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PTSD에 대하여
시니어리티. 승무원과 같은 특정 직군에서는 강력한 권위 소위 똥군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듯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보다 성숙하고 현명한 선배, 리더, 혹은 10년 이상의 연차를 가진 노련한 팀원을 의미하는 듯하다.
항상 시작단계의 스타트업을 경험해 온 불나방 같은 나 역시, 그러한 시니어리티를 겸비한 멋진 선배를 늘 선망하고 갈구해 왔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10년 차에 가까워졌고, 많은 회사와 리더들을 만나 온 지금. 수년 전 내가 상상했던 시니어는 허상이었음을, 백번 양보해서 (내가 운이 없었다는 가정하에) 그들은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였음을 세상에 고하고자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은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아왔다. 내 맘도 몰라주는 부모님, 애정 없는 학교 선생님, 나의 미래에 관심 없는 입시 학원 선생님, 나의 존재조차 모르는 학과 교수님, 도움은 커녕 숟가락 얹으려는 고학번 선배님…
직장에서의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떤 자리에 오르면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역할과 태도가 있거늘.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수행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대다수는 그저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을 뿐,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 것이 그들의 최선인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인생 선배님이라는 프레임은 나와 우리의 제멋대로의 기대일지도 모른다. 모든 이는 제코가 석자. 한번 경험해 본 문제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는 요즘 세상. 시니어리티는 진정 유니콘이 아닐까?
혹시 지금, “나는 아직 주니어라서 우리 회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시니어가 와주셨음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 미안하지만 그 문제는 당신이 해결하는 것이 빠르다. 그리하여 당신이 시니어가 되는 것이 빠르다.
왜냐하면, 연차가 높아질수록 직장인 PTSD를 경험할 가능성에 높고 이로 인해 에너지 레벨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순수한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자신의 업에 최선을 다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는 대부분 주니어 시기 일텐데,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건강한 실패, 의미 있는 성공, 동료와의 편안한 유대관계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오히려 트라우마를 남길만한 강력한 시련과 상처를 경험하는데, 그것을 한번이라도 경험한다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가기는 힘들다.
누구나 연차가 10년에 넘어가면, 직장인의 한계에 대해 여실히 자각한다. 아무리 성과를 내어도 이 회사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 일을 열심히 하든 안 하든 나의 월급은 변함이 없다는 것, 내가 일군 것을 다른 이가 가로채거나, 번아웃이 와서 건강과 생활이 망가졌거나… 어느 순간부터는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더 이상 즐거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나 역시 첫 회사에서의 백지 같았던 순수한 열정은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때로는 그것이 그립지만, 돌아갈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니어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반대로 자신이 시니어의 연차에 들어섰다면 어떤 조직을 만나야 할까?
그의 성공 경험이 조직이 원하는 경험과 일치하는지 확인하자. 나의 노하우를 전수받고자 하는 개인이나 조직을 만나자.
단순히 연차가 높아서, 대기업을 나와서, 해외근무경험이 있어서, 리더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광범위한 조직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면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뿐. 시니어리티를 갈구할수록 스스로가 만든 허상에 쉬이 속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또한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직장인들이여. 건강한 직장 생활과 나의 소중한 인생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봅시다! (급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