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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n nch May 20. 2018

음악


베이스를 전공한 친구가 있었다. 사실 전공이 베이스라기보다 취미가 베이스인 것 같았다. 늘 친구들과 서울 곳곳을 놀러다니고 술도 마시며 스무살의 자유를 만끽이라도 하듯 탕아처럼 지냈기에. 취미는 아니구나라고 느꼈던 유일한 순간은 연주회를 한다며 작은 책자를 건네주었을 때 보았던, 검은 정장을 제법 멋스럽게 차려입고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사진을 봤을 때 뿐이었다.

 스무살의 나에게 음악은 단지 세상의 소음을 지우는, 혹은 아주 가끔 짧은 위로를 얻는 수단이었다. 그때의 내가 음악을 하는 친구에 대해 그저 심드렁한 생각을 갖고 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정말 열심히 놀기만 했으니까. 그러다 최근 그 친구가 나에게 했던 작은 불평이 생각났다. 아니, 생각났다기보다 이제야 이해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우리방 밑에 층에는 그와 같은 과 동기이면서 재수를 한 형이 있었다. 가끔, 아니 거의 매일같이 기타줄을 꼬집는 소리가 올라왔다. 앰프를 연결하지 않은 일렉기타였지만 달빛조차 조금은 희미한 고요한 새벽이였기에 고기냄새 올라오듯 소리가 내 코끝을 맴돌았다. ‘줄이 끊어졌나?’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주를 잠시 멈추면 늘 똑같은 생각을 하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소리가 들리면 ‘안끊어졌네’하며 불평의 위안을 삼고는 했지만.

 그날도 그는 한결같이 연습을 했다. 그러다 유독 그날 짜장면이 맛이 없었는지 친구는 짜장면을 한입 가득 우물거리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저 형은 맨날 연습만 한다고. 음악하는 사람은 책도 읽고 놀러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한다고. 기교만 늘려봐야 아무쓸모 없다고. 그때에 나는 저 시답잖은 말에 반응은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말을 이해하는데 나는 7년이 걸렸다.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뿜어내는 음악, 그리고 예술은 내 몸이 느꼈던 많은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라고. 현란한 기술이나 기교로 보는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 마음 속 깊이, 그리고 잔잔히 내 내면을 흐르는 것은 그런 기교가 아니라 음악이 전해주는 깊은 정서라는 것. 그 순간의 전율 혹은 감동은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기술의 발달로 집에서도 손쉽게 가수의 공연을 볼 수 있지만 불편을 무릅쓰고도 콘서트를 찾아가는 이유가 그것 아닐까. 같은 공간, 같은 숨결을 들이마시며 그 순간의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

 하지만 이것조차도 너무 편협해서 그저 부끄럽기만하다. 얼마나 더 많은 글을 읽어야 또 다른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지. 그저 그때처럼 피식 웃고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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