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헌 May 18. 2021

[작문] 손바닥 소설 <AI 채용의 비밀>

* 황석식 소설가님의 <개와는 같이 살 수 없다>에서 영감을 받아 쓴 초단편 소설입니다. 


<AI 채용의 비밀>  

   

인국공 사태로 취준생들의 불만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번 기회에 불합리한 채용 과정을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왔다. 학생들은 시위를 벌였다. 조금씩 요구하는 바가 달랐다. ‘지역인재 전형은 역차별이다’라고 외치는 곳도,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라’라고 목소리를 내는 곳도 있었다. 이런 사태에 A 대기업은 편향성을 없애기 위해 정성적 요소를 없애고 정량적 요소로만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시험을 보고 성적을 기준으로 채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각종 언론에서 ‘사다리 걷어차기’ 전형이라며 비판을 했다. 회사가 어떤 선택을 해도 잡음은 끊기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업계 최고인 S 방송사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최첨단 AI기술을 도입하여 채용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들은 복잡한 전형 절차를 한 단계로 줄였다. 방식은 간단했다. 공채 기간에 본사 앞에 설치된 리프트에 한 명씩 입장한다. 리프트가 위로 움직이면 합격, 움직이지 않으면 불합격이다. 리프트 안에 설치된 생체 감지 AI 카메라가 지원자를 스캔하고 분석하여 합불을 결정한다. 이런 S의 결정에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최근 국내 저명 학술지 N에 'AI는 일정한 편향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에 S는 최근 이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텐트하우스> 수익 전부를 사용했으며, 이 생체 감지 AI 카메라는 기존의 그것보다 몇 단계는 발전한 획기적인 모델이라고 발표했다. 

     

S의 공채가 시작되자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지원자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AI가 여성보다는 남성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시점에서 AI 채용을 도입한 S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성 취준생들 사이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남성 지원자들은 기대를 안고 리프트 앞으로 모였다. 지원자 중에는 내로라하는 스펙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20대 초반에 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젊은 영화감독도, 4개 국어 능통자에 해외 명문대 출신도 있었다. 하지만 공채가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도 리프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즉, 아무도 AI 생체인식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화가 난 지원자들은 급기야 아무도 리프트를 타지 못하게 막았다. 빌어먹을 AI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그때 키가 2M가 넘고 온몸이 근육질인 우락부락한 사내가 리프트 앞으로 다가섰다. ‘잠깐만 비켜주시죠?’. 그는 점잖은 말투로 지원자들의 양해를 구했다. 리프트를 막아선 이들은 눈도 못 마주치며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어차피 리프트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까. 그런데, 그가 리프트에 올라서자 카메라가 그를 잠시 스캔하더니 리프트가 위로 움직였다.  

   

지원자들은 그에 대해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정보를 모은 그들은 한 가지 결론을 냈다. ‘리프트를 움직일 열쇠는 강인함이다’. 방송 일이 고되니 체력이나 강인함을 AI가 보는 것이라 그들은 생각했다. 지원자들은 운동을 시작했다. 헬스를 하거나 복싱을 배웠다. 리프트 앞에서 결투를 벌이기도 했다. 가장 강한 자가 리프트에 올라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프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그 남자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다. 지방대학 출신에, 심지어 트랜스젠더라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원자들은 S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역차별이다, 결국 S도 피씨충이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뭐니 하면서 약자를 뽑는 게 웃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으로 채용을 안 하는 기업은 앞날이 뻔하다.’ 등 그들은 이제껏 쌓아두었던 분노를 터트렸다.


이런 소요가 점차 심각해지자 저만치서 S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원자들은 주위에 떨어진 돌이나 쓰레기를 주워 그를 향해 달려갔다. 옆을 지나가던 J는 이 광경을 우연히 봤다. J 역시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는 PD 지망생이었다. J는 K 방송국에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그녀는 S 입사는 진작에 포기했었다. 내로라하는 고스펙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기업이기도 했고, 최근 리프트를 타기 위해서는 ‘강인해야 한다’는 소식을 그녀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자들이 우르르 S 사장에게 몰려가면서 리프트 앞은 텅 비게 되었고 단순 호기심에 그녀는 리프트에 발을 올렸다. ‘위이잉’ 리프트는 소리를 내며 위로 움직였다.   

  

사장에게 달려가던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보았다. 그녀를 아는 누군가가 그녀 역시 지방대학 출신이라 밝혔다. 지원자들은 더욱 분노하여 사장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어이구 지방대에 여자면 프리패스인가 보네. 이 새끼야.” 사장은 경호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지원자들을 진정시키고 목을 다듬고 말했다. 


“저도 AI가 어떤 기준으로 채용을 하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대외비이다만, 내부 관계자들은 ‘창의성과 온화함’ 이 두 가지가 핵심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 않습니까? 예전 같은 권위적인 리더쉽은 명을 다했습니다. 갑질 수치가 낮고 얼마나 온화하게 팀원들과 어울리는지, 소통은 얼마나 잘하는지, 이런 걸 AI가 본다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방대든 명문대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어요.” 사장은 이렇게 말하며 지원자들을 진정시켰다. “근데….” 사장은 돌아서다가 걸음을 멈췄다. “우리 방송국 입사를 원하는 분 중에는 그런 분들이 별로 없었나 봅니다.” 사장은 우락부락한 그들의 몸을 흘깃 보며 말했다.


end

작가의 이전글 나의 정의가 너의 정의보다 옳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