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달아나고 싶었던 두 여자; 1화
때는 2020년 10월의 어느 날. 서울살이에 지친 두 여자에게 남해 시골집에서 살아보라는 제안이 왔다.
남해 시골집의 진짜 집주인은 50대 중년 아저씨. 그의 유년기와 함께한 시골집은 어느새 세월이 흘러 가족 모두가 떠나고 그에게 유산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그 역시 남해를 떠난 지 오래였고 자신의 추억이 묻은 이 집을 팔아버릴 수도, 방치할 수도 없어 무상임대를 조건으로 집을 고치며 살아갈 지원자를 모집했던 것.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지원자 모집 영상은 때마침 서울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한 젊은이, 보에게 닿았다.
보는 시골집 당첨 소식에 편도 6시간의 남해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제가 도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서요. 앞으로 10년은 남해에 올 일이 없네요. 맘대로 고치고 사세요!
호탕한 남해 집주인과 작성한 계약서의 임대료는 0원. 보는 이 특별한 서류를 안고 위풍당당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았다는 기쁨과 감사함, 그리고 누군가의 추억의 장소를 멋있게 살려보리라는 묘한 사명감을 안고서.
지수야. 같이 남해 집 보러 가자.
들뜬 보에 비해, 유튜브 홍보 영상에서 확인한 시골집의 황폐함에 이미 충격을 받았던 나는 좀처럼 그 집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로망, 지겨운 도시 생활.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행복의 길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시골집을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사람이 살았던 곳인데, 그렇게 나쁘진 않을거야. 행복회로를 돌리며 남해로 출발했다.
차로 꽉 막힌 서울, 경기도를 빠져나와 수 많은 물류창고와 공장을 지나 호남선에 들어서자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그래, 정말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몰라!
보… 미안한데, 난 못 들어가겠어.
남해에 도착하자마자 내 행복회로는 무너졌다. 시골집의 실물은 내 생각보다 더 심각했기 때문이더. 오랜 시간 방치된 사실상 폐가. 이대로 두면 이 집은 곧 자연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지. 이대로는 절대 이 집에서 살 수 없는거였어. 왜 집주인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집을 내놓았는지 이해가 되는 것이다.
산을 끼고 있는 남해 집 마당에 서서, 한참 넋이 나간 채 집을 바라보았다. 산에는 대나무가 가득했다. 파스스스스스. 대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음산하게 들렸다.
이렇게 더 있다간 그나마 남아있던 작은 용기마저 사라질 것 같아, 날이 더 저물기 전에 용기를 내야만 했다.
남해 시골집은 본채와 별채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별채는 사실상 구제불가였다. 그나마 본채가 최근까지 사람의 손이 닿았던 것 같았다.
용기를 내 얼기설기 열려있는 알루미늄 샤시 사이로 본채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나무 마루는 삐그덕 대고 모서리 곳곳에는 거미줄이 널려있으며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들이 바닥 곳곳에 흩어져있었다. 안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큰방 안에는 재활용하기 어려워 보이는 장롱 하나가 한쪽 문이 덜렁 열린 채 뻘쭘하게 남아있었다.
언제든지 인간보다 작은 생명체들이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연과 인공 그 사이의 집. 겨우 이 정도 살펴보고서도 폐가 공포체험이라도 한 듯 진이 빠지고, 정말 손바닥 뒤집듯 서울 집이 그리워졌다.
다 본 것 같은데… 관광 좀 하고 집에 갈까?
도시 촌년과 시골집의 어색하고 불편한 첫 만남을 뒤로하고, 처음부터 남해에 관광 목적으로 온 사람처럼 남해 바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고쳐볼지 계획을 세워보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남해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 곳에 별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다시 욕심이 나는 것이다.
집의 실제를 보고도 여전히 꿈을 꾸는 어딘가 미쳐있는 보. 충격과 공포를 망각하고 욕심이 샘솟는 나. 하지만 우리가 이 폐가 시골집을 정말 고칠 수 있을까?
*교훈: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건 생각없이 추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