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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별 Nov 30. 2022

오래오래 남을 흔적

내 몸에도, 지구에도.

밥을 안쳐두고 쓰는 글.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도 그렇게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 편은 아니었는데, 끼니를 거르면 걸렀지 시켜 먹지는 않았는데, 근 한 달간 배달 어플 VIP가 되어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시켜 먹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시켜 먹었다. 어제도 엄마가 싸준 전이랑 밥을 먹을까 떡볶이를 시켜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배달 앱을 켰다. 배달 가능한 최소 금액을 시키면 절대 혼자서 한 끼에는 다 못 먹을 것을 알면서도 일단 시킨다. 두 끼에 나눠 먹으면 되니까. 많은 양을 꾸역꾸역 먹고 밤 10시에 불광천을 걷는다.


'내 즉석밥만큼은 절대 먹지 않으리', '내 생수만큼은 사 마시지 않으리' 다짐을 하면 무엇 하나. 손가락 터치 하나에 플라스틱이 우수수, 쓰레기가 우수수 나오는 것을. '나는야 분리수거를 잘하는 모범 시민'이라고 자부하면 무엇 하나. 이 쓰레기들이 분리수거장에 가서 진짜로 재활용이 되는지는 모르는 일인 것을.


음식물이 묻은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안 된다고 하여 로제 떡볶이가 담겨 있던 플라스틱 일회용 용기를 박박 닦았다. 꾸덕한 국물은 용기는 물론 싱크대, 수세미까지 붉게 만들었다. 이 흔적은 내 몸에도, 지구에도 오래오래 남겠구나. 기분 나쁜 꾸덕한 국물의 흔적을 정말 '박박' 닦으면서 내 몸과 지구에 안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새겨졌다. 앞으로는 절대 시켜 먹지 않겠다는 다짐보다는 배달 어플을 지우고 요리 어플과 분리수거 어플을 깐다. 인덕션 옆의 조리 공간을 정리한다. 환경을 정리하면 뭐라도 직접 요리해 보고 싶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정말 요리와는 담을 쌓고 지내지만, 최대한 내 몸과 지구에 좋은 한 끼를 먹어봐야겠다.


밥 냄새가 고소하게 난다. 밥 먹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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