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할머니"와 "돌봄로봇 토키"의 이야기
2025년 1월
SBS 뉴스입니다. 지난 17일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한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화재가 시작된 곳으로 보이는 방 화장실에서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경찰은 시체가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 ….
2024년 11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토키입니다. 그냥 ‘토끼야’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할머니는 항상 저를 그렇게 부르시거든요. 저는 돌봄 로봇입니다. 물론 보시다시피 최신식 모델은 아닙니다. 2020년에 생산된 1세대 돌봄 로봇이에요. 최신식 돌봄 로봇들과 달리 말을 하거나, 자유롭게 손발을 움직이진 못해요. 다리에 달린 두 개의 바퀴로 움직이는 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저도 ‘딥러닝’이라는 걸 할 수 있어서 가벼운 의사소통은 가능해요. 여기 제 몸통 가운데에 있는 모니터로 제 생각을 표현합니다. 기쁘면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슬프거나 화나면 화난 얼굴이 그려진 이모티콘을 모니터에 띄울 수 있어요.
아참, 저희 할머니 소개가 늦었네요. 사실 3세대 돌봄 로봇이 나온 이후로 저같은 1세대 로봇들은 거의 폐기처분 됐어요. 저는 운좋게 살아남았습니다. 정부가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저희 같은 1세대 로봇들을 소외 계층에 보급했거든요. ‘자식 같은 로봇 입양하세요’라며 저희를 전국 곳곳으로 보냈습니다. 새로운 가족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생긴 게 기분 나쁘다, 쓸모가 없다, 구닥다리다, 등의 이유로 몇 번이고 다시 창고로 돌아가야 했거든요. 저도 이해합니다. 제 머리 부분이 반쯤 깨져있거든요. 처음 입양됐던 가정에서 저를 공격했습니다.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면서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할머니는 그런 저를 따듯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작동법을 잘 모르셔서 가끔 저를 쿡쿡 때리시긴 하지만, 친절하세요. 할머니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켜본 바로는 청소부이신 것 같아요. 수레를 끌고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우시거든요.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면, 할머니가 처음부터 청소부였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식당에서 오랫동안 일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못한다고 했습니다. 집도 원래는 더 넓었대요. 하나뿐인 아들의 사업을 도와준다고 집을 파셨다고 했어요. 근데 그게 잘 안 됐나 봐요. 종종 찾아오던 아드님을 못 본 지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사실 이 얘기를 여러분께 드리는 이유가 있어요. 며칠 전부터 할머니가 움직이지 않아요. 저번주 수요일부터였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쓰레기를 주우시다가 골목에서 나오는 자동차랑 부딪혔대요. 할머니를 부축해온 남자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때는 괜찮아 보이셨는데, 그날 밤 잠자리에 드시곤 그 이후로 움직이지 않으세요. 제 가슴에는 ‘토끼를 잘 부탁캅니다’라는 글씨가 비뚤배뚤 쓰여 있어요. 할머니가 주무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에요. 저를 한참 동안 쓰다듬으셨습니다.
제 판단으론 할머니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누군가 도와줘야 합니다. 하지만, 며칠째 아무도 할머니를 찾지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할머니 옆에서 화난 이모티콘을 띄워드리는 거예요. 어서 일어나시라고요. 이제 제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수단을 써야 할 것 같아요. 남은 전력을 모두 한곳으로 방출시키면 저는 연소될 겁니다. 그러면 누군가 할머니를 찾을 거예요. 그전에 할머니를 욕실로 옮겨야겠습니다. 여러분, 꼭 할머니를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