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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문진 Dec 20. 2021

인생은 알 수 없는거야 누구의 인생이든

<어바웃타임>

개인적으로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그 영화에 대체로 관대해지는 편이다. 아마 분위기가 주는 영향의 탓인 것 같다. 불이 꺼진 상영관, 넓은 스크린, 생생한 사운드, 버터향이 묻어있는 팝콘 냄새, 소곤소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날의 나의 기분까지 어우러져 영화를 보게 된다. 그래서 같은 영화여도 극장이 아닌 곳에서 다시 보게 되면 처음의 감흥이 없이 '왜 좋았지?' 하는 경우가 많다.


12월, 겨울, 크리스마스, 연말, 로맨스의 단어로 떠올리는 영화 중 하나인 <어바웃타임>도 개봉했던 2013년에 극장에서 보고 딱히 다시 본 적이 없다. 그때도 극장을 나서면서 '나쁘지 않네'정도라고 생각했다. 8년 만에 영화를 다시 보는데, 나의 시선도 생각도 경험도 많이 달라져있구나를 느꼈다. 같은 영화를 시간을 두고 보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다. 다시 보면서 감독에게 많은 물음표가 생겼고 관객의 입장과 동시에 창작자(즉 연출자, 감독)의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이렇게 쓰는 게 과연 맞는 걸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설레고 즐거운 게 아니라 어이없다가 짜증도 났다가 화도 나다가 팀을 욕하다가 결국은 나를 돌아보게 됐다.


클래식처럼 제목과 포스터로 예쁘게 잘 꾸민 영화란 생각을 했다. 포스터와 달리 영화 속에서 메리의 비중이나 캐릭터의 역할이 거의 없었고, 그저 소비되는 느낌이 컸다. 이 영화가 둘의 로맨스에 집중했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팀의 시선과 기준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게 불편한 지점들이 곳곳에 있어서 화가 났던 것 같다.


-팀은 처음부터 인생의 목적이라곤 예쁜 여자를 만나서 어떻게든 뭔가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메리와도 블라인드 데이트로 처음 만났고, 그날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고 바로 연인 아닌 연인이 된다 팀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궁금해짐

-주말에 연극을 보러 갔고 거기서 (팀의 자칭)첫사랑 샬롯을 만나 집에 데려다 달라는 요구에 거절하지 않고 방 앞까지 간다(메리와 사귀는 중 맞음)

-문 앞에서 샬롯의 일종의(?) 유혹을 거절 후 집으로 달려가 급발진해서 자고 있던 메리에게 대뜸 청혼을 한다

-결혼하기 전 메리는 이미 임신을 하게 된다

-결혼식 행진곡인 '일몬도'선정할 때 메리가 완강하게 싫다고 말했으나 팀의 주장대로 결정된다

-본인이 상황을 '고쳐야겠다'라고 말하며 돌아가서 구원자 역할을 한다 (당연히 뜻대로 되지 않고 다 꼬여버림)

-첫 육아를 하면서 메리가 아직 다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메리가 싫다고 함) 둘째를 갖자고 한다

-'젊고 부주의해서'라는 말을 하며 네 가족이 됐다고 말한다


(사실 더 많이 나열할 수도 있지만)


살면서 나쁜 짓 빼고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모든 경험을 다 해봐야만 깨달음을 얻는 건 아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우리는 굳이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구분할 수 있다. 한참 열을 내면서 영화를 보다가 당연히 팀의 인생이니까 팀의 시선과 기준대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보는 팀의 나이와 내 나이는 다르고 그러다 보니 각자가 통과하는 시절을 대하는 태도도 다를 수밖에. 팀은 시간을 되돌리면서 같은 일을 몇 번이나 겪어봐야 아는 사람인 걸 수도 있다. 그래서 시간여행의 능력이 주어진 걸 수도 있고. 아무튼 내가 불편하다고 나열한 지점 또한 지극히 나만의 것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연인사이의 일은 둘 밖에 모르기도 하니) 그리고 사실 나 또한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적 머저리같았던 순간을 떠올리자면...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게 다행이기도 싶다. 돌아가서 고칠 수도 있겠지만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 언저리라도 가고 싶지 않다.


어쩌면 감독이 내게 전하는 말이 그런 게 아니었을까. 적어도 팀처럼 바보같이 살지는 말라고. 모든 걸 다 경험하고 겪어봐야만 아는 게 아니라고. 이런게 간접체험인 영화의 힘일 수도 있겠다. 내 과거를 돌아봤을 때, 나는 과연 팀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저마다의 인생에 각자의 서사가 있고 남들에게 보이는 건 어느 '한 장면'일 수밖에 없다. 타인의 서사를 다 알 수도 없을뿐더러 당연히 이해할 수도 없다. 또 내가 본 '그 장면 속'의 타인이 계속해서 그 모습으로만 살아간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팀도 본인의 멍청함을 후회하거나 깨닫고 다르게 살아갈 수도 있을 거고. (결말만 봐도 아빠의 충고를 기억하고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면서 살지 않으니) 그러니 함부로 타인의 인생을 판단하지 말아야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본다. 물론 생각하는 것과 말을 하는 것과 그걸 실천에 옮기기까지 간극은 있지만. 창조된 이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여행으로 두 번째 하루를 사는 것처럼 주어진 하루를 한 번 더 들여다보며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하고 순간을 사는 일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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