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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헌 May 09. 2021

나의 정의가 너의 정의보다 옳다

정의의 기준을 찾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을 쓴 카렐 차페크는 말한다. '현대 사회의 갈등은 진실과 진실의 대립이며 이상과 또 다른 이상의 대립이다'. 각자가 진실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대립한다는 것이다.

고상한 진실과 사악하고 이기적인 잘못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하나의 진실이 그에 못지않게 인간적인 다른 진실과 대립하는 것, 이상이 다른 이상과, 긍정적인 가치가 역시나 긍정적인 다른 가치와 대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문명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라고 본다.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공정과 정의'를 두고 끝없이 설왕설래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논쟁이 어떠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등을 돌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면 모두 맞는 말이었으니까. 나름의 근거들이 존재했다. 수많은 '진실' 속에서 경중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였다.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상대주의의 모순에 빠진 느낌이었다. 


'정의의 적은 불의가 아니라 '또 다른 정의'라는 세간의 냉소에 적절히 응답할 정의관을 우리는 확보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우연히 서점에서 이 문장을 봤다. 김도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이 쓰신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일까> 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헌법'을 기준으로 정의를 살핀다. 정의의 기준을 헌법으로 삼는 순간, '상위 정의'가 생긴다. 


여기서 이 책을 단순 요약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기 쉽지 않을 뿐더러, 맥락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다. 대신 개인적으로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을 재구성하여 소개하려 한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정독하길 추천드린다.



1. 인간은 대체로 '공정하게' 행동한다


(1) 인간은 여느 상황이라면 대체로 공정성의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 

(2) 그런데 인간에게 내장되어 있는 이 공정성이나 정의의 감각이 현실에서 꾸준히 발현되려면 일정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3) 다른 사람들이 모두 또는 대부분 그렇게 한다면 나도 그리 하겠다는, 즉 나만 '바보 또는 호구'가 되기는 싫다는 상호성 조건과 무임승차 행위를 응징하는 조건이 최소한 갖춰져야 한다.


2. 노력하여 얻은 성취기 때문에 공정하다?


(1) 우리는 '성취'를 우리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2)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성취'는 공정하고 정당하다 여긴다.

(3) 롤즈는 재능과 노력 차이로 생겨난 결과의 차이는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에게 '우연히 주어진 것'이기 때문. 미술적 재능이 뛰어난 이가 있다고 하자. 그가 가진 재능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며 또 '미술적 재능'을 높이 쳐주는 사회에 '우연히' 살게 된 것이므로 이를 개인의 성취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4) 다만 '우리가 성숙한 이후에 닦은 기량과 능력에 대해서까지 마땅한 응분자격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5) 응분 원칙의 타당성은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이 구현되는 정도에 따라서 인정된다. 

(6) '공정한 기회균등'이란 단순히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구나 실질적으로 그 기회에 접근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누군가 가난하여 어떤 기회에 도달하는 게 상대적으로 어렵다면 그건 '공정한 기회균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7) 응분 원칙이 정당하게 차등대우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는 하지만, 누군가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로 전락시키는 원칙은 아니다. 

(8)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방어해주는 또 다른 정의 원칙들이 있다. 이를 테면 기본적 필요의 원칙, 평등 원칙,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 등이 있다.


3.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적 필요 원칙


(1) 기본적 필요 원칙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만한 역량 증진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기본적 필요 원칙을 풍부하고 폭넓게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2) 빈곤을 물질적 자원의 결핍뿐만 아니라 비물질적 자원이나 비금전적 자원의 결핍,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역량의 결핍으로도 이해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본적 기회들도 기본적 필요 원칙에 포함시키게 된다.

(3) 기본적 필요 원칙은 '가장 열악한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필요를 우선시하라'는 요청과 '가능한 다수의 필요를 충족하여 필요충족도의 불평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자원을 분배하라'는 요청으로 집약된다.


4. 선택의 자유가 최우선?


(1) 선택의 자유가 작동하려면 "독점 방지와 공정한 거래의 유지", "공정한 경쟁질서"와 같은 공정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2) 선택의 자유 원칙은 최고의 정의 원칙은 아니어서 "사회적 약자 보호, 실질적 평등, 경제 정의"와 같은 여타의 분배 원칙들과 충돌할 때 때로는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3) 충분한 선택 배경(충분히 좋은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의 '자발적 선택'은 자율적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성매매로 내몰린 여성들에게 단순히 '자발적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5. 더 큰 이익, 대의를 위한 불평등은 정당한가?


(1) 불평등의 결과로 생겨난 이득 중 상당 부분이 불평등의 비용을 실제로 짊어지는 사회 구성원들의 처지 개선에 실제로 투입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될 때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있다.

(2) 불평등의 결과로 효율과 생산성이 증가한 경우에는 혜택의 분배도 중요하지만 비용의 분담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3) '노동유연성'의 결과로 생산성이 증가하더라도 그 비용과 부담을 고스란히 노동자가 짊어진다면 부당하다. 불평등으로 인한 혜택의 공정한 분배만큼, 그 비용의 공정한 부담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6. 왜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는가? 인간의 존엄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1) 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에 모두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인간의 존엄성은 '자율성'에서 기인한다.

(3) 이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즉 모든 사람이 똑같은 정도로 가지고 있는 자연적 특성이란 없지 않는가 하는 반론이다. 자율적으로 사고 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치매 환자는 존엄성이 없는가? 

(4) 롤스는 이에 대해 '영역 속성' 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5) 어떤 원 안에 있는 점들은 '원 안에 있다'는 영역 속성을 지닌다. 그 어떤 점도 다른 점보다 '더' 혹은 '덜' 내부에 있지 않다.

(6) 이런 논변의 방식을 택하면 지적 능력, 도덕적 능력, 자율성 능력, 공감능력 등에서 개인 차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인정하되, 인간의 공통된 능력들의 최저한 임계 수준을 충족하는 개인들은 모두, 마치 원 내부의 점들처럼 인간을 규정하는 영역 속성을 똑같이 가지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7) 이때 인간 존엄성과 근원적 평등의 토대로 중요한 것은 그런 능력을 타고난다는 것, 또는 그런 능력을 향한 잠재력을 가진다는 것이지 능력을 실제로 충분히 실현하고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8) 인간적 능력들을 잠재력을 측면에서 평가한다는 것은 그 능력들이 서서히 펼쳐져서 발현되는 과정, 사고나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발현에 장애가 생기는 과정, 노령화로 능력 발현이 쇠퇴해가는 과정에 주목한다는 뜻이다.

(9) 이 과정들은 인간 모두에게 공통되게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인간의 공통 능력들을 실제로 발휘하거나 행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 존재는 동등하게 공통된 영역 속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10) 따라서 매우 심각한 중증 발달장애인, 영아, 코마 상태에 빠진 사람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인식능력이 심각하게 쇠퇴한 사람들도 인간 존엄성을 보유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7. 경기장 평평하게 만들기


(1) 기회균등의 원리는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기'라는 공정성의 이상을 근본으로 삼는다. 

(2) 공정성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절차적 공정성, 배경의 공정성, 결과 독식 방지의 공정성이 그것이다. 승자 독식은 필연적으로 경기장을 기울어지게 만든다.

(3 높이 평가되는 직업이나 직위, 사회적 역할, 재화의 획득으로 가는 경로가 되도록 다양하게 존재해야 한다.

(4)경로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병목이 사회 전반의 기회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면, 그런 병목들을 넓히거나 없애야 한다.


8. 꼭 경주를 해야 하는가?


(1) 기회 균등의 운리를 말할 때 흔히들 '경주'를 예로 든다.

(2) 누군가 결승선에 가깝거나 멀어선 안 되고, 무거운 추를 달고 뛰거나 발에 자갈을 갈고 달려서도 안 된다.

(3) 혹은 '실질적 평등'을 위해 출발선을 일부 조정하기도 한다.

(4) 하지만, 인생이 하나의 결승점을 두고 달리는 경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5) 상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달릴 수 있어야 하고, 또 평가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수많은 경기장에서 수많은 우승자가 나와야 한다.


9. 대한민국은 행복한가?


(1)  2019 UN 산하기구 지속간으발전해법네트워크 <세계 행복 보고서>  우리나라는 156개국 중 종합 54위

(2)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선택하는 자유 정도에 만족하느냐"는 '인생 선택 자유도' 항목 지표에서 144위,

(3)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이 절실할 때 믿고 의지할 친지가 있느냐'는 사회관계 항목 지표에서 101위

(4) "하루에 얼마나 웃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는가" 하는 긍정적 감정 상태 항목 지표에서 91위.

(5) 이는 가정환경과 출신학교에 의해 인생의 큰 부분이 결정되고, 대학 입학과 취업에서부터 선택의 자유를 거의 박탈당한 채로 인생 경로가 결정되기 때문일 수도.

(6) 인생 전망의 불안정성도 우리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7)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하여 경쟁이 치열하고, 설령 취업을 했다손 치더라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른바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변화'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8) 인생 전망에 대한 이러한 불안과 공포가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한, 우리는 즐거운 감정을 누리기 어렵고 진정으로 소망하는 인생 계획을 실천해나가기도 어렵다.


10. 사람은 언제 행복한가?


(1)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 수립된 합리적인 인생 계획이 꽤 성공적으로 실현되어 중요한 인생 목적이 성취되는 과정에 있을 때,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충분히 믿을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행복하다.

(2)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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