다는 고집은 알겠으나 왜 하필 그 성적으로 부산에 남겠다는 건지. 그즈음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로부터는 안 쓸 내신 등급이면 양보나 하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꼬질꼬질한 영웅보다는 섹시한 악당이 되고프다는 말을 요즘에야 달고 살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지독히도 빌런이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지고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다 엄마한테 지나가듯 말을 흘렸다.

“두 장 남은 거 아깝잖아... 안 가긴 할 건데, 위쪽 대학으로 써 놓기만 할까?”

부산에 남겠다는 게 분명 스스로의 결단이었음에도 명문대 합격이라는 타이틀은 내심 놓지 못했나 보다. 가지 못한 게 아니라, 붙었는데도 더 소중한 걸 위해 안 간 거라는 으스댐을 기어코 하고 싶었나 보다.     


지난날을 톺아보면, ‘그때 만약’이라는 벽을 퍽 많이도 세웠다.

‘그때 만약 종교의 멍에를 빨리 떼어냈더라면’

‘그때 만약 SKY대학을 지원했더라면’

‘그때 만약 합격한 교대를 갔더라면’

...

역사에 만약을 가정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가정으로부터 파생되는 무수한 사건들을 완벽히 예측할 수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타임머신이 없는 이상 개입할 방도가 없기에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미래는 현재를 통해 써나갈 수 있다 해도 과거는 이미 써진 것이라는 생각에 딱히 소득은 없다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왕 영양가 없는 일인 걸 인정하는 마당에 약간의 비겁함을 더해 볼까 한다. 니체를 만나지 않은 스무 살의 내가 종교를 버리고서도 신이 죽었다는 허무한 세상에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군대에서 유연하게 처세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상태로 서울의 험난한 대학 생활을 해낼 수 있었을까? 배우는 즐거움을 알지 못한 채로 교사가 되었다면 기껏해야 남의 말이나 옮기는 앵무새가 고작이지 않았을까? 펜싱과 양궁과 유기동물 봉사활동을 하며 누구보다 자신 있게 삶을 앞으로 내던지는 지금의 모습은 이제까지의 길을 밟았기에 비로소 감당할 수 있는 결실이 아니었을까? ‘지나고 보니 사람 일은 모를 일이더라’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자세는 후회와 회한으로 점철된 과거에 정당성을 부여할 기회를 열어준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다. 민족과 공동체의 역사는 현대의 필요와 가치관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립되어 새롭게 구성된다는 말이다. 나라는 인간 개인의 역사라고 뭐 다를까. 이제 내 과거는 그 자체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루하루의 끝에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어 다시 조립될 뿐이다. 내게 남은 임무는 지난날을 덧칠할 붓을 들고 오늘을 즐겁게 그려내는 일이다. 지금, 여기, 나에 오롯이 집중하는 인간에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노릇이니 어쩌면 타임머신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과거는 다시 쓸 수 있다.’

이는 내게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보다도 거룩한 울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x나 용감하게 살다가 언젠가 말할 테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나는 그때 그 상황에서 기꺼이 그 선택을 다시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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